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사람들이 섬긴 자연신들
오늘날의 종교는 대부분 한 신만을 섬깁니다. 그러나 고대 사회에서는 보통 여러 신을 동시에 섬겼지요. 이런 종교를 ‘다신교’라고 합니다. 여러 신을 섬긴 것은 그만큼 사람들의 두려움이 컸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요. 고대 사람들은 특히 자연 현상이나 자연물을 많이 섬겼어요. 예를 들면, 태양이나 바람, 물, 불 등을 신으로 섬긴 거지요. 고대 세계에서 가장 두려운 존재가 바로 자연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는 아직 인류에게 자연현상을 합리적으로 해석하고, 예측하거나 대비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홍수가 나고 태풍이 불어 닥쳐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어요. 몇 달간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아도 그저 하늘만을 바라봐야 했으니까요. 바로 이 이유로 자연을 숭배하는 풍조가 생겨난 것입니다.
4대 문명권을 샆펴보면 이 점을 잘 알 수 있지요. 거의 모든 문명권에서 태양과 바람, 물, 불과 같은 자연신을 섬겼어요. 특히 중국에서는 자연이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해 주기를 바라는 소망을 담고 있는 고대 신화가 전해집니다. 역사적 사실로서의 황화 문명은 은나라 이후부터입니다. 그러나 신화까지 포함한다면 황화 문명의 시작은 더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중국에는 이른바 ‘삼황오제(三皇五帝)’라는 지배자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가운데 삼황은 신의 경지에 있다고 할 수 있지요.
삼황은 천하가 어지러울 때 하늘에서 내려와 지상 세계를 다스린 왕들을 말합니다. 하늘을 뜻하는 천황, 땅을 뜻하는 지황, 사람을 뜻하는 인황이 바로 삼황입니다. 이 삼황을 복희씨, 여와씨, 신농씨라고 보고 있기도 하지요. 복희씨는 인간에게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준 신입니다. 인간이 사냥과 수렵을 하도록 도왔으며 불을 사용하는 법도 가르쳤어요. 여와씨는 혼란스러운 세상을 정리해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 준 신입니다. 여와씨는 요괴들을 물리치고 하늘을 받치는 기둥을 정비했으며, 넘치는 강물도 가라앉혔습니다. 신농씨는 인간에게 농사짓는 법을 가르쳐 준 신이자 태양을 관장하는 신이기도 합니다. 이 삼황의 이야기는 문명 발달의 역사와 얼추 비슷하지요. 인간이 원시 상태에 있다가 물을 다스리고 농사를 지었다는 신화의 내용이 바로 문명의 발달 과정 그 자체이기 때문이지요.
사후 세계에 대한 믿음
아직 과학이 발달하지 않은 고대인들은 사후 세계에 대한 믿음이 강했습니다. 사람이 죽어도 다른 세계에서 계속 삶을 이어 간다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이를 잘 알 수 있는 이집트의 신화가 있습니다.
고대 이집트의 여러 신 가운데 최고의 신으로 여겨지던 신이 오시리스입니다. 오시리스는 원래 지상 세계를 다스리던 신이었죠. 오시리스에게는 세트라는 형제가 있었어요. 그런데 세트는 평소 오시리스에게 불만이 있었어요. 그래서 오시리스를 제거하기로 하고 계략을 짰습니다. 그 계략에 오시리스가 걸려들었지요. 세트는 오시리스를 죽인 뒤 몸을 산산조각 내어 곳곳에 흩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오시리스의 여신이 시체 조각을 모두 찾아내 맞추자 다시 살아난 거예요. 다만 오시리스는 이미 죽은 후였기 때문에 더 이상 지상 세계를 통치할 수 없었어요. 그러나 여전히 생명은 지속되었기에 오시리스는 저승 세계의 왕이 됐습니다. 이 신화는, 죽은 뒤 저승 세계에서 삶을 이어 간다는 당시 사람들의 믿음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후 세계에 대한 믿음은 신화뿐 아니라 실제 유적에서도 많이 드러나지요. 중국 은나라의 수도인 은허에서는 많은 순장 무덤이 발견되었어요. 순장이란 살아 있는 사람을 함께 묻는 풍습을 말합니다. 지배자가 죽으면 그 지배자가 거느리던 노예들을 함께 묻는 겁니다. 만약 지배자가 왕이나 귀족이라면 거느리던 노예는 수백명에 이릅니다. 그 많은 노예들이 시중을 받으며 편하게 살도록 하기 위함이었죠.
순장을 당한 사람들은 피지배층이었어요. 이 말을 역으로 생각하면 당시 지배자의 권력이 아주 강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특히 이집트와 중국에서 왕의 권력은 하늘을 찔렀습니다. 이집트에서는 왕을 ‘파라오’라고 불렀고, 중국에서는 ‘천자(하늘의 아들)’라고 불렀어요. 파라오는 ‘하늘이 정한 사람’이란 뜻이고, 천자는 ‘하늘의 아들’이란 뜻이지요.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가장 먼저 태동한 곳으로 알려져 수메르 지역에서는 지배자를 ‘큰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 고대 사람들은 왕을 신이나 마찬가지인 존재로 여겼던 겁니다.
신과 소통하는 지도자의 강력한 권위
왕의 권력이 이토록 강한 것은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오늘날에는 종교 지도자가 나라를 다스리는 법이 없었어요. 종교는 종교, 정치는 정치 나름대로 각자의 영역이 구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미 말한 대로 고대 사람들은 자연 현상도 두려웠고 이웃 나라에 정복당해 노예가 되는 것도 두려웠어요. 그들은 ‘절대적인 힘’이 자신들을 보호해 주기를 원했습니다. 바로 신의 보호를 원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일반 민중은 신에게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신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지요. 신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은 종교 사제, 즉 대사제만 갖고 있었습니다. 고대 세계에서는 일부 지역을 빼면 왕이 대사제의 역할 함께 맡았어요. 왕은 종교에 있어서도 절대자, 정치에서도 절대자였던 거지요. 바로 이 때문에 왕의 권력은 하늘을 찔렀습니다.
고대의 왕들은 자신의 권력을 드러내고 뽐낼 수 있는 뭔가가 필요했어요. 왕들은 무덤과 신전을 거대하고 건축했어요. 이런 건축물을 크게 지을수록 왕의 권위가 더 커 보인다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대표적인 것이 이집트의 피라미드입니다. 가장 먼저 피라미드를 만든 왕은 제3왕조의 조세르 왕이지요. 그는 건축 기사 임호텝은 오늘날의 카이로 근처에 피라미들을 만들었어요. 이 피라미드는 126m, 세로 109m, 높이 62m에 이르는 거대한 무덤이었습니다. 이 조세르 왕의 피라미드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사각뿔 모양이 아니라, 계단식 구조로 이루어져 있어요. 조세르 왕에게 이 계단을 밟고 하늘로 올라가라는 의미일 겁니다.
사각뿔 모양의 피라미드이자 가장 큰 피라미드는 제4왕조의 쿠푸 왕 때 만들어졌어요. 이 피라미드도 역시 카이로 근처에 있답니다. 기제 지역에 있닥 해서 ‘기제의 피라미드’라고 불리고, 또한 가장 큰 피라미드라고 해서 ‘대(大) 피라미드’라고도 불리지요. 쿠푸 왕의 이름을 ㄸ서 ‘쿠푸 피라미드’라고도 합니다. 이 피라미드는 높이만 147m가 됩니다. 오늘날에는 윗부분이 훼손되어 137m로 남아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가장 큰 피라미드이지요. 이집트인들은 이 피라미드를 만들기 위해 2.5 톤짜리 돌덩이 230만 개를 옮겼다고 합니다. 10만여 명의 인부가 10-20년 동안 공사를 벌였다고 합니다. 이 피라미드는 세계의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로도 기록돼 있습니다.
이집트에 피라미드가 있다면 메소포타미아에는 지구라트가 있어요. 앞서 말했듯 지구라트는 신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한 제단이었습니다. 수메르인들이 처음 만들기 시작해서,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마지막 세대인 바빌론 시대까지 만들어졌습니다. 그들은 수백만 개의 벽돌을 차곡차곡 쌓아 지구라트를 만들었어요. 우르 지역의 지구라트는 지금까지도 남아 있지만, ‘바벨탑’이라는 별명이 붙은 바빌론의 지구라트는 안타깝게도 남아 있지 않지요. 메소포타미아인들은 지쿠라트에서 왕의 즉위식도 했어요. 메소포타미아 문명권도 종교와 정치가 일치한 제정일치 사회였던 겁니다.
왕의 권위를 높이기 위한 건축물도 남아 있지요. 오늘날에는 전해지지 않지만 고대 세계의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여겨지는 바빌론의 ‘공중 정원’이지요. 이 건축물은 신바빌로니아의 왕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이란 지역에서 온 왕비가 울창한 숲과 푸른 호수가 있는 고향을 그리워하자 똑같은 정원을 만들게 했다고 합니다. 정원이 워낙 거대해 마치 공중에 떠 있는 것 같다고 해서 공중 정원이라고 불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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