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진 다리]는 이승에서 덕을 쌓으면 저승에 있는 자신의 창고에 재물이 쌓인다는 옛이야기로, 전라남도 영암군에 있는 덕진교에 얽힌 전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야깁니다. 옛날 어느 고을의 원님이 갑자기 죽어 저승에 가게 되었는데, 아직 죽을 때가 되지 않아 주막집 머슴인 덕진의 창고를 빌려 다시 살아 돌아오게 됩니다. 그리고 새로운 모습으로 살아가게 되지요. 이야기 속에서 부자나 원님의 창고가 텅 비어 있던 것처럼 우리 주변에는 가진 것은 많아도 베풀 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야기를 읽고 물질적인 것을 베푸는 것만이 인정이 아니라는 것과 따뜻한 마음으로 우리 주변을 둘러볼 줄 아는 사람이 자신의 저승 창고를 채울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명에 ‘덕진교’다리가 있답니다. 덕진이라는 사람 때문에 만들었다고 덕진다리라고 하는데요. 도대체 다리를 만드는 데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요?
옛날, 옛날, 아주 오랜 옛날에, ‘덕진’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덕진은 주막집에서 나무도 해 오고, 마당도 쓸고, 주막에 온 손님들을 돌보는 머슴이었어요. 덕진은 누구보다도 부지런했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세울 것은 마음씨가 착하다는 것이었지요. 하다 못해 밤 한 끼라도 두둑이 먹여 보냈으니까요. 밥이 없을 때는 자기가 먹던 밥이라도 덜어 주었답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혀를 찰 때면 덕진을 항상 이렇게 말했답니다. “저야 손님들이 먹다 남긴 밥을 먹으면 되지요. 또 한두 끼 굶으면 어때요 하지만 저런 사람들은 밥을 거르면 길거리에 쓰러져 죽을 수도 있잖아요.” 덕진은 잘 곳이 없는 사람들을 밤새 간호해 주기도 하고 노잣돈이 없는 사람에게는 돈을 꿔 주기도 했지요. 돈이 없을 때는 남에게 꿔서라도 돌봐 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덕진이 살고 있는 마을의 원님이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원님은 저승사자를 따라 저승에 가게 되었지요. 그런데 이게 웬일이에요. 저승의 염라대왕이 원님을 보더니 아직 죽을 때가 되지 않았으니, 다시 돌아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원님이 막 돌아서 가려고 할 때였습니다. 염라대왕이 원님을 불러 세웠지요. “여보시오. 원님. 이왕 이렇게 왔으니, 저승사자들에게 인정이나 베풀고 가시죠.”
그 말을 들은 원님은 죽을 뻔하다가 살아났으니 그보다 더 한것이라도 베풀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갖고 있는 돈이라고는 한 푼도 없으니 어떻게 인정을 베풀 수 있느냐고 물었지요. 그러자 염라대왕은 껄껄 웃으며 말했습니다. “허허, 그건 걱정하지 마시오. 여기 저승에는 사람마다 창고가 하나씩 있다오. 이승에서 착한 일을 하면 그대로 저승 창고에 쌓이는 법이지. 그러니 당신의 창고를 열어 인정을 베풀기만 하면 되지요.” 그 소리에 원님은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습니다. 살아생전 남에게 쌀 한 톨 베푼 적이 없으니 그럴 수밖에요.
저승사자를 따라가면서 원님은 간이 콩알만 해졌어요. 자기 창고가 텅 비어 있으면 어떡하나 걱정이 태산 같았습니다. 과연 원님의 창고는 텅텅 비어 있었지요. 마늘 한 조각, 쌀 한 톨 찾아볼 수 없었어요. 있는 것이라고는 오직 하나, 짚단 한 단 뿐이었어요. 팡고를 본 염라대왕의 얼굴이 점점 험악하게 일그러졌습니다. 창고지기도 거친 숨을 몰아쉬며 씩씩거렸습니다. “대왕마마, 이 자는 지금까지 좋은 일이라고는 해 본 적이 없는 자이옵니다. 창고에 있는 저 짚단 한 단도 지난겨울에 거지에게 준 것이옵니다. 그때 거지가 애를 낳는다고 하자 마지못해 내주면서 헛간에서 아이를 낳게 하였사옵니다. 백성을 사랑하고 돌보기는커녕 돈이나 거둬들이고, 누가 무어라도 바치면 좋아라 했던 자옵니다. 도대체 남을 도울 줄 모르는 자들 돌려보내 봤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니 그냥 지옥에 떨어뜨림이 어떻겠는지요?”
원님은 이 말을 듣고는 등골이 오싹해졌습니다. 이러다가는 다시 돌아가기는커녕 지옥에 떨어질 게 분명했으니까요. 염라대왕은 겉보기엔 인정 많게 생겼는데 남에게 베풀지 않았는지 궁금해하면서 우선 다른 창고를 빌려 인정을 베풀게 하고, 이승으로 돌아가 창고 임자를 찾아 갚게 하라고 명했지요.
원님은 너무나 기뻤습니다. 이제 이승으로 돌아가면 누구보다도 착한 일을 하면서 살겠다고 마음먹었답니다. 원님은 저승사자와 함께 옆에 있는 창고를 하나하나 열어 봤는데 마땅한 창고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지요. 원님은 점점 실망하면서 이러다가 영영 돌아가지 못하는 게 아닌가 더럭 겁이 났답니다. 가까스로 마음을 진정하며 마지막 창고를 열었어요. 다행히 그 창고에는 곡식이 그득했지요. 곡식뿐 아니라, 여러 가지 옷가지며 돈이며 없는 게 없었습니다. 원님이 누구의 창고인지 궁금해 창고 앞의 문패를 봤습니다. 원님은 그 문패를 보고 너무 놀랐어요. 문패에는 ‘덕진의 곳간’이라고 적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원님은 자기 눈을 의심하며 문패를 보고 또 보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틀림없이 ‘덕진의 곳간’이었습니다. ‘아니, 덕진이라면 주막집에서 일하는 머슴이 아닌가?’ 원님은 너무나 기가 막혔어요. 천하디 천한 머슴에다가 배운 것도 없고, 가난하기 이를 데 없는 덕진의 창고는 가득 차 있고 자기의 창고는 텅텅 비어 있다니…. 원님이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원님은 염라대왕에게 말했어요. “덕진의 창고를 빌려서 인정을 베풀고 가게 해 주십시오. 돌아가면 반드시 갚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원님은 덕진의 창고에 있는 곡식을 빌려 저승사자들에게 두루 인정을 베풀었어요. 덕분에 원님은 무사히 살아서 돌아왔습니다.
이승으로 돌아온 원님은 그날로 덕진을 불렀습니다. 원이 부른다는 소식을 듣고 덕진은 걱정이 되었지만 원님을 찾아뵈었어요. 덕진이가 원님을 뵈러 가자 원님은 버선발로 뛰어나왔어요. 그러고는 가장 좋은 자리에 앉히며 이렇게 말했지요. “내, 자네에게 큰 신세를 지었네.” 덕진은 영문을 몰라 눈을 휘둥그레 뜨며 말했어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저에게 신세를 지시다니, 당치도 않은 말씀이십니다.” “허허, 아닐세. 이제 그 빚을 갚으려 하니, 쌀 몇 백 석이라도 좋으니 뭐든 말해 보게나.”
원님이 저승에 다녀온 이야기를 들려주자, 덕진은 더더욱 놀라서 할 말을 잃었습니다. 원님은 저승에서 염라대왕과 약속한 것이 있어서 꼭 신세를 갚겠다고 하고 덕진은 듣지 않았지요. 원님은 주겠다 하고 덕진은 못 받겠다 하며, 실랑이가 계속되었습니다.
한참 뒤에 덕진은 원님이 정 그러신다면 제게 주시겠다는 것으로 우리 고을에 좋은 일을 하나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마을에 다리가 하나 있으면 좋겠으니, 만들어 달라고 말이에요. “조금만 비가 와도 물이 넘쳐 다닐 수가 없고, 농사를 망치기 일쑤이오니, 이번에 다리를 놓으면 어떨는지요?”원님은 흔쾌히 허락해 주었습니다. 다리의 이름은 ‘덕진 다리’라고 하겠다고 했답니다.
덕진은 다리를 놓는 것은 좋지만 이름을 붙이는 것은 싫다면서 한사코 거절했습니다. 하지만 원님이 사정사정하여 이름만은 그대로 두기로 했답니다. 소문이 퍼지자, 마을 사람들은 몹시 기뻤지요. 마을의 부자들도 소문을 듣고 너도나도 곡식을 내놓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덕진 다리’가 만들어졌답니다. 이런 일이 있은 뒤로 덕진은 더욱더 바빠졌어요. 덕진을 보러 주막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았으니까요.
하부르타식 질문의 예:
덕진이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원님의 창고를 본 염라대왕의 얼굴은 왜 점점 험악하게 일그러졌을까요?
덕진의 창고를 본 원님은 왜 기가 막혔을까요?
원님은 왜 부자의 창고를 열어보기 전에 가득 차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까요?
덕진은 원님이 주려고 하는 곡식을 받는 대신 고을을 위해 다리를 세워 달라고 했어요. 덕진은 왜 곡식을 받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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