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로마 신화: 에로스와 프시케의 사랑 이야기와 그리스 신화를 되살린 이탈리아 르네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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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 신화: 에로스와 프시케의 사랑 이야기와 그리스 신화를 되살린 이탈리아 르네상스

by &#$@* 2023. 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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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화살을 쏘는 에로스

에로스는 로마 신화에서 아모르(연애) 또는 쿠피도(Cupido, 욕망)라 하고, 영어로는 큐피드(Cupid)라고 부릅니다. 에로스는 회화 작품 등에서는 원래 아름다운 청년의 모습으로 그려지지만 아프로디테의 아들이라는 설이 주를 이루면서 소년이나 꼬마 신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그 캐릭터도 ‘변덕스럽고 장난을 좋아하는 신’으로 인식이 바뀌어 갔지요. 

 

이 꼬마 신은 대개 어깨에 날개를 달고 활과 화살을 휴대하고 있습니다. 그의 황금 화살을 맞은 이는 마음에 격렬한 애정이 싹트고 반대로 납으로 된 화살을 맞으면 혐오감이 일어나게 된다고 하지요. 이처럼 에로스는 신들과 인간의 마음을 지배할 수 있었습니다. 에로스는 가끔 장난기가 발동하면 순간적인 감정으로 화살을 쏘아 비극을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아폴론과 다프네의 비련도 에로스가 쏜 사랑의 화살이 가져온 것입니다.

 

에로스와 프시케의 결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자신보다도 아름답다고 소문난 프시케라는 공주에게 질투를 느껴 아들 에로스에게 그녀를 불행한 사랑에 빠뜨리라고 시켰습니다. 그런데 프시케의 아름다움은 사랑의 신 에로스의 마음도 흔들어 놓았지요. 에로스는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을 넋을 놓고 바라보다 그만 마법의 화살을 자신의 손가락에 상처를 내고 사랑의 포로가 되고 말았습니다. 한편 프시케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이유로 결혼과는 인연이 없었어요. 이에 부모가 신탁을 청했더니 “딸에게 신부 옷을 입히고 산 정상에 두고 떠나거라. 그녀의 남편은 신들마저도 두려워하는 자이다”라는 대답을 들었어요. 부모는 딸의 불행을 슬퍼하면서도 할 수 없이 신탁에 따라야만 했습니다.

 

산 정상에 홀로 남겨진 프시케는 바람의 도움으로 호화스러운 궁전으로 인도 받았습니다. 궁전 안에는 아무도 없고 소리만 들렸어요. 프시케는 모스 이 보이지 않는 하인이 안내하는 대로 호화스러운 식사를 하고 목욕을 한 후 잠자리에 들었어요. 그날 밤 프시케는 신탁이 일어주었던 남편이 옆에 있는 것을 느끼고 눈을 떴습니다. 남편은 부드럽게 포옹하며 신부를 맞이하더니 절대 자신의 모습을 보아서는 안 된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남편은 밤마다 나타나서 날이 새기 전에 돌아가는 것이었어요. 그래도 프시케는 궁전 안에서 흡족한 생활을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녀의 행복을 시기한 언니들이 “네 남편은 분명히 괴물일 테니 확인을 해 보라”라고 부추겼어요. 불안해진 프시케는 어느 날 밤 마침내 램프의 불빛을 비추어 남편의 모습을 보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사랑의 신 에로스가 있었던 거지요. 놀란 프시케는 그만 램프의 뜨거운 기름을 그의 어깨에 흘리고 말았습니다. 에로스는 화상을 입고 그 아픔에 눈을 뜨더니 그대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시어머니 아프로디테가 며느리 프키케를 구박하다

프시케는 아무것도 없는 초원에 홀로 남겨졌어요. 에로스와 함께 궁전도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프시케는 남편을 찾아 세상을 헤매고 다녔지만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어요. 그녀는 용기를 내서 아프로디테를 찾아가 남편이었는 곳을 물었습니다. 그러나 아프로디테는 엄청나게 화를 내었지요. 여신은 프시케를 호되게 다루고 매를 때렸으며, 게다가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을 하도록 명령했습니다. 그 시련이란 단 하루 만에 보리, 조, 수수 등이 뒤섞인 곡물 더미를 종류별로 골라서 나누어 놓는 일이었어요. 게다가 난폭한 숫양의 황금 털도 밀어 와야 했고, 또 생명의 샘에서 물을 떠 와야 했지요. 이런 일들은 그녀 혼자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매번 개미나 독수리 같은 불가사의한 협력자들이 나타나 그녀를 도와주었어요.

 

이렇게 3가지 시련을 완수한 프시케는 또다시 네 번째 혹독한 시련을 겪게 됩니다. 그것은 명계의 와비 페르세포네에게서 ‘미’의 상자를 받아오라는 것이었어요. 이번에도 불가사의한 협력자가 나타나 도와준 덕분에 상자를 갖고 나오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상자를 갖고 돌아가는 길에 호기심 반, 초라해진 자신을 치장하고 싶은 마음으로 상자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러자 프시케는 그 자리에 쓰러져 깊은 잠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상자 안에 있던 것은 ‘미’가 아닌 ‘잠’이었던 것이죠. 프시케가 잠든 곳에 화상이 다 나은 에로스가 다가와 화살 끝으로 살짝 건드려 잠을 깨우고 그녀를 데리고 올림포스 산으로 갔습니다. 에로스는 제우스에게 하소연을 하며 자신의 아내와 어머니를 중재해 달라고 했습니다. 아프로디테는 결국 프시케의 한결같은 마음에 지고 말았어요. 프시케는 신의 술 넥타르를 마셔 불사신이 되었고 올림포스에서 행복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에로스(Eros)는 에로틱(Erotic) 등과 같이 주로 성애나 호색적인 것을 표현하는 말의 어원이 되었습니다.

* 프시케(Psyche, 영어는 사이키)는 아이콜로지(Psychology, 심리학)의 어원이 되었습니다.

*아프로디테(Aphrodite)의 이름에서 최음제(Aphrodisiac, 성욕을 촉진시키는 약물)라는 말이 파생되었습니다.

 

 

그리스 신화를 되살려 낸 이탈리아 르네상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대표적 화가 보티첼리가 ‘비너스의 탄생’을 발표했을 때 그 관능적인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유는 이전까지 그리스도교 관점의 테두리 안에서는 인체에 대한 사실적 묘사가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중세 유럽에서는 교회가 절대 권력을 갖고 있었고, 예술이나 학문 모두 그리스도교의 교리에 얽매여 있었습니다. 당연히 여성의 누드를 그리는 것도 금기시되었죠. 그러나 14세기 들어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금욕적 사회에서 벗어나 인간성을 회복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습니다. 이른바 인간주의 사상이 생겨나, 신앙 위주의 삶과 예술을 인간 위주로 변화시키려고 하였어요. 이에 따라 종교적 속박에서 벗어나 인간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긍정하고, 개성적이고 새로운 시각과 표현을 존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와 로마 문화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적극적으로 고전 양식을 모방하기도 했지요. 이렇게 해서 르네상스(문예 부흥)의 막이 열린 것입니다.

 

보티첼리가 르네상스의 발상지인 피렌체의 명문 메디치가의 의뢰로 ‘비너스의 탄생’을 그린 것은 그 무렵이었습니다. 그리스도교가 부흥하면서 그리스 신화는 5세기경 이후 거의 예술 작품의 소재로 다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한번 예술 작품의 주제를 다루어지기 시작하자, 그 매력적인 소재는 많은 예술가들의 창작 의욕을 불러일으켰지요. 회화뿐 아니라 조각, 건축에까지 큰 영향을 미쳤는데, 이탈리아 조각가들은 고대 조각의 이상을 추구하여 나체상을 많이 제작하셨지요.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르네상스는 이후 프랑스, 독일, 영국 등으로 전파되어 16세기에 정점을 이루게 됩니다. 르네상스 이후 그리스 신화는 서양 예술 작품의 주제로 정착하여 오늘날까지도 새로운 발상의 원천이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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