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메토코 산의 곰]은 사냥꾼과 곰 사이의 숙명적 대결을 그리면서 그 속에 흐르는 인간과 동물의 교감에 대한 미야자와 겐지의 작품입니다. 곰 사냥의 명수 고주로는 나메토코 산의 곰들을 사냥해서 살아가지만 곰을 미워하거나 그 일을 좋아하는 것은 아닙니다.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지요. 곰들도 마찬가지로 고주로를 싫어하지 않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고주로는 곰의 공격으로 죽음을 맞이합니다. 곰의 공격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지요. 그러나 고주로는 곰을 탓하지 않고 오히려 ‘곰들아, 날 용서해 줘.’라는 말을 남기고 죽습니다. 고주로가 죽고 사흘째 되는 밤, 산 위에서 곰들은 기도하듯 고주로의 시체를 둘러싸고 앉아 있습니다. 곰들은 무엇을 하는 걸까요? 이야기를 읽고 사냥꾼 고주로와 곰 사이에 대해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나메토코 산의 곰에 관한 이야기라면 재미있습니다. 나메토코 산은 아주 큰 산인데, 후치자와 강의 물줄기가 처음 시작하는 곳도 바로 이 산이지요. 나메토코 산은 일 년 내내 거의 모든 날들이 차가운 안개나 구름을 들이마시거나 내뱉곤 했지요.
산 중턱에는 커다란 동굴이 휑하니 뚫려 있었습니다. 후치자와 강은 이 동굴에서 갑자기 삼백 척 길이의 폭포로 변해, 노송나무가 우거진 숲으로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떨어지게 됩니다. 산 중턱에 난 길은 그 즈음에는 아무도 다니지 않아 머위나 감제풀이 가득 자라 있었고, 소가 타 넘지 못하도록 울타리를 쳐 놓았답니다. 이 길을 3리 정도 걸어가면 맞은편에 바람이 산꼭대기를 지나가는 듯한 소리가 납니다. 주의를 기율여 그쪽을 보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얗고 가늘고 긴 것이 산에서 떨어지면서 연기를 피우고 있는 것이 보이는데, 그것이 나메토코 산의 폭포입니다. 옛날에는 이 근처에 곰이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고 합니다. 사실 나는 나메토코 산도 곰쓸개도 직접 본 적은 없습니다. 사람들한테 듣거나 나 혼자 생각했을 뿐이지요. 틀릴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어쨌든 나메토코 산의 곰쓸개는 유명하답니다. 배 아픈 데도 잘 듣고 상처도 잘 낫기 때문이지요. 유황 온천 입구에는 ‘나메토코 산의 곰쓸개 있음’이라고 쓴 낡은 간판도 걸려 있습니다. 그러니까 나메토코 산에는 오래전부터 곰들이 벌건 혀를 날름거리면서 계곡을 건너 다니고, 새끼 곰들은 서로 툭탁툭탁 장난을 치면서 살았던 게 분명합니다.
그러다 곰 사냥의 명수로 알려진 후치자와 고주로가 이 곰들을 모조리 잡아들였습니다. 후치자와 고주로는 애꾸 눈에 얼굴은 검붉고 까칠까칠한 노인이었는데, 몸은 작은 절구통만 하고 손바닥은 비사문천왕의 손만큼이나 크고 두꺼웠습니다. 고주로는 여름이면, 보리수 껍질로 엮은 것을 몸에 걸치고, 복사뼈까지 오는 신발을 신고, 원주민들이나 쓸 것 같은 큰 칼과 포르투갈에서 들여온 것 같은 무거운 총을 들고 다녔지요. 억세어 보이는 누런 개를 데리고 나메토코 산에서 시도케 강으로, 사카이 산으로, 오소리굴 숲에서 시라사와 계곡으로 거침없이 누비고 다녔습니다.
나무가 우거진 카라타니 계곡을 오를 땐 마치 검푸른 터널 속을 지나는 것 같은데, 가끔 녹색이나 금색으로 밝아지는가 하면, 그 주변 전체가 꽃이 핀 것처럼 햇빛이 쏟아지는 때도 있습니다. 이곳을 고주로는 마치 자기네 사랑방 드나들 듯이 천천히 다녔습니다. 개는 앞장서서 벼랑으로 달려가거나 강이나 늪에 텀벙 뛰어들어 열심히 헤엄쳐 갑니다. 그러고는 맞은편 바위에 올라가 온몸을 부들부들 떨어 물기를 털고 코를 킁킁대며 주인이 오기를 기다리지요. 그러면 고주로는 입을 약간 삐죽거리면서 무릎 위로 병풍 같은 하얀 물결을 일으키며 힘들게 물을 건너옵니다.
한꺼번에 다 말해 버려서 좀 아쉽긴 하지만, 나메토코 산의 곰들은 고주로를 좋아하는 것 같았어요. 왜냐하면 고주로가 계곡을 첨벙거리면서 휘젓고 다니거나 엉겅퀴가 가득 자라 있는 계곡 근처의 좁고 평평한 길을 지나갈 때도 잠자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고만 있었기 때문입니다. 곰들은 나뭇가지에 매달리거나 벼랑 위에서 무릎을 감싸고 앉아 재미있다는 듯 고주로를 쳐다보고 있었어요. 심지어 곰들은 고주로의 개조차도 좋아하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고주로를 좋아하는 곰들이라고 해도 고주로와 마주쳤을 때, 개는 불에 데기라도 한 것처럼 달려들고 고주로는 눈을 번득이며 총을 겨누게 되는 상황을 그다지 좋아하진 않았습니다. 그럴 경우 대부분의 곰들은 성가신 듯 손을 저으며 싫다는 뜻을 나타냈습니다. 하지만 성질이 괴팍한 놈은 크르릉 울부짖으며 일어나 개와 고주로에게 달려들었습니다. 그럴 때면 고주로는 아주 차분하게 나무를 방패 삼아 일어나면서 곰 가슴에 있는 반달무늬를 향해 총을 탕 하고 쏘지요. 그러면 곰은 숲이 울리도록 크아앙 울고는 쿵 하고 쓰러져 검붉은 피를 토하며 죽어 갔습니다.
그쯤 되면 고주로는 총을 나무에 기대어 놓고 조심스럽게 곰 옆으로 다가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곰아, 나는 너를 미워해서 죽인 게 아니야. 나도 먹고살려니 널 쏠 수 밖에 없구나. 죄가 안 되는 다른 일을 하고 싶은데 논도 없고, 산에 있는 마누들이야 뭐 어르신네들 것이고, 마을로 가 봤자 누구 하나 상대도 해 주지 않으니 별 수 없이 사냥을 하는 거란다. 너도 곰으로 태어난 게 운명이라면 나도 이 일이 운명이야. 너도 이다음에는 곰 같은 걸로 태어나지 말아라.”
일이 이쯤 되면 개도 완전히 풀이 죽어 눈을 가늘게 뜨고 앉아 있었습니다. 어쨌거나 이 개는 고주로가 마흔 살이 되던 여름, 온 집안이 전염병에 걸려 아들과 아내까지 죽어 버린 난리 중에도 팔팔하게 살아남았습니다. 고주로는 주머니에서 날이 퍼렇게 선 작은 칼을 꺼내 곰의 턱 부분에서 가슴으로, 다시 배 쪽으로 가죽을 쓱쓱 벗겨 나갔어요. 그 뒤의 풍경은 생각만 해도 아주 끔찍했습니다. 사정이 어찌 됐건 마지막으로 고주로는 시뻘건 쓸개를 등에 맨 나무 궤짝에 넣고, 피로 얼룩진 곰 가죽을 계곡에 씻어 등에 짊어지고 거친 몸을 이끌고 계곡을 타고 내려갈 것 같았지요.
고주로는 곰의 말을 알아듣는 것 같았습니다. 언젠가 봄에 바카이사와 계곡으로 넘어가는 봉우리 근처에 지난 여름에 쉬어 갈 생각으로 만들어 두었던 움집으로 가고 있었어요. 올라가는 도중에 어미 곰과 겨우 한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새끼 곰이 마치 사람들처럼 이마에 손을 대고 먼 곳을 바라보는 것처럼 흐릿한 초승 달빛 속에서 맞은편 계곡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고주로는 두 마리 곰의 몸에서 후광이 비치는 것처럼 느껴져 꼼짝도 못 하고 그 자리에서 그쪽을 바라보았습니다. 엄마 곰과 새끼 곰은 다정하게 눈과 꽃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요. 달빛이 푸르스름하게 산의 경사진 면을 미끄러져 갔습니다. 그곳은 마치 은으로 만든 갑옷처럼 빛나고 있었습니다. 고주로는 왠지 가슴이 벅차서 다시 한번 건너편 계곡의 하얀 눈 같은 꽃과 달빛을 받으며 서 있는 어미 곰과 새끼 곰을 흘끗 쳐다보고는 발소리를 죽여 살금살금 되돌아왔습니다. 고주로는 바람이 저쪽으로 불지 않기를 바랐어요. 녹나무 향기가 달빛과 함께 코를 스쳤습니다.
성격이 시원시원하고 씩씩한 고주로가 마을로 곰 가죽과 쓸개를 팔러 갈 때는 정말 비참했습니다. 마을 중간쯤에 큰 가게가 있었는데, 그곳에는 소쿠리, 설탕, 숫돌, 금송아지, 카멜레온 모양이 찍힌 담배, 그리고 유리로 된 파리 끈끈이까지 없는 게 없었어요. 고주로가 등에다 산만 한 곰 가죽을 지고 가게 문지방을 한 발 넘어서면 가게 주인공은 ‘또 왔군.’ 하는 표정으로 희미한 웃음을 지었어요. “주인 어름, 지난번에는 참말로 고마웠구먼요.” 산에서는 터줏대감 같은 고주로가 가족을 바닥에 내려놓고 정중하게 인사를 하면서 말했습니다. “아니, 천만에요. 오늘은 무슨 일이오?” “곰 가죽을 좀 가져왔는뎁쇼.” “곰 가죽이라면 지난번에 가져온 것도 아직 그대로 쌓여 있으니 오늘은 필요 없소.” “주인어른, 그런 말씀 마시고 좀 사 주세요. 싸게 드리겠습니다.” “아무리 싸도 필요 없다니까요.” 주인은 아주 침착하게 담뱃대로 손바닥을 탁탁 때렸어요. 씩씩한 산사람 고주로도 이런 소리를 들을 때면 얼굴에 근심이 가득해졌습니다.
고주로가 사는 산에는 밤도 있었고 집 뒤 작은 텃밭에서 피고 키웠지만, 논이 없어 쌀은 전혀 구할 수가 없었고, 된장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고주로는 아흔 살이 된 늙은 어머니와 일곱 손자들을 위해 쌀을 조금이라도 구해야 했답니다. 고주로는 한참 지나서 쉰 듯한 목소리로 말했어요. “주인어른, 부탁드립니다. 단돈 얼마라도 좋으니 좀 사 주세요.” 그렇게 말하면서 고주로는 다시 한번 꾸벅 절을 했습니다.
가게 주인은 잠자코 한참을 담배 연기만 뿜다가 좋아서 웃음이 새오 나오려는 걸 애써 참추며 말했어요. “좋소, 두고 가시오. 어이 헤이스케, 고주로 씨에게 2엔씩 쳐서 드려라.” 가게 종업원 헤이스케가 나와 은화 4개를 고주로 앞에 내밀었습니다. 고주로는 싱글싱글 웃으면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고는 가게 주인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밥 한 상과 술을 내놓았습니다.
아무리 물가가 싼 때라고 하더라도 곰 가죽 한 장에 2엔은 너무 싸다고 생각할 거에요. 싸도 너무 싸다는 것은 고주로도 알고 있었지요. 그런데 고주로는 다른 사람에게 팔지 않는 걸까요? 착한 고주로는 욕심 많은 가게 주인에게 번번이 당하면서도 말이에요. 암튼 고주로가 곰들을 죽이고는 있지만, 결코 곰들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어느 해 여름, 고주로가 계곡을 건너 바위에 올라갔는데, 느닷없이 눈앞에 있는 나무에 커다란 곰이 고양이처럼 등을 구부리고 기어 올라가는 것이 보였어요. 고주로는 바로 총을 잡았습니다. 그런데 나무 위의 곰은 한참 동안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가만히 있었지요. 마치 밑으로 내려가서 고주로에게 덤벼들까 아니면 그대로 총에 맞아 줄까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그러다가 갑자기 두 손을 나무에서 떼더니 그대로 쿵 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고주로는 이때다 싶어 총을 겨누며 쏠 것처럼 다가서는데, 곰이 두 손을 들고 외쳤습니다. “너는 왜 날 죽이려는 거지? 앞으로 2년만 기다려 줘. 지금 죽는 것도 괜찮지만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으니, 딱 2년만 기다려 줘. 그럼 2년 후에 내가 네 집 앞에서 죽어 줄 테니까. 가죽이고 쓸개고 모두 줄 테니까 말야.” 고주로는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가만히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리고 딱 2년이 되는 어느 날 아침, 유난히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이었습니다. 나무고 울타리고 다 쓰러뜨릴 듯한 기세였지요. 집 주위가 걱정이 된 고주로는 밖으로 나왔어요. 노송나무 울타리는 늘 있던 그대로였는데, 그 아래쪽에는 눈에 익은 검붉은 것이 보였습니다. 고주로는 가슴이 덜컥했어요. 오늘이 딱 2년째 되는 날인데, 과연 그 곰이 와 줄까 생각했지 때문이지요. 옆에 다가가 보니 바로 지난번 그 곰이 입에 가득 피를 토하고 스러져 있었습니다. 고주로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어요.
1월 어느 날이었습니다. 고주로는 자신도 나이를 먹었는지 이제는 웬지 물어 들어가기가 싫다고 말했지요. 하지만 고주로는 가족의 배웅을 받으며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러고는 단단하게 굳은 새하얀 눈을 밟으며 시라사와 계곡으로 올라갔어요. 벼랑을 따라 다 올라오니 경사가 완만한 평지에 이르렀습니다. 그곳은 눈이 대리석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고, 주위에는 눈 쌓인 봉우리들이 높이 솟아 있었습니다. 고주로가 그 꼭대기에서 쉬고 있을 때 개가 사납게 짖어댔습니다. 고주로가 무슨 일인가 해서 뒤를 돌아다보니 언젠가 본 적이 있던 커다란 곰이 두 발로 서서 고주로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어요. 고주로는 차분하게 버티고 서서 총을 쏠 준비를 했지요. 그러나 곰이 몽둥이 같은 두 손을 번쩍 들고 곧장 달려왔습니다. 고주로도 이번에는 얼굴색이 바뀌었습니다. 피융하는 총소리가 고주로에게 들려왔습니다. 그런데 곰은 쓰러지지도 않고 폭풍처럼 시커멓게 요동치며 다가왔습니다. 그 순간 고주로는 쿵 하고 머리가 울리는가 싶더니 주위가 새파래졌어요. 그러고 멀리서 이런 말이 들려왔습니다. “오! 고주로, 당신을 죽일 생각은 없었는데….”
고주로는 이제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깜빡깜빡 푸른 별빛 같은 것이 하늘 가득 보였어요. “이것이 죽었다는 표지로군. 죽을 때 보는 불이야. 곰들아, 날 용서해 줘.” 고주로는 말했지요. 그다음 고주로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그로부터 사흘째 되는 밤이었습니다. 별들이 깜박거리고, 눈은 푸르스름하게 빛나고 , 물은 빛을 뿜었습니다. 산 위에서는 검고 커다란 것들이 원을 그리고 모여 검은 그림자를 늘이고는 기도하듯이 눈에 무릎을 끓고 있는 것처럼 엉거주춤하게 놓여 있었습니다. 아마두 죽어서 얼어붙은 고주로의 얼굴이 살아 있을 때처럼 해맑고 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검고 커다란 녀석들은 오랫동안 그렇게 화석이라도 된 것처럼 꿈쩍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하부르타식 질문의 예:
고주로는 왜 어미곰과 새끼곰을 보고도 죽이지 않고 되돌아 왔을까요?
고주로는 왜 곰이 자신을 죽일 생각은 없었다고 생각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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