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들의 마음속에 숨겨져 있는 원하는 것들은 무엇일까요? 매일 학교와 학원을 다니고 공부하기에 바빠서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을지도 모릅니다. ‘그림자 세탁소’는 그림자를 떼어 내서 세탁한다는 상상의 이야기입니다.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느라 놀고 싶고, 쉬고 싶은 마음을 감추는 아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없다!’ 아무리 뒤를 보아도 늘 내 뒤를 따라 다니던 ‘그 녀석’이 사라져 버렸어요. 조금 전만 해도 분명히 있었는데, 지금은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아요. 혹시나 싶어 잘 보이는 곳으로 가 보아도 그 녀석은 나타나지 않았어요. 가슴이 싸한 것이, 꼭 구멍 난 티셔츠를 입고 밖에 나온 것만 같았지요. 진짜 사라졌는데 이번이 벌써 두 번째이지요. 이 소식을 들은 태성이가 찾아왔어요. “일주일 전에 내가 꿰매 줬잖아. 분명히 잘 붙었는데….” 태성이가 소곤거렸어요.
처음 그 녀석이 이상한 걸 눈치챈 건 태성이었습니다. 태성이는 같은 반이지만 그전까지는 사실 말도 몇 번 해보지도 않았어요. 작년에 전학 왔는데, 항상 교실 맨 뒤에 앉아서 잠만 자고 다른 애들과는 어울리지 않았어요. 태성이는 학원에도 다니지 않고 혼자 거리를 돌아다닌다고 수근거리기도 했어요. 그리고 태성이 아빠가 이상한 곳에서 일한다는 소문도 있었지요.
며칠 전, 학교가 끝나고 운동장을 지나갈 때 태성이가 나를 붙잡았어요. “너 그림자가 덜렁거리잖아.” 황당한 생각이 들어 뒤를 되돌아봤더니 진짜 내 그림자가 거의 떨어질락 말락 너덜 더리고 있었어요. 놀라서 발을 계속 들었다 놨다 했더니 태성이가 나를 붙잡았어요. “가만있어. 그러다 완전히 떨어질라.” 태성이가 말했어요. 그림자가 떨어질 수 있다는 말에 등골이 오싹했습니다.
태성이가 나를 자기네 집으로 데리고 갔어요. 태성이네 집 마당에 들어서자 주위의 공기가 무겁게 깔리고 발끝이 가벼워 마치 솜사탕이 깔린 바닥을 걷는 기분이 들었어요. 순간 엄마가 빨래할 때 나는 것 같은 냄새가 풍겼습니다. 그리고 마당에 걸린 빨랫줄에는 검고 얇은 천이 잔뜩 거려서 춤추듯 가볍게 날리고 있었어요. 그런데 자세히 보니 천이 아닌 것 같기도 했어요. 태성이는 자기네 집은 ‘그림자 세탁소’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태성이는 손에 바늘을 들고 내 그림자를 잡아 북 뜯었어요. 그러자 그림자가 내 발에서 떨어져 나갔습니다. ‘그림자 세탁소’가 무슨 말인지 묻자 설명을 해 주었어요. 그림자는 원래 반투명한 검은색인데, 나쁜 짓을 한 사람들은 그림자에 어두운 영혼이 묻어 더러워진다고 했어요. 그리고 더러워질수록 무거워져서 발을 잡아끌기 때문에 좋은 길로 가는 걸 점점 막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림자 세탁소가 필요한 거라고 했지요. 그림자를 깨끗하게 빨아 탁탁 털고 다시 붙이면 좋은 곳으로 데려가 준다는 거라고 해요. 믿기지는 않았지만 내 눈으로 직접 봤으니 믿을 수밖에요.
“그럼 내가 나쁜 짓을 해서 그림자가 떨어졌다는 거야?” 내가 물으니… 그림자와 우리는 보통 같은 마음인데, 우리가 억지로 어떤 행동을 자꾸 하거나 마음과 반대로 움직이면 그림자가 혼란스러워한다고 했어요. 그게 오래되면 결국엔 그림자가 지쳐서 몸에서 떨어지는 일도 생긴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평생 아무 이상 없이 산다고 해요. 그런데 왜 내 그림자는 갑자기 왜 떨어졌는지 모르겠어요. 태성이가 바느질로 그림자를 다 꿰메자 그림자가 발에서 출렁출렁 움직였습니다.
태성이가 일주일 전에 그림자를 바느질로 붙여 준 후까지는 정말 괜찮았어요. 바느질이 조금 서툴기는 했지만, 발에 다시 딱 붙어서 불편함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녀석이 말을 안 듣기 시작했어요.
나는 지금 이미 학원을 세 군데나 다니고 있지요. 그런데 어느날 엄마가 영어 학원에 가라고 말씀하셨어요. 나는 어릴 때 방학 때마다 외할머니 시골집에 가서 놀았었어요. 할아버지랑 곤충도 잡고 원두막에서 앉아서 수박도 깨 먹었지요. 그땐 방학이 정말 즐거웠었어요. 그런데 작년에는 학원 때문에 외할머니 집에 못 갔어요. 이번 방학에도 내내 학원만 다니게 생겼어요. “중학교 들어가기 전까진 방학 잘 써야지.” 그 순간 내 심장이 쿵 내려앉았어요. 의자 옆으로 나와 있던 내 그림자가 갑자기 밥 먹던 숟가락을 툭 떨어트린 것입니다. 혹시 내가 실수했나 싶어 놀랐지만 숟가락은 여전히 내 손에 있었어요. 다행히 엄마는 눈치를 채지 못한 것 같았어요. 그런데 그 녀석은 여전히 축 늘어진 채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나는 밥을 먹는데 그림자는 움직이지 않고 그냥 축 늘어져 있으니 모습이 너무나 이상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일시적이었는지 내가 양치하면 똑같이 양치를 하는 둥 나를 따라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잘못 봤나 하고 넘어갔어요. 하지만 그 녀석의 이상한 행동은 그 뒤로도 계속되었어요. 점심시간에 밥을 서둘러 먹고 학원 숙제를 하고 있을 때였어요. 운동장에서 축구하자는 정호 말을 거절하고 혼자 빈 교실에 남았는데, 갑자기 눈앞이 어두워져서 고개를 들었어요. 그랬더니 그 녀석이 창문에 딱 붙어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나는 책상에 앉아 있는데, 그림자는 창문에 붙어서 운동장을 바라보고 있다니! 창밖에 뭐가 있나 싶어 내다보니 운동장에서 뛰노는 아들이 말고는 별다른 게 없었어요. “이리 와.” 책상에 앉아 불렀지만 그 녀석은 요지부동이었어요. 그림자 주제에 건방지기 짝이 없었습니다.
녀석의 이런 행동은 점점 더 도를 넘었습니다. 학원에 가야 하는데 자꾸만 다른 반대 방향으로 가거나, 시험 공부를 해야 해서 책상에 앉아 있는데, 그 녀석이 갑자기 축 늘어져 버렸습니다. 그러더니 그대로 늘어져 침대에 철퍼덕 누워 버렸지요. 난 그때야 그 녀석이 일부러 이러는 거라는 것을 알았어요. 하지만 절대로 그 녀석 뜻대로 해 주고 싶지 않았어요. 그러다 지치면 다시 나를 따라 줄 거라고 생각했지요. 그랬는데 그 녀석이 진짜로 도망가 버릴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나는 그 녀석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돌아다녔어요. 하지만 학원에 가야 할 시간이라서 시간이 없었어요. 태성이가 “그림자는 네 분신이야.”라고 말했어요. 그제야 나는 정신을 차리고 찾기 시작했답니다. 태성이와 동네를 샅샅이 뒤지고 다녔는데, 그 녀석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어요. 그 녀석은 놀이터에서 혼자 그네를 타고 있었습니다. 참 나, 나한테 도망가서 하는 짓이 고작 이런 거라니…
내가 다가가자 그 녀석은 싫다는 듯이 한 발짝 물러났습니다. “이리 와.” 다시 또 한 발짝.. 이상한 말이지만… 그 녀석은 무척 쓸쓸해 보였어요. “네 그림자, 그동안 지친 거야.” 태성이가 다가와 말했어요. “너 요즘 밖에서 놀거나 뛰어다닌 적 한 번이라도 있어? 놀이터도 오랜만이지?” 나는 항상 학교, 학원 가고 숙제하느라 바쁘게 지냈거든요. 가끔 쉴 때는 텔레비전 보고 휴대폰으로 게임하는 게 전부였어요. 그러고 보니 놀이터에 언제 마지막으로 왔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습니다.
태성이가 갑자기 나를 잡아 끌더니 ‘뺑뺑이’ 안에 넣었어요. 그러더니 힘껏 돌리기 시작했어요. 뺑뺑이가 무서운 속도로 돌아갔어요. 처음엔 어지럽고 토할 것 같더니 조금씩 신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뭐 해? 너도 붙어!” 태성이가 그 녀석을 보며 소리치자 그 녀석은 쭈뼛거리며 다가와서 뺑뺑이 안으로 들어왔어요. 태성이가 더 세게 돌리자 그 녀석이 뺑뺑이 밖으로 튀어나온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렇게 즐거워하는 모습은 정말 오랜만에 봤지요. 머리를 젖히고 입을 크게 벌린 모습이 행복해 보였어요.
태성이의 바느질 솜씨가 더 좋아졌는지 이번에 실로 더 단단하게 꿰멨습니다. 그 녀석은 다시 내 발에 붙었어요. 내가 다시 학원에 가려고 하자 그 녀석은 다시 길게 늘어져 또 가기 싫은 듯했어요. 예전에는 몰랐는데 그림자라는 게 생각보다 꽤 무게가 나가는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발이 안 떨어지는 거겠지요. 나는 뒷짐을 지고 한 번 폴짝 뛰어 보았어요. 그 녀석도 나를 따라 폴짝 뛰는 게 아니겠어요. 아무 의미 없는 행동이었지만 그 녀석은 재미있다는 듯이 나를 똑같이 따라 하는 것이었어요.
학원을 가면서 마음속으로 외할머니네 시골을 떠올렸어요. 시원한 냇가, 작은 원두막, 지천으로 깔린 앵두나무, 그곳에서 풍기는 시큼털털한 단내,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손끝의 앵두… 지금도 생생히 느껴집니다. 이번 시험만 끝나면 엄마한테 외할머니 집에 가고 싶다고 말해봐야 겠어요. 뒤를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이자 그 녀석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하부르타식 질문의 예:
그림자는 왜 사라져 버렸을까요?
나는 왜 그림자를 찾으러 갔을까요?
그림자는 왜 나에게서 도망가서 놀이터에 앉아 있었을까요?
그림자는 갈 곳도 없으면서 왜 나에게 돌아가지 않았을까요?
나는 왜 이번 시험만 끝나면 외할머니 댁에 가고 싶어 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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