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로마 신화: 테세우스 모험과 말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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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 신화: 테세우스 모험과 말년 이야기

by &#$@* 2023. 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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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노타우로스와 아리아드네의 실타래

황소와 불륜에 빠진 파시파에

미노타우로스는 인간의 몸뚱이에 황소의 머리를 가진 괴물이었습니다. 이 괴물을 낳은 것은 미노스 왕의 아내 파시파에였는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있었지요. 예전에 미노스는 형제들과 크레타의 왕위 자리를 놓고 다툴 때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네가 바로 신들에 의해 이 나라를 부여받은 자다. 그 증거로 신들은 나의 소원을 들어주실 것이다.” 이 말을 입증하기 위해 그는 해신 포세이돈에게 바닷속에 있는 황소를 보내달라는 소원을 빌고, 그 황소를 신들에게 제물로 바치겠노라고 약속을 했지요. 포세이돈이 이 소원을 받아들여 아름답고 근사한 황소를 보내주었는데, 이로 인해 미노스는 크레타의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미노스는 이 근사한 황소가 탐이 나 감추어 두고는 신들에게 바치지 않았습니다. 포세이돈은 크게 화가 나 황소를 난폭하게 만들었지요. 거기에다가 미노스의 아내 파시파에로 하여금 황소에 대한 욕정을 품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파시파에는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사랑에 애를 태우며 고민의 나날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미노타우로스의 탄생과 라비린토스 미궁

파시파에는 그리스 최고의 명장(明匠) 다이달로스라면 좋은 아이디어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여 그에게 마음속의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이에 다이달로스는 진짜 소의 가죽을 덮어씌운 나무 암소를 만들어 주었어요. 그것은 실로 진짜 암소를 방불케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파시파에는 그 나무 암소 안에 숨어들어 황소와 관계를 맺고 정욕을 풀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태어난 것이 머리는 소이고 목 아래는 인간인 마노타우로스였습니다. 미노타우로스는 ‘미노스의 소’라는 의미입니다.

미노타우로스의 모습을 본 미노스 왕은 놀랍고 두려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이달로스의 모습을 본 미노스 왕은 놀랍고 두려운 마음이 들었지요. 그래서 다이달로스에게 명령하여 한번 들어가면 다시는 빠져나올 수 없는 미궁 라비린토스를 짓게 하고, 그 안에 괴물을 넣어 가두었습니다. 

아테나이에서 제물로 보내져 온 젊은이들은 바로 이 미궁에 들어가 괴물의 먹이가 되는 것이었지요. 라비린토스는 매우 복잡하고 정교하게 설계되어 그 안에 갇히면 그 어떤 누구도 통로나 출구를 찾기 어려웠습니다. 가령 용감한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로스를 쓰러뜨린다 해도 이 미궁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괴물을 퇴치하는 일이 먼저였지만, 미궁에서 탈출해야 하는 과제도 매우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이 라빈토스는 미궁 또는 미로를 의미하게 되었으며, 훗날 미궁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유럽에서는 왕궁 등의 궁전이나 성의 통로에 라비린토스와 같은 미로를 많이 사용하게 되었지요.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로 미로를 통해 탈출하다

테세우스를 비롯한 아테나이의 젊은이들을 태운 배가 마침내 크레타섬에 도착했습니다. 미노스 왕의 딸 아리아드네는 그중에서 가장 늠름하고 아름다운 청년 테세우스에게 첫눈에 반했지요. 이런 이유는 아프로디테 여신이 아리아드네로 하여금 테세우스를 보는 순간 사랑에 빠지게 만들어 테세우스의 모험을 도와주었다고 합니다. 그날 밤 아리아드네는 감옥에 갇힌 테세우스에게 가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나를 데려가 아내로 맞이한다고 약속해 주신다면 미궁에서 탈출한 방법을 알려 드리겠어요.” 테세우스가 그녀의 뜻을 받아들이자 아리아드네는 실타래를 주었어요. 그 실의 한쪽 끝을 입구에 묶어 두고, 실을 풀면서 미궁 속으로 걸어 들어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일행의 선두에 선 테세우는 실을 풀면서 미궁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이윽고 미궁 깊숙한 곳에서 미노타우로스와 마주치게 되었어요. 그 무시무시한 모습에 모두 겁을 먹고 뒷걸음질 치는 가운데 테세우스는 혼자서 용감하게 괴물을 주먹으로 쳐서 쓰러뜨렸습니다. 테세우스는 다시 일행의 선두에 서서 실을 따라왔던 길로 되돌아갔습니다.

 

섬에 혼자 버려진 아리아드네이 운명

미궁에서 탈출한 일행은 서둘러 배에 올라타고 귀환길에 올랐습니다. 항해 도중 배는 낙소스 섬에 기항했는데, 이때 아리아드네가 섬에 혼자 남겨지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배은망덕한 테세우스가 버리고 떠났다는 이야기가 있고, 디오니소스 신이 그녀를 빼앗았다는 설도 있습니다. 또 다른 이야기는 아버지를 배신하고 남자를 따라 도주했기 때문에 화가 난 아르테미스 여신이 그녀를 죽였다고도 합니다.

디오니소스 신의 이야기에 따르면, 낙소스 섬을 지나던 디오니소스가 아리아드네에게 사랑을 느껴 테세우스에게 그녀를 남겨두고 섬을 떠나라고 명령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테세우스는 그녀가 잠든 사이에 배를 출항시켰다는 것입니다.

어쨌든 아리아드네는 아버지를 배반하면서까지 도움을 주고 사랑한 사람이 떠난 걸 알고 절망했지만, 이때 디오니소스 신이 나타나 그녀를 달랬습니다. 이후 아리아드네는 디오니소스 신의 아내가 되어 많은 아이를 낳고 살았다고 합니다.

 

검은 돛 때문에 아이게우스가 죽다

아테나이의 아이게우스 왕은 아들의 귀국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어요. 한편 테세우스는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아테나이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테세우스는 살아서 ㄷ로아가면 배의 검은 돛 대신에 흰 돛으로 바꿔 달겠다고 한 아버지와의 약속을 까맣게 잊고 있었답니다. 검은 돛을 그대로 단 채 항구로 들어왔던 것이죠.

 

아크로폴리스 언덕에서 검은 돛을 단 배를 본 아이게우스는 아들이 죽은 줄로만 생각하고 절망한 나머지 절벽 아래 바다에 몸을 던져버렸습니다. 이후에 그 바다는 아이게우스의 바다, 즉 에게해라고 불리게 되었지요. 

 

오해가 낳은 슬픈 결말: 비극의 히폴리토스와 테세우스의 만년 이야기

아테나이의 왕이 되다

테세우스는 아버지 아이게우스의 뒤를 이어받아 왕이 되고 아테나이의 번영과 국가를 통합시키는데 큰 공을 세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테나이의 영역을 코린토스의 이스트모스까지 넓혔습니다. 거기서 그는 헤라클레스가 제우스를 위해 올림피아 경기를 창설한 것처럼, 해신 포세이돈을 위해 코린토스에 이스트미아 경기를 창설했다고 합니다. 정치가로서의 능력을 한껏 발휘한 것입니다. 

물론 젊은 시절과 마찬가지로 모험을 향한 뜨거운 열정도 잊지 않았지요. 테세우스는 여전사 아마존족의 나라로 원정을 떠났는데, 그 전과로 여왕 히폴리테를 사로잡아 귀국하여 아내로 삼았답니다. 곧이어 아마존족이 아테나이를 공격해 왔지만 테세우스는 그녀를 쉽게 물리쳤습니다. 하지만 히폴리테는 테세우스와의 사이에 아들 히폴리토스를 낳고는 죽습니다. 

시간이 흘러 히톨리토스는 결혼 적령기의 청년이 되었지만 명상에 잠기거나 사냥하러 다니는 것만 즐겼지요. 그는 처녀신 아르테미스를 숭배한 반면 사랑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경시했습니다. 분노한 아프로디테는 엄한 벌을 주기로 했습니다. 

그때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의 동생 파이드라와 재혼한 상태였습니다. 아프로디테는 이 파이드라에게 의붓아들 히폴리토스를 향한 미칠 듯한 사랑의 감정을 심어 주었어요. 

 

거짓 유서로 아들을 죽이다

파이드라는 금단의 사랑 때문에 괴로움으로 몸부림쳤습니다. 자신의 의붓아들을 사랑하여 욕정을 품게 되다니, 하지만 그를 사랑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도 도무지 마음을 다스릴 수가 없었습니다. 이를 보고만 있을 수 없던 파이드라의 유모가 히폴리토스에게 그녀의 마음을 전달해 주었지요. 그랬더니 히폴리토스는 그 사랑을 단번에 거절할 뿐만 아니라 “이 난잡한 계집 같으니!”하고 파이드라를 큰 소리로 비난했습니다. 파이드라는 얼굴이 창백해지고 너무도 싶은 수치심에 가슴이 떨렸습니다. 이제 더 이상 살아갈 희망을 잃은 파이드라는 ‘히폴리토스에게 여자로서의 수치심을 당했다’는 거짓 유서를 남기고 자살해 버립니다. 

유서를 본 테세우스는 불길처럼 화를 냈지요. 그는 아들의 변명을 들으려 하지도 않고 멀리 추방시켜 버렸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해신 포세이돈에게 제 자식을 죽여 달라고 빌기까지 했어요. 

불행하게도 테세우스의 바램은 곧 이루어졌습니다. 히폴리토스가 궁전에서 쫓겨나 해변으로 마차를 달릴 때 포세이돈이 보낸 괴물이 바다에서 나타나 마차를 전복시켰습니다. 그 때문에 히폴리토스는 말고삐에 휘감겨 죽고 말았어요. 나중에 아르테미스 여신으로부터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된 테세우스의 낙담은 매우 컸습니다.

히폴리토스의 비극적 이야기는 비극 작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비극 작가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인 [히폴리토스]도 이 이야기를 소재로 하고 있는데, 디오니소스 제전에서 1등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후에도 히폴리토스 이야기는 많은 작가들의 작품에 등장합니다.

 

무모한 결혼 계획으로 명계에 내려가다

테세우스는 아내와 아들을 한꺼번에 잃은 슬픔에 잠겨 있었지만 머지 않아 친구 페이리토오스(테살리아에 사는 라피타이족의 왕, 그 또한 아내를 잃은 상태였음)와 함께 새로운 아내를 맞이하기로 했어요. 그들은 제우스의 딸들을 아내로 삼으려는 어처구니없는 야망을 갖고 있었습니다. 테세우스는 스파르타의 공주 헬레네(제우스와 스파르타 왕비 레다의 딸, 그 아름다움은 후에 트로이아 전쟁의 원인이 됨)를, 페이리토오스는 명계의 왕비 페르세포네를 각각 협력하여 빼앗으려고 했지만, 너무나도 무모한 계획이어서 이루어지기엔 힘든 것이었지요. 

페이리토오스는 테세우스의 가장 절친한 친구였습니다. 그들의 우정은 페이리토오스가 테세우스의 소떼를 몰고 간 일이 계기가 되어 시작되었지요. 이는 페이리토오스가 테세우스를 만나기 위해 일부러 벌인 일이었습니다. 테세우스는 그를 추격해 따라잡았으나 이내 서로 호감을 느껴 우정을 맹세하게 되었어요.

둘은 힘을 합쳐 헬레네를 잡치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어 페르세포네를 데려오기 위해 무모하게도 명계로 내려갔어요. 명계의 왕 하데스는 이들의 속셈을 알아채고 우선 의자에 앉으라고 권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앉은 의자는 바로 ‘망각의 의자’였어요. 둘은 의자에 앉자마자 지상의 기억을 모두 잊어버렸습니다. 

 

이들은 후에 헤라클레스가 마지막 과업으로 명계의 파수견 케르베로스를 잡으러 왔을 때까지 명계에 눌러 앉아 있다가, 간신히 테세우스만 구출되었습니다. 아테나이로 돌아온 테세우스는 오랫동안 국정을 소홀히 했기 때문에 사람들의 비난을 피할 수 없었지요. 그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유괴된 헬레네를 빼앗으려고 스파르타군이 쳐들어온 데다가, 새로 왕좌를 노리는 이도 등장해 아테나이는 그야말로 혼란 그 자체였습니다.

 

테세우스, 아테나이에서 추방되다

결국 아테나이에는 새로운 왕이 즉위하고 테세우스는 먼 곳으로 추방되었습니다. 그는 친족인 스키로스 섬의 리코메데스 왕에게 몸을 의탁하지만,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했습니다. 테세우스는 아무런 희망도 없이 혼자서 쓸쓸한 만년을 보내다 최후에는 벼랑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습니다. 

일설에는 리코메데스 왕이 그를 배신하여 밀어 떨어뜨렸다고도 합니다. 그는 자신의 왕위를 테세우스에게 빼앗길까 봐 두려워했는데, 적당한 구실로 테세우스를 벼랑으로 데려간 다음 그 같은 일을 저질렀다는 것이지요. 또한 라코메데스가 아테나이의 새로운 왕에게 사주를 받았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어쨌든 아테나이의 위대한 영웅치고는 너무나도 쓸쓸한 말년이었지요.

 

그러나 훗날 테세우스의 명예는 회복되고, 아테나이의 기반을 다진 영웅이자 통치자로 널리 숭배됩니다. 기워전 5세기 마라톤 전투 때 그리스인들은 신탁에 따라서 테세우스의 유골을 스키로스 섬에서 아테나이로 옮겼습니다. 이것은 신전에 안치되었는데, 그 후 아테나이에서는 신과 비슷한 존재로 테세우스를 우러러보게 되었어요. 참고로 고대 아고라의 유적에 남겨진 헤파이스토스 신전이 예전에는 테세이온(테세우스의 신전)으로 여겨졌습니다. 사후에 다시 영웅으로 대접받게 된 것입니다.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

의사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기원전 460년경-375년경)는 고대 그리스에서 의술의 신으로 추앙받던 아스클레피오스의 자손이라고 합니다. 신화에 의하면 아스클레피오스는 아폴론 신의 아들이지요. 그는 켄타우로스족의 현자 케이론에게 의술을 배운 후 명의가 되었는데, 그 후 죽은 사람을 소생시키는 능력까지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테나 여신으로부터 사람을 소생시키는 힘이 있는 메두사의 피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하지요. 

 

전해지는 설에 의하면 테세우스의 아들 히폴리토스도 그가 손을 써 되살아났다고 합니다. 하지만 인간이란 예외없이 누구나 죽어야 하는 법이지요. 이 절대적인 이치를 깨뜨린 아스클레피오스는 제우스의 벼락을 맞게 됩니다. 하데스가 저승에 온 사람들을 다시 데려가는 것에 하가 나서 제우스에게 부탁했다고도 하고, 제우스가 인간이 불사의 능력을 얻을까 두려워하여 죽였다고도 합니다. 죽은 후 그는 제우스에 의해 천상으로 올라가 뱀 주인자리가 되었다고 하지요. 뱀은 탈피를 함으로써 다시 젊어지거나 재생하고, 치유된다는 상징을 갖고 있어 이 의술의 신을 상징하는 동물이 되었습니다. 그리스 사람들은 아스클레피오스의 뱀을 신성한 동물로 여기고 수탉을 제물로 바치기도 했지요. 

아스클레피오스의 성지로 이름이 있는 높은 곳은 에피다우로스와 코스 섬이었습니다. 에피다우로스는 ‘성스러운 마을’로 불리며 커다란 신전이 세워져 많은 병자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아스클레피오스 성지를 방문한 고대 사람들은 신전 안에서 하룻밤을 지내며 꿈속에서 치료에 관한 계시를 받았다고 합니다. 한편 코스 섬에는 아스클레피오스의 후예로 이스클레티아다이라고 하는 일족이 살고 있었습니다. 히포크라테스는 이 일족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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