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문명에 관한 이야기와 특징들: 고대 도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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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문명에 관한 이야기와 특징들: 고대 도시 이야기

by &#$@* 2023. 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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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고고학자들이 파키스탄의 신드 주를 탐사했습니다. 이 탐사 작업은 뜻하지 않은 큰 성과를 보게 되었습니다. 아주 오래전에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도시의 유적이 발견된 겁니다. 유적 발굴 작업은 그 뒤 1년간 계속되었지요. 그 결과 고고학자들은 고대의 도시를 재현해 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학자들은 이 도시가 그전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문명의 흔적이라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그전까지만 오늘날의 인도와 파키스탄 일대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은 아리아 문명이라는 게 정설이었습니다. 아리아 문명은 기원전 2000년 이후에 인도 아대륙에서 시작된 문명이지요. 그러나 이 도시 유적의 발굴로 기존 학설은 뒤집혔어요. 이렇게 해서 세상에 알려진 게 바로 인더스 문명입니다. 학자들이 새로 발견한 이 유적은 모헨조다로라는 고대 도시였습니다.

 

인더스 문명의 계획도시, 모헨조다르

모헨조다로는 오늘날의 용어로 말하자면 완벽한 계획도시였습니다. 모헨조다르를 세우기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의 건축 기사가 활동했을 것입니다. 아마도 어떤 건축가는 벽돌만 구웠고, 어떤 건축가는 서민들의 주택만 만들었으며, 어떤 건축가는 목욕탕만 전문적으로 만들었을 것입니다. 도로만 닦는 건축가도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이 도시는 잘 정비돼 있었지요.

 

그림 자료: 파키스탄의 모헨조다로 유적
(그림 자료: 파키스탄의 모헨조다로 유적)

 

학자들이 재현해 낸 모헨조다로는 이런 모양이었습니다. 우선 도시 전체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큰 성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목욕할 수 있는 큰 목욕탕과 작은 규모의 목욕탕이 여러 곳에 있었어요. 마을로 내려가면 일반 백성들이 사는 주거 단지가 조성되어 있었지요. 오늘날의 아파트와 비슷한 형태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건물들은 대부분 구운 벽돌로 만들어졌습니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는 직선으로 이어진 큰길이 있었습니다. 이 길은 잘 포장돼 있었어요. 작은 건물과 작은 건물 사이에는 작은 길이 있었지요. 또한 건물 중간마다 생활용품을 파는 가게나 음식을 파는 식당도 있었습니다. 

 

이런 형태의 도시는 다른 문명권에서는 발견되지 않은 것입니다. 물론 다른 문명권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도시가 발달했지만 모헨조다로처럼 완벽하게 계획된 도시는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모헨조다로에서 놀랄만한 또 하나의 시설은 바로 배수와 상수 시설입니다. 사람들이 쓰다 버린 물이 여기저기에 고여 있다면 썩은 냄새가 진동해서 사람들이 살기에 매우 불편했을 거예요. 그러나 모헨조다로는 버린 물이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도록 완벽한 배수 시설을 갖추고 있었어요. 반대로 상수 시설을 통해서는 깨끗한 물이 각 가정으로 배달되었습니다.

 

학자들은 모헨조다로가 아리아 문명과는 다르며, 그보다 훨씬 앞서 발달한 문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모헨조다로에서 약 6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하라파 유적이 있습니다. 하라파 유적은 오늘날 파키스탄 펀자브 주에 해당하는 지역에 있지요. 하라파 또한 완벽히 계획에 따라 만들어진 도시였습니다. 하라파는 인더스 강의 상류 지역에 있는 도시였고, 모헨조다로는 강의 하류 지역에 있는 도시였습니다. 학자들은 그제야 인더스 강을 따라 여러 도시 문명이 발달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때문에 이 지역의 문명을 인더스 문명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실제로 두 도시 유적이 발견된 후에도 인더스 강 유역에서 많은 도시 유적이 발견됐습니다. 인더스 강과 아주 가까이 있지는 않았지만 인더스 문명의 영향을 받아 발달한 도시의 유적들도 발견되었어요.

 

여러 문명권에서 발달한 도시들

인더스 문명의 도시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메소포타미아 일대에도 많은 도시들이 발달했어요. 도시의 수만 따진다면 인더스 강 유역보다 메소포타미아 일대에 도시 국가들이 더 많았을 겁니다. 대표적인 도시 국가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유프라테스 강을 따라 마리, 바빌론, 우르, 우르크 등의 도시 국가가, 티그리스 강을 따라서는 하수나, 아슈르 등의 도시 국가가 발달했습니다. 티그리스 강의 상류 지역에서는 아시리아 제국의 수도였던 니네베가 크게 번성했습니다.

 

메소포타미아의 도시들도 성벽을 세웠습니다. 성벽 안에 살던 사람들은 거대한 신전과 지구라트를 건설했습니다. 지구라트는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제단을 일컫는 말입니다. 오르날까지 존재하는 지구라트 가운데는 우르의 지구라트가 가장 큽니다. 신바빌로니아 시대에 바빌론 안에 있던 지구라는 높이 거의 90미터에 이르렀다고 하는데요. 안타깝게도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상태이지요.

 

그림 자료: 고대 우르의 지구라트, 출처: 브레이크 뉴스
(그림 자료: 고대 우르의 지구라트, 출처: 브레이크 뉴스)

 

바빌론이야말로 가장 발달한 메소포타미아 도시 간운데 하나였습니다. 가장 번성했던 시기에는 바빌론의 성벽 둘레만 17 킬로미터가 넘었다고 합니다. 성 안에는 바빌론 사람들과 무역상 등 약 20만 명 정도가 살았을 것으로 추정하지요.

 

이집트에서는 나일 강을 따라 많은 도시들이 발달했습니다. 나일 강 상류에서부터 지중해로 내려가다 보면 아스완, 룩소르, 테베, 멤피스, 기제 등의 도시가 특히 발달했어요. 이 가운데 멤피스는 통일 이집트의 첫 수도가 되기도 했지요. 나일 강의 상류로 더 올라가면 오늘날의 수단에 이르게 되는데, 이곳에도 메로에와 나파타 등의 도시가 번성했습니다. 

 

한편, 은나라의 수도 은허는 중국 문명의 대표적인 유적지이지요. 유적의 규모는 실로 어마어마합니다. 그 안에 묻혀 있는 왕의 부장품과 순장의 규모를 보면 이 도시가 상당히 번영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은허는 오늘날의 허난성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이 지역에만 발전된 도시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은허보다 규모는 작지만 은나라의 유적들이 발견된 지역은 더 있지요. 오늘날의 지명으로 허베이 성, 산시 성, 산둥 성이 이런 지역들입니다. 은나라의 도시들, 특히 은허는 벽돌보다 흙을 많이 썼습니다. 모헨조다로에서는 벽돌을 쌓은 성벽으로 도시를 둘러쌌지만, 은허에서는 흙으로 쌓은 토담으로 도시를 둘러쌌습니다.

 

고대 도시에서의 생활

4대 문명권의 도시들은 모두 인구가 밀집해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도시가 생겨난 지역은 모두 농사짓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도시가 번영하면서 또다시 사람들이 몰려들었기 때문이지요. 오늘날에도 도시와 국가가 성장하려면 어느 정도의 인구 증가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출산율이 낮으면 경제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인구가 줄어들기 때문에 도시나 국가의 생존 자체가 위태롭게 되는 것이지요. 고대 세계에서도 이런 상황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모헨조다로나 하라파 같은 유적지는 인구가 증가하면서 도시가 계획적으로 바뀌고, 직업도 분화되었다는 점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인더스 문명의 도시들에서 다양한 분야의 일을 맡아 하는 건축가들이 활약했다면, 메소포타미아 주변에서는 특히 상인들의 활약이 컸어요. 메소포타미아 일대, 즉 오늘날의 서아시아는 고대 문명시절부터 동서 무역의 중간 지대 역할을 했습니다. 서쪽의 문물은 동쪽으로, 동쪽의 문물은 서쪽으로 전파한 것이죠. 메소포타미아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먼저 수레를 발명해 사용한 것을 보아 이 지역에서 교역이 얼마나 발달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메소포타미아의 상인들은 화폐를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오늘날처럼 동전이나 지폐를 사용한 것은 아닙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인들은 금속, 특히 은을 화폐처럼 사용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은 저울을 사용해 물건의 무게를 재기도 했습니다. 이런 증거들 역시 당시에 상업과 교역이 상당한 수준으로 발달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교역을 하려면 다양한 물건이 필요합니다. 이에 따라 여러 물건을 만드는 수공업자들도 생겨났습니다. 수공업자들은 물건을 만들고, 상인들은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그 물건을 팔았습니다. 

 

이처럼 직업이 다양하게 분화된 것도 알고 보면 잉여 생산물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농업 생산량이 적었을 때는 모든 사람이 농사에만 매달려야 했지요. 그러나 농산물이 어느 정도 넉넉하게 생산되자, 사람들은 다른 생활용품을 원하게 되었습니다. 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왕에게 공물을 바치기 위해서도 특산물을 생산해야 할 사람이 필요했어요. 이에 농민 중 일부는 농사를 그만두고 이런 물건을 만드는 데 전념하게 되었습니다. 수공업자들이 생겨난 거지요. 사람들의 살림살이가 나아지면서 자기 나라에서는 구할 수 없는 이웃 나라의 물건도 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수공업자들이 만든 제품 가운데 일부를 이웃 나라에 갖고 가서 파는 사람도 생겨났어요. 이런 사람들이 바로 상인 지요.

 

인더스 문명권에 있는 사람들도 사방으로 무역을 확대했습니다. 인더스 상인들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등 오리엔트 지역에도 찾아갔어요. 어떤 때는 오리엔트 지역을 넘어 크레타 섬까지 건너가 교역을 하기도 했습니다. 동시에 인더스 상인들은 동쪽으로도 무역길을 넓혔습니다. 페르시아와 아프가니스탄을 넘어 중앙아시아 지역과도 본격적으로 교역을 한 겁니다. 오늘날 이 지역에서는 교역의 증거들이 담긴 인더스 문명의 인장이 발견되고 있지요. 인더스 상인들도 장사를 할 때는 저울을 사용해 물건의 무게를 쟀습니다. 이때 10진법이 사용됐습니다. 결국 고대 문명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교역이 발달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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