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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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by &#$@* 2023.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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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은 핵 발전소의 폭발로 인해 사람들이 겪게 되는 심각한 피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인 야나는 핵 발전소 폭발 후 동생과 단 둘이 대피하다가 동생마저 잃고 방사능에 오염되어 수용 병동에서 생활을 하게 되지요. 핵 발전소 폭발 사고의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정부의 사고 대책과 지원에 대해 분노를 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이기적인 태도로 인해서 더 큰 괴로움을 겪기도 합니다. 피해자들을 위로하기는커녕 귀찮은 존재로 바라보는 보통 사람들의 이기적인 태도와 핵이 가져올 위험에 대해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학교에 경보 사이렌이 울리더니 빨리 집으로 돌아가라는 방송이 나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영문도 모른 채 야나는 집으로 향했어요. 아빠는 슈바인의 회의에 참석 중이고 엄마는 동생 카이와 함께 외할머니 댁에 갔기 때문에 집에는 야나와 남동생 울리뿐입니다. 라디오에선 구름에 대한 이야기만 계속 나오고 야나네 아파트 방송에서도 슈바인 근처의 그린 원자로애서 사고가 나 방사능이 흘러나오고 있으니 대피하라고 합니다. 경찰차도 동네를 순회하며 얼른 밀폐된 장소로 가 창문을 닫고 대피하라는 안내 방송을 합니다. 야나는 동생을 데리고 지하실로 갑니다. 초조하게 이모의 전화를 기다리던 야나는 빨리 대피하라는 엄마의 전화를 받습니다. 야나는 어린 동생 울리를 데리고 위험 지역을 벗어나기 위해 자전거로 피난길에 오릅니다.

 

-검은 구름-

야나와 울리는 함주 힘겹게 역을 가로질러 갔어요. 남쪽으로 향하는 도로는 거의 텅 비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반대 방향으로는 차량들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어요. 차량 행렬의 가장자리를 따라 지나가는 건 쉽지 않았지요. 자동차를 운전하는 이들은 자전거를 타고 가는 아이들은 안중에도 없는 듯했어요. 왼쪽에서 달리는 운전자들이 경적을 크게 울리며 앞질러 지나갔습니다. 야나는 울리를 잘 지켜봐야 했으므로 앞서 가게 했어요. 야나와 울리는 슐리츠를 지나 도르프에 다다랐어요. 둘은 거기 사는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열린 차창으로 남매의 이름을 불렀어요. 하지만 그들은 모두 그냥 지나가면서 소리치고 손짓만 할 뿐이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안 됐다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였어요. 부모님 없이 아이들만 가고 있는 것에 대해 걱정을 했지요.

 

날씨는 거의 여름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더웠어요. 울리가 목이 마르다고 투덜거렸습니다. 도르프와 크벡 사이에서, 야나는 물을 마시려고 울리를 작은 연못가로 데리고 갔어요. 먹을 수 있는 물인지 아닌 따질 겨를도 없었습니다. 물을 마시고 그 둘은 서둘러 떠났습니다. 도로의 자동차들은 서로 범퍼를 부딪힐 만큼 바싹 붙어 가고 있었어요. 도로 위로는 나지막이 경찰 헬리콥터 한 대가 날고 있었습니다. 자동차 라디오에서 나오는 시끄러운 잡음이 닫힌 차창을 통해 새어 나왔습니다.

 

두 아이들은 자건거로 크벡, 림바크, 오버백 등 작은 마을들을 지나가고 있었어요. 작은 마을들은 평화로워 보였습니다. 풀다 계곡은 길이 평탄해서 자전거 타기가 한결 쉬었습니다. 그러나 울리는 림바크에서 벌써 지치기 시작했어요. 야나는 쉴 쉴새없이 동생을 재촉해야만 했어요. 1시 25분이었어요. 울리는 장딴지가 아프고 배도 고프니 좀 쉬어 가자고 애원을 했습니다. 야나가 모른 체하며 빨리 가야 한다고 재촉하자 울리는 그만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어요. 키싱겐까지 가려면 아직 절반도 못 왔기에 야나는 걱정이 되었지요. 그곳에 가면 헬가 고모가 살고 있는 함부르크 가는 기차를 탈 수 있을 것입니다. 야나는 답답해서 울고 있는 울리를 다그치다가 5분만 쉬자고 했어요. 울리는 내려서자마자 자전거를 풀밭에 내던지더니, 땅바닥에 주저앉았습니다. 야나는 빵과 치즈를 꺼내 동생에게 건네주었습니다. 울리가 빵과 치즈 먹고 다시 자전거에 오르도록 격려를 했어요. 차량들은 점점 더 많아져 느려지더니 마침내 사람들 걸음걸이 속도로밖에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자동차들이 오버백에 들어서자 제 속도로 달리게 되었고, 야나와 울리는 계곡 다른 쪽으로 나 있는 북쪽으로 가는 길을 따라 달렸어요. 얼마 뒤 풀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고속도로 다리가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앞질러 지나가던 차들을 보느라 정신이 팔려 다리 쪽은 보지도 않았지요. 

 

그들은 운터 마을을 지나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차들을 앞질러 갔습니다. 그중에 슈퍼마켓 주인과, 울리 담임 선생님, 고깃집 여점원의 얼굴이 보였어요. 울리의 담임 여선생님은 아이들끼리 떠나 온 것에 대해 걱정을 하며 자신의 차에 타라고 했지요. 하지만 자신들이 더 빨리 달리고 있기 때문에 괜찮다며 거절했습니다. 

 

슐리츠 들판을 벗어나 62번 연방 도로로 들어가는 곳에서 두 줄로 늘어선 차들이 고속도로 진입로에서 서로 얽혀 앞으로 나아갈 생각도 못하고 있었어요. 고속도로 다리 쪽에는 모두 한쪽 방향으로만 달리고 있었습니다. 차량의 물결은 풀다와 슈바인을 거쳐 북쪽을 향해 이어지고 있었어요. 몇몇 경찰관들이 이 사태를 수습하려고 애쓰고 있었지만, 그들 말에 따르는 운전자들은 거의 없었지요. 끊임없이 이어지는 차들을 향해 욕설을 퍼부으며 손짓을 해대는 경찰들이 우습게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고속도로 어귀에 이르자, 차들은 이제 더 이상 달리지 못하는 거나 마찬가지였어요. 고속도로로 들어서려는 차들에게 서로 조금도 길을 내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네거리는 더욱 북새통이었어요. 길 한쪽에는 자동차 두 대가 서로 충돌한 채 거기 버려져 있었어요. 도속도로로 들어서려면 그 부서진 차를 치우고 가야만 했지요. 울리가 구경을 하려고 멈췄어요. 야나가 어서 가자고 재촉하자, 울리는 구름이라도 봤느냐며 버럭 화를 냈습니다. 야나는 독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거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어요. 울리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하늘을 쳐다 보고는 자전거에 올라 페달을 밟았습니다. 야나는 울리한테서 조금도 눈을 뗄 수 없었지요. 울리의 속도는 점점 느려졌고, 자전거는 위험스럽게 또 지그재그로 나아갔습니다. 땀으로 범벅이 된 울리의 모습이 안쓰러웠어요. 이제 바람은 멈추는 듯했고 공기는 후덥지근했습니다.

 

야나는 차 문 밖으로 몸을 내밀고 있는 사람들을 보았어요. 그들은 가장 최근에 나온 소식을 크게 외쳐댔어요. 남쪽에서 폭풍우가 일어 이리로 몰려오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키싱켄 사이 50킬로미터에 걸친 지역은 방사능에 쏘일 위험이 있어서 모두 대피시킬 거라고 했습니다. 울리가 하늘을 가리키며 구름이 나타났다고 외쳤어요. 야나는 사태가 어느 정도로 흘러가고 있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한 젊은 남자는 벌서 방사능이 자신들을 따라잡았을 것이니 어떤 것도 믿을 수 없다고 소리쳤지요. 지나가는 트랙터 트레일러에 서 있던 한 여자는 아이들에게 함께 타고 가자고 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자전거를 타고 가는 편이 더 나아서 괜찮다고 했어요. 

 

오후 2시 48분이었습니다. 키싱겐까지 가려면 아직 마을 두 개와 큰 농장 하나를 더 지나야 했습니다. 야나는 자신도 별로 기대하지는 않으면서도 울리가 계속 달릴 수 있게 북돋아 주었어요. 시간이 더 지나면 어쩌면 자기 짐받이에 울리를 태우고 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잠은 나중에 실컷 자면 됩니다. 야나는 울리가 생각보다 훨씬 더 잘하고 있다고 칭찬했어요. 키싱켄의 집들이 보이지 시작하자 야나는 가슴이 부풀었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하늘은 지평선부터 어두워지고 있었습니다.

 

“그 구름을 피했다 해도 이번엔 소나기가 우릴 가만두지 않을 않을걸! 틀림없어!” 지나가던 사람이 오토바이를 몰고 가는 사람의 어깨너머에 대고 소리쳤습니다. 이제 야나와 울리를 앞서가던 차들은 느린 속도로 가고 있었어요. 차들은 비포장 길을 요령 있게 빠져나와 목초지와 들판 사이를 쏜살같이 달렸습니다. 

 

야나는 가족들이 걱정되었어요. 엄마와 카이는 기차를 탔을까? 또 할머머닌? 외할머니는 틀림없이 자신의 안전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있을 것입니다. 적십자 완장을 두른 채 흰 간호복을 입고서 사람들을 돌보고 있을 거예요. 야나는 엄마와 함께 참가했던 한 시위를 떠올려 보았어요. 그때 그 도시 주민들 중 한 여자가 시위대를 보고 비웠었어요. 그러자 엄마는 그 여자에게 이렇게 소리를 질렀어요. “그럼, 당신은 바로 당신에게 닥칠 그 무서운 죽음을 기다리고만 있을 참인가요? 그렇게 창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서 말이죠?” ‘무서운 죽음.’ 야나는 그 무서운 죽음이라는 게 어떤 건지 한번 상상해 보려고 애썼어요. 언젠가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들 사진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또 백혈병, 머리가 빠지고, 피가 멈추지 않고, 구역질이 그치지 않는다는 걸 들은 적이 있었어요. 이 모든 증상들 가운데서도 머리가 빠지는 게 야나는 가장 두려웠습니다. 민둥민둥한 머리를 사람들이 호기심과 동정에 찬 눈초리로 쳐다본다고 생각하면 참 끔찍했지요. 외할머니는 지금 그 무서운 죽음 한가운데 있는 걸까? 죽어 가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습니다.

 

야나가 외할머니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남쪽에서 비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아울라 마을의 집들을 금방 집어삼키기라도 할 듯 무서운 기세로 몰려오고 있었어요. “저기 좀 봐! 불이 났나 봐!” 울리가 불난 쪽 마을을 가리켰습니다. 회갈색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어요. 울리는 더 빨리 달리기 시작했어요. 두 줄의 차량 행렬은 마을을 가로질러 계곡 반대편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그곳은 네거리 바로 앞에서 일어난 5중 추돌 사고로 차가 몹시 밀렸습니다. 간선도로건 작은 도로건 간에 교통이 복잡하신 마찬가지였지요.

 

울리는 한꺼번에 마구 울려대는 경적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귀를 막았어요. 다리를 벌린 채 자전거 위에 앉아 타는 불꽃을 쳐다보면서…. 야나는 울리를 재촉했어요. 그런데 경찰들이 62번 연방 도로는 여기부터 키싱겐까지 모든 동행을 금지한다고 경고를 했습니다. 사람들은 이에 반항을 하면서 도로를 지나가겠다면서 우겼어요. 야나는 울리를 데리고 도로를 벗어나 들판으로 이끌었습니다. 하늘을 보니 금방 소나기가 쏟아져 내릴 것 같았습니다. 야나는 동생 울리에게 모자 달린 옷을 입히고 자신도 모자 달린 윗옷을 입었습니다. 

울리는 너무 지쳐 있었어요. 물이라도 마시지 않으면 계속 안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지만 곧 자전거에 올라타 페달을 밟았습니다. 마을 뒤쪽에 있는 집들을 지나, 키싱겐으로 통하는 연방 도로와 나란히 뻗어 있는 철둑길 앞에 이르렀어요. 철둑과 들판 사이에 길 하나가 있었는데, 야나는 그 길로 가기로 했습니다. 둘은 지금, 풀이 커다랗게 자란 들판 길을 나란히 달리고 있었어요. 그 길은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나아가야만 했습니다. 울리는 계속해서 코를 훌쩍 거리며 소매로 코와 눈을 닦았어요. 길은 점점 좁아지더니, 마침내 사방에서 뻗어 올라온 쐐기풀 때문에 앞이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야나가 요르단 씨 가족과 함께 떠나지 않은 걸 후회했지요. 

 

그때 철둑 반대편에서 차 소리가 들렸습니다. 야나와 울리는 자전거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비탈 위로 끌어올리느라 애를 썼어요. 야나가 비틀거리다 아래로 조금 미끄러졌습니다. 울리가 먼저 둑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러더니 울리가 해냈다는 승리의 표시로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리는 게 보였어요. 울리는 페달에서 발을 뗀 채 비탈을 내려가려 하고 있었습니다. “조심해! 자갈 위를 그렇게 내려가면 안….”바로 그 순간, 울리의 머리가 핸들 위로 튀어 오르는 게 제일 먼저 보였습니다. 그러더니 울리의 몸은 자동차 한 대가 전속력을 다해 달리고 있는 큰길 위에 떨어졌습니다. 자전거가 공중으로 솟구쳐 올랐고, 곰 인형이 짐받이에서 튕겨 나와 비탈 아래로 나가떨어졌어요. “안돼! 울리!” 야나가 울부짖었습니다. 자동차 운전자는 차를 멈추지 않았어요. 퍽! 둔탁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자동차는 먼지 구름을 일으키며 미친 듯이 달려가 버렸지요.

 

-동생 울리의 죽음-

철둑 위에, 야나는 공포에 질려 돌덩이가 돼 버린 듯 서 있었습니다. 먼지 구름이 흩어졌어요. 울리는 저 아래 쓰러져 있었습니다. 거기서 멀지 않은 곳에, 곰 인형이 떨어져 있었고, 그 인형 바로 옆에 울리의 자전거가 나뒹굴고 있었어요. 모자에 둘러싸인 울리는 머리는 언뜻 보아 피로 범벅이 된 것 같았습니다. 야나는 쓰러진 울리 옆에 하염없이 앉아 있었습니다.

 

이윽고 차 한 대가 달려오더니 야나 앞에 멈춰 섰어요. 수염 난 남자와 노란 머리 부인이 차에서 내렸습니다. 뛰따라 달려오던 다른 차 안의 운전자들이 화를 내며 경적을 더 크게 울려댔습니다. 부인이 야나를 올려 세우며 키싱겐 역으로 가느냐고 물었어요. 야나에게 차를 타라고 했지만 야나는 울리를 데리고 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뒤에서 밀려오는 차들의 요란한 경적소리와 빨리 가라고 외치는 사람들 때문에 더 이상 길에서 지체할 수가 없었지요. 부인은 여기에 있으며 길을 잃을 테니 빨리 차에 타라고 야나의 손을 잡에 차 안으로 끌어들였습니다. 야나는 그저 그들이 시키는 대로 순순히 따랐지요. 

 

키싱겐에 도착하자 부부와 아이들, 그리고 야나는 검은 먹구름이 몰려오기 전에 역에 도착해야 한다면서 뛰어가야만 했어요. 야나가 켄싱겐을 잘 알고 있기에 그들은 야나를 향해 가장 빠른 길을 통해 역으로 갈 것을 명령조로 말했습니다. 그들은 혼잡한 군중들 사이를 비집고 간신히 켄싱겐 역에 도착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기차에 올라타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 보니 거의 아수라장이 되었지요. 야나와 베르트 씨 가족과 함께 그 북새통 속으로 휩쓸려 이리저리 밀렸습니다. 베르트씨가 야냐에게 맡긴 아이들 세 명 중 두 명이 어디론가 사라지자 야나의 어깨를 꽉 붙들고 흔들며 원망했지요. 

 

야나는 갑자기 웃음을 터트리고 나서 사람들이 가는 쪽을 거슬러 나와 그 벽 틈에서 빠져 나왔어요. 장갑차들이 역 광장에 막 자리를 잡고 있었어요. 헬리콥터 한 대가 잇따라 폭음을 내며 다가오더니, 역 상공을 빙그르 돌았습니다. 도시 어디에선가 총소리가 여러 번 울렸어요.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른 채, 야나는 마냥 뛰어 달아나고 있었습니다. 야나가 터트리는 절망적인 웃음소리는 헬리콥터 소리와 천둥소리 속에 파묻혔습니다.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온 하늘을 뒤덮고 있는 어둠 속에 자신을 내던져 버리기라도 하듯 야나는 마냥 달렸습니다.       

 

-폭우를 맞고-

 

아무런 의식도 없이, 야나는 남쪽을 향하고 있었고, 그쪽으로 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공포로 일그러진 수많은 얼굴들이 야나를 스치며 지나갔어요. 야나의 눈앞엔 유채꽃 들판밖에 보이지 않았어요. 야나는 구름 덮인 검은 하늘 아래 노랗게 빛나고 있는 그 들판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야나는 지금 울리가, 집에 두고 온 코코처럼, 유채꽃밭에 버림받은 채 얼빠진 듯 웅크리고 앉아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요. 그리고 시커멓게 오염된 하늘을 보고 너무 겁을 먹은 나머지, 목 놓아 울며 자신을 부르고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엄마가 그토록 자기를 믿고 울리를 맡겼는데, 어떻게 울리를 떼어 놓고 갈 수 있을까요? 곧 머리에 내리 꽂히기라도 할 듯 번개와 천둥이 무섭게 내리치는 가운데, 소나기가 거세게 몰아쳐 왔습니다. 도시 위에, 그 혼란 위에, 오염된 비를 피할 곳을 찾아 헤매는 도망자들 위에…. 야나 혼자만이 그걸 피할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지요. 울리를 부르면서 야나는 엄청난 폭우를 맞으며 혼자 걷고 있었습니다. 

 

야나는 조금이라도 빨리 유채꽃밭으로 가서 울리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어요. 노랗게 펼쳐진 들판이 너무 멀게만 느껴졌습니다. 표지판의 표지들도 읽지 못할 정도로 비가 억수같이 퍼부었습니다. 야나는 좀 더 빨리 달리려고 했어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고속도로로 다가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지요. 야나는 자기 바로 앞에서 틀림없이 유채꽃밭을 본 것 같았습니다. 얼마 뒤, 하늘이 밝아졌고 빗줄기도 가늘어졌습니다. 야나는 더 이상 달릴 수가 없었습니다. 숨이 끊어질 것만 같았고, 상처 난 발은 물이 가득 찬 신발 속에서 쓰라렸어요. 야나는 추위에 떨고 있었습니다. 

 

차를 타고 가던 어른들은 야나를 태우고 가려고 했지만 야나는 뿌리치고 그냥 걷기만 할 뿐이었어요. 그러다가 한 버스가 지나가다가 야나의 옆에 서고 차창이 내려지고 얼굴에 주근깨가 난 젊은 여자가 야나를 불러 세웠습니다. 야나는 유채꽃밭으로 간다고 중얼거렸어요. 버스에 탄 사람들은 야나를 끌어올려 태웠습니다. 버스에 몸을 실은 야나는 모든 감각이 사라지고 잠에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그 사이에 흠뻑 젖은 야나의 옷을 벗겨 버리고 새 옷으로 갈아입혔어요. 야나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부모님과 가족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들이 지금 어디에 있을지 궁금했고 그리웠지요.

 

야나는 함부르크에 있는 헬가 고모를 생각했습니다. 엄마는 어떻게 해서든 그 도시를 빠져나가길 바랐었습니다. 그러나 인제 너무 늦어버렸어요. 자신은 그 구름 속을 달려왔고 오염된 비를 흠뻑 맞아 버렸으니까요. 울리는 유채밭에 있고, 아버진 아직 슈바인에 계실지도 모릅니다. 엄마는 카이와 함께 재난 지역 한가운데 어딘가, 아마 펠트 역이나 슈바인에 있을 거예요. 또한 그렇게 오랫동안 바랐던 아이들 가진 알무트와 하르트, 이모 부부 역시 여기서 멀리 않은 어딘가에 있을 것입니다. 모두들 자신에게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사람들이지요. 야나는 여기에 남아 있겠다고 하면서 고마움을 표시하고 차에서 내렸어요. 그러고는 무거운 걸음으로 야나는 길을 떠났습니다.

 

야나는 지나가는 곳은 동독 국경에 가까이였어요. 하지만 야나는 그 팻말도 보지 못했어요. 이곳 주민들은 아직 대피하지 않고 있었어요. 그러나 거리는 텅 비어 있었습니다. 슈퍼마켓 앞에서 자동차에 생필품을 싣느라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소리만 들려왔어요. 사람들은 서로 욕설을 퍼부으며 소리를 지르기도 했지요. 야나는 주유소에 가서 물을 좀 달라고 했지만 직원은 꺼지라고 고함을 질렀습니다. 야나는 딱히 정해 놓은 곳도 없이 비틀거리며 계속 걸었습니다.

 

마을 끝에 이르렀을 때는 목마름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어요. 야나는 한 집 앞에 서서 벨을 누르려했습니다. 하지만 벨을 찾지 못해 문을 두드렸어요. 나이가 지긋한 부인이 뭔가 살피듯 밖을 내다보았어요. 야나는 물을 요청하고 자신은 슐리츠에서 왔다고 했습니다. 그 부인은 슐리츠가 어디인지 알지 못했지만 풀다 근처라고 하니 놀라 소리쳤어요. 사람들을 대피시킨 그곳에서 온 야나가 방사능에 오염되었다며, 현관문을 닫고는 발을 끌며 되돌아갔어요. 그러고는 닫힌 현관 안에서 말했어요. “거기서 온 사람들은 모두 방사능에 오염됐다고 하더구나.” 부인은 헛기침을 몇 번인가 하고는 계속해서 말했어요. 방금 들었는데, 여기서도 그 지역에다 구호 병원을 세웠다는구나. 경찰서에 찾아가 그곳에 널 데려가 달라고 부타해 보려무나.” 이어 곧 발걸음 소리가 멀어져 갔어요. 야나는 한동안 나무토막처럼 딱딱히 굳은 채 현관 앞에 서 있었습니다.

 

야나는 다시 그 마을을 벗어나 보리수가 쭉 늘어서 있는 가로수 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그러가다 그 길을 가로지르고 있는 철로에 걸려 비틀거렸습니다. 야나는 그 길을 가로지르는 철로에 걸려 비틀거렸어요. 길 양옆으로는 밭과 벌판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야나는 속이 몹시 거북했습니다. 주변 풍경이 아름다웠지만 야나의 눈에는 들어오지 않았지요. 야나는 토하고 다시 토했습니다. 그러고는 쓰러져 웅크리고 앉아 끝내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수용 병동-

 

야나는 누군가 자신을 길가에서 발견해 이곳으로 옮겨다 놓았는지 기억할 수가 없었습니다. 또 사람들이 자신을 어디서 데려왔는지도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지요. 눈앞엔 갑자기 끊겨 있던 그 보리수 길이 아직도 흐릿하게 어른거렸습니다. 하지만 야나는 자신이 바이어의 어느 학교 교실에 와 있다는 걸 알았어요. 깨끗하고 밝은 교실이었어요. 만든 지 얼마 안 된 공작물들이 선반 위에 놓여 있었습니다. 어른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듣고, 이 학교가 사고가 있던 다음 날 대피 지녁을 따라 서둘러 세운 임시 병원들 가운데 하나라는 걸 알았어요. 

 

야나는 몹시 여위어서 거울을 보기가 두려울 정도였습니다. 움푹 들어간 눈, 뾰족해진 턱, 핼쑥한 피부에 머리칼은 부스스했습니다. 게다가 입고 있는 잠옷은 너무 커서 자신의 모습이 마치 유령처럼 보였어요. 야나는 아무것도 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습니다. 음식을 보기만 해도 구역질을 했어요. 대신 물과 차를 엄청나게 마셨으며, 이따금 조금씩 수프를 먹기도 했습니다. 누군가 자신의 머리를 잡고 갈라진 입술에 잔을 갖다 댔어요. 야나는 멍하니 천장을 쳐다보거나 맞은편에 있는 돌로 된 조각들을 바라보곤 했습니다. 누군가 말을 걸면 눈을 감고 고개를 돌려 버렸고 묻는 말에도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진찰할 때마다 의사는 야나의 눈꺼풀을 들어 올려 봐야만 했어요. 의사는 충격 때문이라고 했지요. 의사는 야나가 퇴원하는 걸 허락하지 않았으며, 계속해서 살펴봐야 한다고 했지요.

 

그 의사와 다른 의사들도 하루에 한 번씩 야나가 있는 방을 들렀지만, 야나에게 별다른 관심을 보이는 건 아니었습니다. 야나는 이제 설사가 멈췄고, 더 이상 토하지도 않았어요. 출혈도 없었고, 경계 지역에서 다친 사람같이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이제 건강 상태는 그런대로 좋아진 편이었습니다. 이 임시 병원에는 열병이 유행하고 있었어요. 아무도 야나를 위로해 줄 여유도 없었습니다. 야나는 그 방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축이었습니다. 자신의 고통을 혼자 참아 내야 했고, 제 몸에 맞는 깨끗한 잠옷을 얻을 권리조차도 없었습니다. 이번 사고 때문에 정부에서 날림으로 준비한 모든 비상조치를 했지만 재정이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관리들은 그저 잽싸게 제 한 몸 피신하는 거였으니까 말이에요. 

 

야나는 체르노빌 사고가 일어난 뒤의 일들을 기억해 보았습니다. 야나 엄마는 방사능이 심각하게 새어 나올 경우, 주민을 위해 어떤 조치가 마련되어 있는지 다른 여러 도시들의 관계자들에게 물어보고 다니셨습니다. 하지만 엄마가 확인한 건 사실상 대피소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고, 시립 병원에는 만일을 대비한 장비가 하나도 갖춰져 있기 않다는 사실 뿐이었습니다. 그건 바로 방사능에 쐰 사람들을 전혀 수용할 수 없다는 얘기였지요. 그렇다면 재난 보호 대책을 일반 시민들도 알 수 있게 하려던 엄마의 노력은 모두 헛된 게 아니었을까요? 그들의 대답은 이 대책들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엄마와 아빠는 몹시 화를 냈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저 어깨만 으쓱해 보일 뿐이었지요.

 

병실에 있던 아이들은 고통스러워하면서 신음하고 어린 아이들 방에선 울음소리가 그칠 날이 없었습니다. 야나는 병실에서 이번 재난은 체르노빌 사고 때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는 걸 바로 알아차렸어요. 수천 명이 죽고 외양간이나 풀밭에서 죽어 나간 수많은 집짐승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고 갔습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들은 단지 추측일 뿐이었지요. 

 

폐허가 된 발전소에선 계속 방사능이 흘러 나오고 있었고, 서독의 모든 원자력 발전소들은 가동이 임시 중단된 상태였습니다. 야나는 한 간호사가 투르키에인 아이제에게 빨리 나아야 한다고 말을 했어요. 튀르키에인들이 지금 독일을 떠나고 있어서 낫지 않으면 독일에 남은 마지막 튀르키에인이 될 거라고 말이에요.

 

대화는 ‘구름’에 관한 이야기로 계속 이어졌습니다. 사람들은 그 구름은 바람을 타고 이리저리 떠돌고 있으며 위험 지역에선 외국인들뿐 아니라 독일인들까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다고 했습니다. “정말 악마 같은 구름이야! 일기 예보에선 말하지도 않은 온갖 일들이 다 벌어지고 있으니 말이야.” 청소부 아주머니가 방을 청소하면서 투덜거렸어요. “그런데 지금, 그게 서풍을 타고 북쪽으로 가고 있다면….” 그다음 날 낮부터, 식료품 값이 빠르게 뛰어올랐습니다. 재난 지역이 아닌 곳에서도, 주민들은 오염되지 않은 식료품을 사재기하느라 슈퍼마켓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야나는 금지 구역이 세 종류로 뚜렷하게 나뉘어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린 원자로에 가장 가까운 곳은 A지역이었습니다. 이곳에선 아무도 살아남지 못했고, 언제까지나 그 누구도 살 수 없도록 했습니다. B지역은 A지역 바로 옆으로, 역시 심하게 오염되었으며 몇 년 동안 오갈 수 없도록 했습니다. 다만 C지역 사람들은 몇 달 뒤에 자신들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슐리츠는 C지역에 속했습니다.

야나는 몇 달이 지난 뒤 일들을 생각해 보았어요. 아마 자신은 가족이 없는 집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걸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괴로웠습니다. 그 생각들을 떨쳐 버리려고 애썼습니다. 바이어에 온 뒤로, 야나는 더 이상 아빠, 엄마, 카이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애썼어요. 그들은 떠나 버렸고, 이제 자기는 혼자였던 것입니다.

 

야나가 바이어 임시 병원에 온 지 며칠 뒤, 내무부 장관이 들를 거라는 발표가 있었습니다. 병원의 아이들 부모들은 정치가들에 대한 분노로 꽉 차 있었습니다. “그런 작자는 무너진 발전호 파편 속에 그냥 던져 버려야 한다고!” “그렇다면 거기에 던져 넣을 정치인들이 어디 한둘이겠어요?””그런 발전소 주변에서 입은 치명적인 피해는 정치가든 누구든 이 재난의 책임자들만을 처벌하는 것만으론 모자라요. 하지만 불평하진 말자고요. 여긴 민주주의 국가이고, 그래도 아직은 쓸 만한 정치가들 아래서 살아 봤으면 좋겠군 그래!” 옆의 침대에 누워있는 로완의 부모님은 분노의 대화를 이어갔어요.

 

잠시 후, 경찰차 한 대와 지프 한 대가 그 자리에 나타났어요. 야나는 다시 몸을 일으켜 창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차에서 내린 사람들 가운데 그 장관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ㄱ러나 오늘은 그가 웃지 않고 있었어요. 작업복 차림을 한 그는 경찰관들과 사복 입은 사람들과 의사들 가운데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그들 말고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사복 입은 사람들은 아마 그 장관의 수행들이거나, 시의회 의원인 듯 싶었어요. 장관은 이 병원이 너무 열악하니 가장 먼저 지원받을 수 있도록 말하겠다고 했습니다. 이미 방문은 닫혔고, 장관은 서둘러 떠나 버렸습니다. 그 뒤를 이어 돌로 된 조각상이 문짝을 때리며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바닥에 떨어졌어요. “그럼, 울리는? 누가, 어떻게, 그 애를 정상으로 되돌려 놓을 수 있다는 거야?” 야나가 소리쳤습니다. “부모님과 카이는, 또 외할머닌?” 야나가 내지르는 소리에 놀란 나머지 아이들은 두려움에 떨며 야나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들은 여태까지 야나가 벙어리인 줄 알았거든요. “알무트 이모는? 또 그 아기는?” 야나는 멈출 수가 없었어요. 복도에서 소란이 일어났습니다. 다른 방 환자들이 다 거기로 모여든 것 같았어요. “그럼, 난? 난 어떡해?” 야나는 울부짖고 있었습니다. “또 여기 이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우리가 정상으로 되돌아갈 수 있단 말이에요?” 주위 사람들이 말렸지만 야나는 눈물이 겉잡을 수 없이 흘렸습니다.

 

복도에서는 소란이 점점 더 커져 갔습니다. 위협적인 고함 소리, 일제히 외쳐 대는 구호 소리, 울음소리, 그 와중에 장관의 목소리도 들렸습니다. 유리 깨지는 소리, 꽝 하고 문 닫히는 소리도 들렸습니다. 얼마 뒤, 그 소란은 잠잠해졌습니다. 장관은 물러갔고, 큰 문은 부서지고, 다들 자기 방으로 돌아갔습니다.

 

-죽어 나가는 아이들-

 

장관이 다녀간 뒤, 야나는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땐 게걸스럽게 먹기조차 했지요. 야나는 희망을 되찾았어요. 문이 열릴 때마다 가슴이 두근 거렸습니다. 도대체 왜…? 부모님과 카이와 외할머니가 죽었을 거라고 그렇게 쉽게 단정해 버렸던 걸까? 아마 그들은 제때에 떠나 마지막 기차나 버스를 잡아타고 도시를 빠져 나갔을 것입니다. 어느날, 엄마가 문 앞에 나타날 것이에요. 카이를 팔에 안고서 활짝 웃으며 말이에요. 아빠 역시 언젠가 저 문 앞에 모습을 드러낼 것입니다. 야나는 옆 침대의 아이제와 말도 하기 시작했어요.

 

간호사 중의 한 명인 콜로뉴에서 온 튀네스는 밖의 소식을 많이 전달해 주었습니다. “A지역은 물론 B,C지역이 이미 텅 비어 버렸단다. 이제 북풍 때문에 카셀과 그 주변 지역 사람들도 대피하고 있어. 동독에서도 주네에서 베르크까지…. 모든 도시가 텅 비어 버렸단다. 망할 놈의 방사능이 아직도 새어 나오고 있거든. 정부에서 그곳에 전문가들을 번갈아 보내고 있긴 하지만 전혀 파악이 안 되는 모양이야. 유감스럽지만 지금 돌아가는 상황이 그렇다고! 처음 며칠 동안은 전 유럽의 절반 가량이 대피소에 피해 있었어. 프랑스인들까지도 말이야. 우리 콜로뉴에선 실제로 거리에 사람이 하나도 없을 정도였어. 단지 굶어 죽기 직전인 사람들만 위험을 무릅쓰고 밖으로 나갔으니까. 관공서, 공장, 상점, 학교 할 것 없이 죄다 문을 닫아 버렸어. 인제 어떻게 하라고 충고해 주는 사람도 아무도 없지.””모든 게 오염되었고 방사능에 노출되어 버렸어. 사람들 말로는 중부 유럽 전체에 걸쳐 땅의 표층을 제거해야 한대. 그렇게 되면 우리들 접시 위엔 뭐가 담겨 나올까? 오래된 통조림이라도 서로 얻으려고 치고받고 난리가 날테지. 과연 우리들 접시에 독일의 시골에서 올라오는 신선한 식품들이 놓이게 될까? 아! 차라리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 게 낫겠어. 우리 집 노인네 두 양반은 이제 출입문 앞에다 꼭 신발을 벗어 놓곤 해. 정원에서 일은 하고 싶지만 도무지 엄두가 안나는 모양이야. 비가 올 때 마다 엄마는 우셔. 아버진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개 두 마리를 도끼로 쳐 죽여 버렸지. 그 신음 소리에 놀라 어머닌 비명을 질렀고 세탁장은 피로 가득했어.”

 

튀네스는 일주일 간의 첫 휴가를 다녀온 뒤, 자신의 낡은 흑백텔레비전을 가져다 아이들이 볼 수 있도록 놓아주었습니다. 야나는 재난 지역에 관한 보도, 사람들을 찾는 광고문, 전문가 토론, 일기 예보, 바람의 방향, 그리고 방사능 유출에 관한 최신 측정 결과를 봤습니다. 수백만에 이르는 대피자들과 재난 지역 밖으로 피신한 사람들의 수용에 관한 보도를 숨죽이며 지켜보기도 했지요. 정부에선 이재민들을 조금 더 안전한 지역에 나누어 보냈어요. 그 작업은 아주 엄격한 조치가 없이는 해낼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이 살 만한 곳은 서류에 모두 올리고 될 수 있는 대로 다 동원되었습니다.

 

유럽에 있는 모든 핵 발전소의 가동을 확실히 중단할 것과 독일 정붕의 사퇴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보았습니다. 그중 한 시위에서 여섯 명이 죽는 사고가 일어났어요. 사람들의 분노는 특히 내무부 장관에게 쏠렸습니다. “장관이라는 놈이 안락의자에 편히 앉아 꼼짝도 하지 않아. 지난번에는 현장을 둘러보다가 하마터면 정말로 사람들한테 집단 폭행을 당할 뻔했어.”튀네스가 지나가며 말했어요. 동독은 몇 번이나 계속 항의를 했고 배상을 요구했습니다. 체코에선 성난 군중들이 독일 대사관으로 몰려갔어요. 오스트리아인들도 벌써 며칠 전부터 독일인들이 지나가지 못하도록 국경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텔레비전에서는 또 2차 세계 대전 이후 사람들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주장하던 국제 연대에 관한 보도를 했습니다. 야나는 그날 많은 새로운 일들, 믿기 어려운 많은 사실들을 알게 되었어요. 

 

뉴스 마지막엔 사람을 찾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부모들은 아이들을 찾고, 또 아이들은 자기 부모들을 찾고 있었습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길이 없는 노인들이 수도 없었고, 누군지 알 수 없는 사망자들의 사진이 화면에 나타났습니다. 그와 더불어 실종자들의 이름을 적은 표와 죽은 사람들의 이름이 나왔어요. 튀네스는 아이들의 부모나 가족들을 찾아 준다고 말했어요. 아이제는 아빠와 만나게 되었어요.

 

야나가 이 병원에 온 지 17일이 지났습니다. 심각한 증상 없이 일주일 정도 더 지내면 가장 어려운 고비는 넘긴 셈이라고 의사가 말해 주었어요. 야나는 별문제 없이 회복될 수 있을 거라고 또한 말해주었습니다. 야나는 병원에서 나가면 몰래 엄마, 아빠, 카이 그리고 외할머니를 찾겠다고 생각했어요. 

 

병원에는 계속해 새 환자들이 들어왔고, 관들이 나가기도 했습니다. 같은 병실에 있던 로완도 갑자기 죽게 되어 로안의 엄마는 너무 충격을 받았지요. 사람들이 로운의 주검을 내갔을 때 로안의 아빠는 울었습니다.

 

학교가 오염되어 아이들의 증세는 더욱 심해져 갔습니다. 야나도 식욕을 잃어버리고, 몸은 축 늘어졌고 열이 나고 설사도 했습니다. 편도선이 부어올라 무척 고통스러웠지요. 머리카락도 다 빠질까 봐 전전긍긍하며 예민해져 갔습니다. 튀네스는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모자를 모아다가 머리카락이 많이 빠진 아이들에게 주었어요.

 

-고모가 찾아와-

 

함부르크에서 온 헬가 마이너 고모가 야나를 불렀어요. 야나는 깜짝 놀라 눈을 번쩍 떴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기다리던 사람은 아니었어요. 고모는 야나의 부모님과 카이, 외할머니가 희생자 명단에 들어 있었다는 것을 알려 주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야나는 울부짖기 시작했습니다. 귀를 찢을 듯한 비명 소리였어요. 아이들은 겁에 질린 채 그냥 멍하니 바라보긴만 할 뿐이었습니다. 야나는 주먹으로 자기 앞에 있는 사람들을 마구 때렸어요. 그러자 튀네스가 야나를 꼭 붙들고 간호사가 주사를 놓았습니다. 발작적인 비명소리가 점점 뜸해지더니 스르르 야나의 눈꺼풀이 감겼어요. 그리고 잠시 신음 소리가 나더니 곧 잠잠해졌습니다. 

 

야나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 헬가 고모는 떠나고 없었어요. 밤이 되자 야나는 부모님과 울리, 카이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정말 많이 그리워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이제 더 이상 살아있지 않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지요. 옆에 누워있던 튀르키에 친구 아이제도 죽었습니다.

 

헬가 고모가 머리가 빠진 야나에게 씌울 모자를 구해왔습니다. 하지만 야나는 자신의 모습 그대로 살아갈 거라며 모자 쓰는 것을 거부했어요. 야나는 점점 나아져서 걸음을 떼어 보며 날마다 운동을 했습니다. 기력은 서서히 돌아왔습니다. 

 

며칠이 흐른 후 야나는 헬가 고모집으로 가서 머물게 되었습니다.고모는 야나에게 비싼 옷을 사 주었습니다. 갑신 신발과 검은 바지와 고급 스웨터를 입어 본적이 없었지요. 어쩐지 어색하고 움직임이 거북스러웠습니다. 자동차에 올라타자마자, 고모는 아냐에게 검은 색 모자를 하나 내밀었어요. 바스크 족이 쓰던 베레모 같기도 하고, 성직자들이 쓰던 네모난 모자 같기도 했습니다. 누가 봐도 아주 비싼 모자임에 틀림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오염된 지역에서 온 사람들을 이상하게 바라보니 모자를 꼭 쓰라고 일렀어요. 

 

함부르크로 가는 길에 휴게소에 식당에 들렀는데 고기나 야채가 모두 수입된 것들이었습니다. 모든 곳이 오염이 되어 수입을 하거나 발전소가 폭발하기 전의 야채를 먹고 있었습니다. 물론 가격도 매우 비쌌습니다. 야나는 돈 없는 사람들은 뭘 먹고 사는지 궁금했습니다. 고모는 그들은 덜 비싼 것을 먹고 살거라는 대답을 합니다. ‘바로 이런 게 부자들과 가난한 자들 사이에 생겨난 새로운 차이구나.’라고 야나는 생각했지요.

 

-악몽-

 

그린 발전소에서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함부르크에서는 생활이 아주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야나는 그 사실이 아주 놀라웠습니다. 야나에게 방이 따로 있었고, 고모는 돈을 아끼지 않고 새 옷을 사 주었습니다. 고모는 야나의 방에다 바흐에서 오르프에 이르기까지 고전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유선 방송도 설치해 주었습니다. 한편 함부르크에서는 3주 동안 쉬었던 학교 공부가 다시 시작되었어요. 수학과 화학을 가르치는 고모는 아침에 출근해서 낮 열두 시에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따금 고모는 오염되지 않은 일용품들을 구하러 나갔어요. 야나가 따라가고 싶어 했지만 고모는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게 몹시 힘들거라는 이유였습니다. 야나는 그저 쉬고 있어야만 했어요. 고모는 자신의 역할을 몹시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지요. 고모는 야나의 의견도 무시하고 이것저것을 일방적으로 강요해 야나를 몹시 답답하게 했습니다. 학과 공부나 행동거지에 일일이 간섭했으며, 무슨 일이건 관습에 따를 것을 강요해서 더욱 숨 막혔습니다.

 

야나는 몹시 두려워했지만 고모는 자신이 다니는 학교에 야나를 등록했습니다. 다시 학교에 나가는 첫날 아침, 야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어쩔 수 없었지요. 자기 반에 새로 들어 온 학생은 야나 혼자만이 아니었습니다. 학교가 다시 열리게 된 뒤, 사고 지역에서 피신해 온 아이들 셋이 더 있었습니다. 사실, 거의 모든 반에 부모를 모두 잃은 학생이 적어도 둘 이상은 있었습니다. 야나만이 특별한 경우가 아니었습니다.당연히 야나는 그런 아이들과 함께 어울리려고 했습니다.

 

학교 아이들은 야나가 모자를 쓰지 않고 대머리를 하고 다닌다며 히바쿠샤(원폭 피해 도시) 출신이라고 놀렸습니다. 거리를 지날 때면, 사람들은 자기를 피했습니다. 야나는 그 모욕을, 동정과 호기심으로 가득한 곁눈질을 참아 내야만 했지요. 

 

-너그러운 이모-

 

비가 내리는 어느 토요일, 알무트 이모가 야나를 찾아왔습니다. 야나는 너무 반가워 이모를 끌어 안았어요. 이모는 비쩍 마른 몸에다 눈언저리에는 푸르스름한 멍이 들어 있었습니다. 알무트 이모와 야나는 가족의 죽음에 대해, 알무트 이모의 상태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둘은 서로 끌어안고 오래도록 울었어요. 그러고는 히바쿠샤들이 연대 조직을 만들려는 첫 시도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재난 지역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모여서 연대를 한다는 것이었죠. 

 

이 사회에서 히바쿠샤들은 머지않아 특수한 계층이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말하자면 병든 떠돌이라고나 할까요. 경제적으로 보면 비효율적인 사람들이고, 특히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낼 수 없는 그런 사람들인 거죠. 게다가 몹시 귀찮은 존재들이기도 하고요. 그들은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죄책감을 불러일으키고, 또 그들이 그 사고를 잊어버렸거나 잊으려 할 때 다시 일깨워 줄 테니까요. 야나는 자신이 모자를 쓰지 않는 것도 그들에게 기억을 시키기 위함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모는 계속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소동이 벌어지던 날 말이야. 사고가 있은 뒤 한두 시간이 지났을까? 정부에선 A지역 주변에 안전띠를 둘러쳤지. 보호복을 입은 결찰들과 군인들이 말이야. 그들은 이 지역 사람들에게 모두 지하실로 내려가라고 했어. 그리고… 사람들이 그러는데 달아나는 사람은 죽이겠다고 했대. 경기관총으로 말이지.” “사람들 말로는, A지역 주민들은 그때 이미 사람들마저 위험하게 할 만큼 오염되었대. 게다가 그들은 어차피 살아남을 가망도 없고 끔찍한 고통 속에서 죽어 갈 테니까 결국 아무래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었겠지.” 그러나 야나가 울부짖듯 말했어요. “하지만 경찰과 군인들, 그들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인간이란 무슨 짓이든 다 할 수 있는 존재란다.” 또 다시 침묵이 흘르다가 야나가 입을 열었어요. “이모, 아빠도 거기서 빠져나올 수 없었던 사람들 가운데 끼어 있었을까요?” “그건 잘 모르겠구나.”이 말에 야나는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하부르타식 질문들의 예:

-야나는 왜 베르트씨 부부의 아이들을 잃어 버리고 나서 웃음을 터트렸을까요?

-야나는 왜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른채 마냥 뛰었을까요?

-야나는 왜 피해를 보고는 정부에 항의를 하지 않았을까요?

-야나는 고모에게 왜 모자를 쓰지 않겠다고 했을까요?

-이모는 왜 머지않아 재난지역에 살아남은 사람들이 이 사회에 특수한 계층이 될 거라고 했을까요?

-이모는 왜 야나에게 군인들이 A지역 사람들에게 총을 쏜 이야기를 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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