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존재를 찾아가는 과정은 과연 어떨까요? ‘달과 발’은 철없던 어린 게가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문을 품고 여행을 통해 성숙해지는 과정을 간결하고 서정적인 문체로 풀어내는 이야기입니다.
새끼 게는 늘 즐거웠어요. 보료같이 보드라운 물이끼가 깔린 바위 위에서 동무들과 뛰놀기도 하고, 햇빛이 화사하게 내리쬐는 강기슭에 나가 해바라기를 하기도 하지요. 담뿍 햇볕을 쐬면서 입으로 거품을 내뿜어 거품 방울마다 무지개를 어리게 하는 장난도 하지요.
새끼 게는 또한 물속 마름 밑에 가 엎드려 오가는 물고기들을 구경하기를 좋아하지요. 생김새, 몸매 등도 정말 여러가지 입니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새끼 게는 명랑하게 장난을 하면서 놀았어요. 그동안 안으로 이룩돼 오던 새끼 게의 새몸이 낡은 똥딱지를 젖히고 나왔어요. 굳지 않아 말랑거리는 살갗에 와닿는 물의 감촉이 간지럽도록 생생했어요. 구멍 밖으로 나가 여릿여릿, 동작은 빨리 할 수 없었으나 흡족한 느낌이 새끼 게에겐 들었지요. 전과 다름없는 것들이지만 새로운 기분으로 둘러보면서 걷고 있었어요.
그때 마침 지나가던 자라 새끼 한 마리가 “짜식, 고나마 모로 기는 것도 제대로 못 가는구나.” 말하는 것을 들었어요. 새끼 게는 한참 그게 무슨 소리인지 몰랐어요. 말뜻을 알아 듣고서 자라 새끼의 걸음을 자세히 살펴보았어요. 그리고 자기도 조심스럽게 걸어보았어요. 그런데 자기 걸음이 이상해 보였어요.
구멍 속에 들어박혀 생각을 해 보고 또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왜 나는 모로 기어 다녀야 하지? 물고기처럼 자유롭게 마구 헤엄쳐 다니지는 못하더라도 왜 하필이면 모로밖에 기어 다니지 못하는지 창피스러웠어요.
마침내 엄지 게에게 물어 보았어요. “너만 그러는 거냐? 우리 조상들이 그랬으니 우리들도 그러는 거지.” 엄지 게가 말했어요. 그런데 그 대답으로는 만족스럽지가 않았어요. 다른 엄지 게를 찾아갔어요. 다른 엄지 게는 괜한 소리 하지 말고 가서 동무들과 놀기나 하라고 했어요. 그리고 새끼 게가 무슨 말을 더 하려고 하자 큼직한 발로 우악스럽게 새끼 게의 몸을 움켜잡아 뒤로 자빠뜨려 놓았어요. 새끼 게가 일어나자 엄지 게는 다시 좀 전처럼 자빠뜨려 놓았지요. 애써 일어나면 자빠뜨리기를 반복했어요. 결국 새끼 게는 울음을 터뜨렸어요. 그러나 엄지 게는 그냥 자기 구멍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새끼 게는 그 엄지 게가 무서웠어요. 그리고 세상이 무서워졌습니다.
새끼 게는 상류를 향해서 걷고 또 걸었습니다. 연한 발톱이 아프고 쓰라렸지만 계속 걸어 갔어요. 한참 가다가 양쪽 둑에 갯버들이 무성한 곳에 이르렀어요. 혼자 살기에 괜찮은 것 같았어요. 으슥한 갯버들 밑동 옆에. 힘들게 구멍을 파 집을 만들었어요. 그러고는 고단해서 잠에 곯아떨어졌어요.
밤중에 누가 몸을 건드려 눈을 떴어요. 계집애 장어가 바위틈이 싫으니 잠을 재워달라고 했어요. 그런데 장어 계집애는 몸을 이리저리 비틀면서 그 미끈거리고 끈적거리는 몸을 비벼대는 것입니다. “좀 가만히 있지 못해?” “응, 그럴게.” 그러나 그다음 날도 장어 계집애는 아침에 나갔다가 밤늦게야 들어와서는 쓸쩍슬쩍 몸을 비벼대곤 하는 것이었어요. 새끼 게는 그날 밤에 뜬눈으로 밤을 새우다시피 했지요.
다음 날 새끼 게는 떠나기로 했습니다. 다시 걷고 걸어서 강이 두 갈래로 갈리는 데까지 이르렀어요. 앞에 산이 막아서면서 산 왼쪽에 샛강으로 갈라져 있는 곳으로 들어섰어요. 얼마가지 않아 샛강이 좁아지면서 모래보다는 조약돌이 많아졌습니다. 드디어 맑고 깨끗하고 찬 물이 소리를 내며 흐르는 계속에 이르렀어요. 날이 저물어 그곳에 있는 어느 큰 돌 밑을 찾아 들어갔어요. 그런데 세차게 면상을 걷어차는 게 아니겠어요. 한 놈도 아니고 두세 놈의 가제가 걷어 채어 쫓겨나곤 했어요. 하는 수 없이 한 데서 쪼그린 채로 별을 보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깨어난 새끼 게는 다시 위로 걸어 올라갔어요. 얼마를 가다가 물소리가 커지기에 가 보니 꽤 높은 곳에서 물이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가까이 가 떨어지는 밑으로 들어가 보았어요. 잔등 위로 빠르게 떨어지는 물을 받는 것이 시원했어요. 한참을 그러고 있으니 잔등에 피라미 새끼들이 떨어지는 것이었어요. 고것들이 기를 쓰고 밑에서 뛰어올라 둔덕진 위까지 가려다가 미치지 못하고 도로 떨어져 내려오곤 했지요. 새끼 게도 한번 올라가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새끼 게는 둔턱의 안쪽 벽을 타고 기어오르기 시작했어요. 쉬운 일이 아니었지요. 가까스로 물살이 제일 센 꼭대기 근처까지 가서는 밀려 떨어지고 말았어요. 가꾸 거듭해 보았지만 계속 실패를 했어요. 날은 어두워지고 새끼 게는 지쳤습니다. 집은 만들 곳도 없고 가재에게 사정하기도 싫었어요. 어디고 마음먹은 대로 되는 일은 하나도 없었지요.
새끼 게는 그만 흐르는 물에 몸을 맡겨 버렸어요. 채 완전히 굳지 않은 몸이 돌부리에 부딪히곤 했지만 아픈 줄도 몰랐어요. 모든 것에 졌다는 생각만 가득했어요.
살던 곳에 돌아오니 잠자리는 편했지만 그전과 같은 새끼 게는 아니었지요. 다시는 보료가 깔린 듯한 바위에서 동무들과 놀거나 되도록 아무와도 어울리지 않으려 마음을 썼어요. 먹을 것을 못 먹는 것도 아닌데 어쩐지 새끼 게는 여위어만 갔습니다.
그날 밤 새끼 게는 강둑 수수밭 한 이삭에 올라가 있었어요. 이따금 바람이 좀 세게 불어 왔어요. 그래서 새끼 게는 수수 이삭을 놓쳐 밑으로 곤두박이치고 말았어요. 온몸이 걸려 한참 옴짝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날로 물속이 차고 투명해져 갔어요. 온갖 물고기들의 살갗에 윤기가 돌았어요. 같은 게들도 모두 몸이 올차졌지요. 그 속에서 새끼 게의 모양만이 초라해 보였어요. 어떤 사람이 낚시질을 해 고기들이 낚시에 걸려 올라갔습니다. 사람이 손을 내밀려 달려들었어요. 새끼 게는 발딱 몸을 일으키기가 무섭게 한옆으로 달리다가 잽싸게 반대편으로 방향을 바꾸어 물속으로 들어갔어요. “에이, 재수 없다.” 사람이 투덜거렸어요. 물속 깊이 달려간 새끼 게는 숨을 돌리며 오랜만에 미소를 지었어요. 엄지 게가 자신을 자꾸 자빠뜨려 놓던 일 등을 떠올리면서 자기가 모로 기지 않았으면 잡히고 말았을 것이란 생각을 하면서 다시 한번 더 미소를 지었지요.
새끼 게가 겨울을 날 고장으로 옮겨 가기 전 어느 날 그만 게를 잡으러 온 사람이 구멍을 쑤셔 넣어 양쪽 발을 몽땅 잃게 되었어요. 이제 새끼 게는 영락없이 돌조각이 되어 버렸어요. 움직일 수는 없었지만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었어요.
게들이 겨울을 나기 위해 강 아래로 내려가는 모습이 보였어요. 흐르는 물에 떠서, 혹은 강바닥을 기어서 내려가는 게들의 모양이, 그 기어서 내려가는 속에 예의 엄지 게가 끼어 있었어요. 그 엄지 게 옆에 같이 기어 내려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모로 가는 걸음걸이였습니다.
하부르타식 질문의 예:
새끼 게는 왜 자신의 걸음걸이에 대해 의문을 가졌을까요?
새끼 게는 왜 자기가 살던 곳을 떠났을까요?
사람에게 잡힐 뻔한 새끼 게는 왜 오랜만에 미소를 지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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