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임금님]에서 백성들은 고루 행복할 권리가 있으나, 단 임금님보다는 덜 행복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모두 조금씩 불행했지요. 이 세상의 가장 큰 행복은 임금을 위해서만 존재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임금님은 미행을 나갔다가 자신보다 더 행복한 사나이를 만나게 되었어요. 화가 난 임금님은 그 사나이의 모든 것을 빼앗아 버렸지만 고통까지도 아름다움으로 바꿀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나이는 더 이상 불행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야기를 읽고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대화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옛날에 사시장철 춥지도 덥지도 않게 날씨가 좋고 땅은 기름진 고장에 작고 아름다운 나라가 있었습니다. 그 나라를 다스리는 임금님도 그 나라의 자연만큼이나 자비로워, 그 나라의 백성들은 모두 행복했습니다. 나쁜 짓을 한 죄인을 가두기 위한 감옥이 오래 전부터 비어 있어 관광지가 된 지 몇 년째입니다. 백성들이 사는 고장은 어디나 맑고 청결하고 자유롭기 때문에 어둡고 더럽고 부자연스러운 곳이 백성들이 인기 있는 구경거리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고르게 행복하니까 싸우거나 속일 일이 없고, 그런 잘못을 가려내어 벌을 주기 위한 법도 쓸모가 없게 되었지요. 몇 장 안되는 얇은 법전에 쓰여 있는 법조문을 써먹지 않은 지도 감옥을 써먹지 않은 것만큼이나 오래되었습니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써먹을 일이 생겨도 큰일이 나지요. 법조문들은 너무 오래 아무 일도 안 하고 햇빛을 본 일도 없어 죽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나라의 헌법만은 아직 살아 있습니다. 이 나라의 헌법은 일 조 두 줄로 되어 있습니다. ‘이 나라 백성들은 고루 행복할 권리가 있다. 단, 임금님보다는 덜 행복할 의무가 있다.’ 이것이 이 나라 헌법의 전문입니다.
이 나라를 세운 임금님은 백성들이 고루 행복한 나라를 만들려던 당초의 큰 뜻을 이룩했기 때문에 아무런 근심도 없어야 하지요. 하지만 나라를 이룩하기 위해 갖은 고생을 다한 임금님이 백성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행복하지 못하면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나날이 더해 가, 백성들이 헌법으로 정한 의무를 한 사람이라도, 하루라도 게을리할까 봐 늘 불안하지요. 그래서 도둑놈도 사기꾼도 없는 나라건만 많은 관리를 두어 행여나 임금님보다 더 행복한 사람이 생길까 봐 감시하는 일을 맡겼답니다. 있답니다. 그러나 아직 한 사람도 임금님보다 더 행복해서 붙잡히거나 벌 받은 사람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감시받고 있다는 두려움과 불안감 때문에 백성들은 조금씩이나 고루 불행했기 때문입니다.
임금님의 또 하나의 근심은 자기가 죽은 후에 백성들이 마음 놓고 행복해하면 어떡하나 하는 것이었죠. 임금님은 자기가 죽은 후에도 이 세상에 행복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을 차마 용서할 수가 없었습니다. 임금님은 늙어 갈수록 그 생각으로 잠 못 이루는 밤이 많아졌습니다. 잠 못 이루고 생각을 거듭한 끝에 한 꾀가 떠올랐습니다. 그것은 임금님이 죽은 후에 백성들이 일제히 불행해질 수 있도록 그 예행 연습을 지금부터 백성들에게 시키는 일입니다.
궁성에서 조포가 슬피 울리는 것을 신호로 상점은 문을 닫고, 음악은 멎고, 백성들은 회색 옷을 입고 슬피 통곡하는 것입니다. 이때 임금님은 궁성의 가장 높은 망루에서 온 나라가 슬픔에 잠긴 모습을 굽어보며 앞으로 다가올 죽음의 공포를 잊고 혼자만의 기쁨을 맛보는 것이었습니다.
임금님이 가짜로 죽고, 백성들이 그 후의 불행을 예행 연습하는 날은 처음엔 일 년에 한 번식 있었습니다. 한 달에 한 번으로 늘어나고, 다시 일주일에 한 번으로 늘어나고, 그러다가 아무 때나 임금님이 마음 내킬 때에는 언제라도 하게 되었지요.
불행의 예행 연습이 없는 날이 되면, 임금님은 몰래 궁성을 빠져나와 백성들이 사는 마을로 미행을 다니기도 합니다. 임금님은 백성들이 임금님보다는 덜 행복해야 된다는 헌법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를 감시하는 일을 관리들에게 맡기려니 안심이 안 되어 직접 눈으로 보고 싶었기 때문이죠. 미행을 다녀온 날이면 임금님은 다른 날보다 행복했습니다. 임금님이 만난 백성들은 하나같이 자주 있는 불행의 예행연습 때문에 눈이 퉁퉁 부어 있고, 행여나 임금님보다 더 행복해지면 어쩌나 하는 불안으로 일그러져서 잘 먹고 잘 입고 잘 사는 것과는 상관없이 임금님보다는 덜 행복해 보였기 때문이었죠.
그러던 어느 날, 미행을 나간 임금님은 한 사나이를 만나 깜짝 놀랐어요. 그 사나이는 임금님이 만난 어떤 백성하고도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 사나이는 늙지도 젊지도 않은 나이에 보통으로 생긴 얼굴에 수수한 옷을 입고 있었는데도 임금님이 깜짝 놀랄 만큼 다른 사람과는 달라 보였답니다. 궁서어으로 돌아온 임금님은 그를 보고 깜짝 놀란 까닭에 대해 곰곰이 색각해 보았지요. 그러다가 무릎을 닥 치며 그 사나이를 처음 만났을 때보다 더한층 놀랐지요. 그 사나이는 백성들 중에서 뛰어나게 행복해 보였을 뿐 아니라 임금님보다도 행복해 보였던 것입니다.
임금님은 즉히 관리를 풀어서 그 사나이에 대한 조사를 하게 했지요. 그 사나이의 신분은 마을의 우두머리인 촌장이었고, 아름다운 아내와 착한 아들딸과 넓고 기름진 땅을 가지고 있었어요. 임금님이 그를 덜 행복하게 만드는 일은 아주 쉬운 것 같았습니다. 그가 갖고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소중한 것 하나를 빼앗기로 했지요. 그것은 촌장 자리였어요.
촌장의 보잘 것 없는 권력이나마 빼앗기면 조금 덜 행복해할 것 같았지요. 이를 빼앗긴 촌장은 더 이상 촌장이 아닌 보통 사람이 된 남자의 얼굴이 일그러졌습니다. 이것을 본 임금님은 만족했습니다.
하지만 이 나라 어디엔가 임금님보다 행복한 백성이 또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또 싹트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다시 미행을 나갔다고 또 한 번 깜짝 놀랐지요. 촌장 자리를 빼앗긴 사나이가 여전히 임금님보다 더 행복하게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사나이는 처음에는 좀 서운했지만 곧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아 다시 행복해졌다는 것이지요. 그에겐 처자식이 있고, 매일 만족스럽게 입히고 먹일 재산이 있다고 했습니다.
임금은 곧 궁성으로 돌아와 명령을 내려 그 사나이의 재산을 몰수해 버렸어요. 처자식과 함께 그 사나이는 거지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나라 어디선가 임금님보다 행복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임금님에게서 떠나질 않았어요. 임듬님은 다시 미행을 나섰습니다. 나라 안을 두루 돌다, 아니나 다를까 또 임금님보다 행복한 사람을 만났지요. 그 사람은 같은 죄로 권력과 재산을 빼앗긴 그 사나이였습니다.
그 사나이는 “권력과 재산이 있을 때는 가족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나, 내가 가족을 얼마나 사랑하나는 확인할 길이 없었지요. 지금 우리는 부족한 것 투성이라서 사랑으로 채우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래서 서로 더 많이 사랑하고자 애쓰다 보니, 보시다시피 이렇게 행복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임금님은 드디어 모진 결심을 했어요. 그에게서 가족을 빼앗기로 한 것입니다. 이는 이 나라를 세운 당초의 큰 뜻 즉, 백성들을 고루 행복하게 하려는 것과는 매우 어긋나는 일이었지요. 하지만 임금님보다는 덜 행복해야 된다는 헌법을 어긴 것을 용서할 수는 없었습니다. 임금님도 백성에게 그런 모진 버러을 주기는 처음이라 마음이 몹시 언짢았지요. 조금이라도 좋으니 임금님보다 덜 행복했으면 그런 벌을 안 내렸으련만, 참 욕심 많은 놈도 다 있다 싶었지요.
사나이의 가족이 딴 나라로 추방되던 날, 사나이와 그의 가족은 어찌나 서럽게 울면서 서로 떨어지길 싫어하는지, 보는 사람마다 발길을 멈추고 동정의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그들을 떼어 놓는 일을 맡아한 관리는 인정이 보통 사람보다 적은 사람이었는데도 가족이 아니라 생사람의 사지를 찢어 내는 것처럼 그 일을 하기는 마음 아픈 일이었노라고 두고두고 말했지요. 임금님도 마음 아파했고, 문득 뉘우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뉘우치는 마음으로 괴로울 때마다 나라의 헌법을 지키기 위해선 그 방법밖에 없었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답니다.
임금님은 다시 미행에 나섰습니다. 그 사나이 일이 마음에 걸려서이었죠. 이 나라 백성이 임금님보다 더 행복한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이 나라 백성이라면 고루 행복할 수 있다는 권리를 너무 오래 빼앗는다는 것도 임금님의 자비심에 어긋났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이에요? 권력과 재산과 가족까지 잃고도 여전히 그는 행복해 보였습니다. 임금님보다 훨씬 더 행복해 보였어요.
그 사나이는 가족과 헤어지는 순간에는 정말 고통스러웠지만, 인편으로 또는 바람결로 자주 소식을 보내와서 다시 함께 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자신을 행복하게 한다고 말했답니다. 이 말을 들은 임금님은 불같이 노해 궁성으로 돌아왔어요. 그리고 먼 나라로 사람을 보내 그 사나이의 가족을 불러 들여 사형에 처했습니다. 죄 없이 죽어 가는 사람을 보고 백성들은 임금님이 미친 게 아닌가 의심하면서 슬퍼했지요. 그러나 법전의 말들은 옛날에 죽어 버렸기 때문에 임금님의 말이 곧 법이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한동안이 지났어요.
사람을 함부로 죽이고 난 임금님은 점점 심성이 거칠어져 남의 말을 잘 믿지 않고, 그래서 더욱 자주 미행에 나섰습니다. 그러다가 또다시 그 사나이를 만나게 되었지요. 놀랍게도 그 사나이는 아직도 임금님보다 행복해 보였어요.
임금님은 놀라움보다는 두려움을 먼저 느꼈습니다. 임금님이 신도 아닌 사람을 두려우하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요. 나그네는 처음에는 너무 외롭고 가난해서 못 살 것 같았지만, 지금은 외롭고 가난해서 아무것에도 매임이 없이 자유롭다고 했습니다. 임금님은 궁정으로 돌아와 끈질기게 행복하기만 한 사나이를 체포하도록 명령했어요.
그 사나이의 자유를 빼앗기 위해 관광의 명소로 변한 감옥이 다시 옛날의 감옥으로 돌아가야합니다. 그래서 대대적으로 수리를 했지요. 한 사나이의 자유를 빼앗기 위해 열 사람도 넘는 힘센 사나이가 밤이나 낮이나 지키도록 했지요. 절망에 빠진 사나이가 슬피 우는 소리가 궁성까지 들렸습니다. 임금님은 자유야말로 그 사나이의 마지막 행복이었으리라고 생각했어요. 사나이에게서 더 이상 빼앗을 것이 없어지자, 사나이에 대한 임금님이 관심도 사라졌습니다. 그 대신 임금님이 죽으면 백성들이 일제히 빠르게 불행해질 수 있도록 연습하는 불행의 예행연습만 더 자주 시키게 되었지요. 감옥에서 들리던 통곡 소리도 지친 듯이 가라앉고, 오랜 침묵이 계속됐습니다.
어느 날 임금님은 아름다운 노랫소리에 이끌려 궁성 밖으로 나오게 되었어요. 노랫소리는 높은 담장 안에서 들려오고 담장 밖에는 임금님 외에 노랫소리에 이끌려 모여든 많은 백성들이 황홀한 얼굴로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답니다. 노랫소리를 듣는 동안 임금님은 이제껏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새롭고 기이한 행복감에 몸을 떨었어요. 그러나 노랫소리가 멎자, 임금님은 거기 모인 백성들과 똑같이 행복했었다는 게 창피하게 생각되었어요. 그래서 감히 임금님에게 창피를 준 노랫소리를 벌 주어야겠다고 결심했지요.
높은 담장 속은 감옥이었어요. 임금님은 감옥에서 다시 그 사나이와 만났습니다. 그 사나이는 노래만 잘 부르는 것이 아니라 손재주도 있어서 온갖 아름다운 것들로 감옥을 가득 채웠지요. 사나이는 처음 감옥에 갇히게 되었을 때 미치거나 죽어 버리지 않으면 못 견딜 만큼 고통스러웠지만 차츰 그 고통을 아름다움으로 바꾸는 법을 알아냈다고 했어요.
임금님은 이번에는 손수 독배를 들고 사나이를 다시 찾아 왔습니다. 제아무리 행복에 끈질긴 사나이기로서니 독배를 받들고서야 절망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보여줄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요. 그리고 다시는 그 일그러진 얼굴을 회복시킬 기회는 없을 것입니다. 일그러진 얼굴이야말로 그 사나이의 영원한 얼굴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복수의 기쁨으로 임금님 얼굴이야말로 사납게 일그러졌습니다.
“그대는 이 나라의 신성한 헌법을 한두 번도 아니고 수없이 모독한 죄로 이에 독배를 내리노라!” 꿇어앉아 메마른 나무젓가락에 이 세상을 온통 껴안을 수 있을 만큼 인자하고 너그러운 얼굴을 새기고 있던 사나이가 천천히 얼굴을 들었습니다. 사나이의 수척한 얼굴은 일그러지기는커녕 빈틈없이 평온해졌습니다. 때묻었으면서도 티끌 하나 없는 것처럼 순수했습니다. 그건 불행한 얼굴도 행복한 얼굴도 아니었지요. 그건 것들을 통틀어 걸러 낸 다만 아름다운 얼굴이었습니다. 임금님은 타는 듯한 질투를 느꼈습니다. 그 얼굴이야말로 임금님이 자기의 것으로 삼고 싶었던 얼굴이었기 때문이지요.
사나이는 독배를 받들면서 조용히 말했습니다. “임금님의 은총이 하해와 같습니다. 이제야 아내와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는 하늘나라로 가게 되었군요. 정말 쉬고 싶었습니다. 임금님보다 더 행복하게 살기는 참으로 힘든 일이었으니까요.” “그대는 끝끝내 나를 이길 셈이군. 그렇지만 이번만은 안 되네. 이번만은 질 수가 없어. 이번에 지면 영원히 만회할 수가 없을 테니까.” 사나이가 입으로 가져가려는 독배를 임금님은 황급히 빼앗아 대신 마셔 버렸습니다.
하부르타식 질문의 예:
임금님은 왜 사나이에게 모진 벌을 주려고 했을까요?
임금님이 계속 괴롭히는데도 왜 사나이는 행복했을까요?
임금님은 사나이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왜 기이한 행복감을 느꼈을까요?
불행도 행복도 아닌 그건 것들을 통틀어 걸러 낸 아름다운 얼굴이란 어떤 의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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