고대 문명에 관한 이야기와 특징들: 가장 위대한 발명품, 문자의 탄생
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고대 문명에 관한 이야기와 특징들: 가장 위대한 발명품, 문자의 탄생

by &#$@* 2023. 3. 3.
반응형

문명은 문자가 발명됨으로써 시작되었습니다. 인류는 문자를 발명해 사용함으로써 비로소 역사 시대로 접어든 것이지요. 선사 시대와 역사 시대를 나누는 기준도 바로 문자로 남겨진 기록이 있는가에 따릅니다. 그런데 문자의 발명과 함께 문명이 시작되었지만, 문명이 발달하지 않았다면 문자도 생겨날 수 없었을 거예요. 문자의 발명 또한 역사의 자연스러운 발달 과정에서 일어난 사건이라는 뜻입니다. 

 

문자는 왜, 어떻게 발명되었을까요?

4대 문명권에는 모두 자기들만의 고유한 문자가 있었어요.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쐐기 문자를 사용했고, 이집트에서는 신성 문자(히에로글리프)라고 불리는 상형 문자를 사용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중국에서는 갑골 문자를 사용했고, 인더스 지역에서는 인장 문자를 썼습니다. 4대 문명권에서 문자가 사용된 것은, 이 지역들이 그 밖의 지역에 비해 특히 농업 생산량이 많았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그림 자료: 쐐기 문자
(그림 자료: 쐐기 문자)

 

고대 인류는 잉여 생산물이 생기면서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나뉘었어요. 지배자는 자신이 다스리는 공동체가 잉여 생산물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또 정복지에서 공물을 얼마나 받았는지도 알아야 했지요. 그래야 재산을 관리할 수 있을 테니까요. 자기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많은 신전을 지었던 지배자들은 신전에 바치는 제물의 양도 기록해야만 했어요. 후세 사람들을 위해 신전에서 일어나는 종교 행사들도 기록해야 했습니다. 이처럼 고대 인류는 잉여 생산물, 공물, 신전에 바치는 제물, 신전의 행사 등을 기록하기 위해 문자를 발명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잉여 생산물은 교역의 발달로 이어졌어요. 남는 식량을 다른 지역에서 생산한 생활용품과 바꾼 것입니다. 생산량이 늘어날수록 교역량도 늘어났어요. 사람들은 교역을 활발하게 하기 위해 수레와 배 같은 교통수단도 발명했습니다. 교역이 활발해지니 어느 지역에서 얼마만큼의 물품을 샀는지를 기록해야 할 필요가 있었지요. 고대 인류가 문자를 발명한 두 번째 이유입니다.

 

문명의 기초를 이룬 고대 문자들

수메르인들이 기원전 3000년 무렵 발명한 상형 문자인 쐐기 문자는 지금껏 알려진 문자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지요. 수메르인들은 점토판에 글자를 쓴 뒤, 그 판을 불에 구웠습니다. 무른 점토판보다는 구워서 단단해진 쪽이 보관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수메르인들은 점토판에 글자를 쓸 때 끝이 뾰족한 갈대 가지를 사용했어요. 그래서 문자가 쐐기 모양으로 보이기 때문에 쐐기 문자 또는 설형문자(楔形文字)라고 부릅니다.

 

초기의 점토판에는 주로 신전에 제물이 바친 제물이 기록돼 있습니다. 곡물이나 소, 양 같은 것들이지요. 때로는 노예를 바치기도 했습니다. 수메르인들은 모양이 있는 사물은 그림으로 그렸고, 수량은 선과 원을 조합한 기호로 표시했지요. 초기에 사용된 문자들은 2천여 개였지만 후대로 갈수록 줄어들어 아시리아에 이르렀을 때 약 350개 정도만 남았지요.

 

쐐기 문자는 처음에는 메소포타미아 주변에서만 사용됐습니다. 그러다가 히타이트, 페니키아, 페르시아에까지 확산돼 큰 영향을 미쳤어요. 특히 후에 페니키아로 전파된 쐐기 문자는 오늘날 영어 알파벳의 기원이 됐지요. 페니키아인 중에는 무역을 활발히 하는 무역상인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수메르의 쐐기 문자를 활용해 새로운 문자를 만들었어요. 이 문자가 훗날 그리스와 로마로 전파됐고, 다시 중부 유럽과 영국을 거치면서 오늘날의 알파벳이 됩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사용하던 신성 문자는 주로 돌이나 나무에 새겼져 있어요. 신성 문자는 고대 이집트의 마지막 왕조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때까지 사용됐습니다. 이 신성 문자는 현재 영국 박물관에 있는 로제타석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지요. 당시에는 이 신성 문자 외에도 일반 대중이 사용하던 문자와 종교 사제들이 사용한 신관 문자도 있었어요. 이집트의 신성 문자 또한 사물의 모양을 본뜬 상형 문자입니다.

그림 자료: 상형 문자
(그림 자료: 상형 문자)

 

중국 은나라 사람들은 갑골 문자를 사용했습니다. 이 문자는 거북의 등껍질이나 동물의 뼈에 새겨졌다고 해서 갑골문자(甲骨文字)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거북의 뱃가죽이 더 많이 사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갑골 문자는 1899년에 은허에서 처음 발견됐는데, 당시만 해도 갑골은 ‘용골’이라는 한방 약재로 쓰이던 재료였지요. 약재로 쓰려던 갑골의 표면에 새겨져 있는 글자가 발견되었고, 학자들이 그것을 연구한 결과 고대 은나라 사람들이 쓰던 글자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입니다.

 

그림 자료: 갑골 문자
(그림 자료: 갑골 문자)

 

역시 상형 문자의 한 종류였던 갑골 문자는 다른 지역의 문자보다 훨씬 더 발달한 것 같습니다. 3천여 개에 이르는 글자 중 절반 정도는 오늘날에 해독이 되었어요. 다른 지역의 문자와 마찬가지로 갑골 문자에도 제사와 관련된 내용이 많지요. 기록을 통해 은나라 사람들이 갑골을 사용해 점을 쳤다는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그전까지만 해도 은나라는 전설 속의 왕국이라는 학설이 우세했는데, 갑골 문자의 발견으로 은나라가 비로소 역사에 들어오게 됩니다. 갑골 문자는 그 후 한자의 직접적인 조상이 되었습니다.

 

인더스 문명에도 문자가 있었어요. 학자들은 인더스 문명을 이룩한 한두 민족이 아니라 여러 민족이었을 거라고 추정됩니다. 그 가우데 대표적인 민족이 드라비다족이지요. 이 드라비다족도 문자를 사용했어요. 그들은 도장처럼 생긴 물체에 물소와 코끼리 같은 동물을 새겨 넣었습니다. 이 문자를 인장 문자라고 합니다. 인장 문자는 아직 해독되지 않았지요. 다만 인장 문자에 새겨져 있는 동물과 사물을 보면 당시 인더스 강 유역은 건조한 곳이 아니라 습도가 적당한, 아주 살기 좋은 곳이었을 거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림 자료: 인장 문자
(그림 자료: 인장 문자)

 

 

 

*로제타석: 18세기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군이 알렉산드리아 시 근방 나일 강 하구의 로제타 마을에서 발견한 비석 조각. 프톨레마이오스 5세를 칭송하는 글이 쓰여 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