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이란?
문명이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종종 ‘문화’와 ‘문명’을 혼동하기도 합니다. 이 두 용어는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그 뜻이 조금 다릅니다. 물론 둘 사이에 관련이 깊은 만큼 오늘날까지도 학자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지요. 문명(Civilization)은 라틴어 키비스(Civis, 시민)나 ‘키빌리타스(Civilitas, 도시)’에서 유래했다는 학설이 가장 설득력이 있습니다. 문명이란 자연 그대로의 원시적 생활에 대비해 발전되고 세련된 삶의 양태를 가리키는 말이죠. 일반적으로는 인류가 이룩한 모든 발전을 뜻합니다. 물질적인 발전과 사회적인 발전이 모두 이 속에 포함됩니다. 다만, 인류의 정신적인 발전은 보통 문명에 포함되지 않지요.
문화(Culture)는 라틴어 ‘쿨트라(Cultura)’에서 파생된 영어 ‘Culture’를 번역한 말입니다. 이 말은 원래 ‘경작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이처럼 농경적인 요소가 강했던 이 말은 점차 예술과 지식, 사상, 교육 등으로 범위가 넓어져 오늘날에 이르렀습니다. 일반적으로 문화는 이런 추상적인 정신 개념의 총체라고 할 수 있지요. 예를 들면, 농사를 짓는 행위 자체는 문화로 볼 수 있어요. 그러나 농업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농기구를 쓴다거나 관개 시설을 세운 것은 문명이라고 할 수 있지요. 또한 인류가 문자를 발명해 많은 지식을 남긴 것은 문화라고 볼 수 있지요. 하지만 발명된 문자 자체는 문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먼 옛날 인류가 남긴 여러 흔적들 중에서 문명이나 역사를 구별해 내는 가장 첫번째 기준은 바로 문자입니다.
문명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구석기 시대까지만 해도 인류의 목표는 오로지 생존 그 자체였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순한 들짐승이 보이면 무조건 사냥을 했지요. 성공하면 당연히 잡아먹었습니다. 들짐승을 길들여서 기를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지천으로 깔린 열매도 보이는 대로 따 먹었습니다. 인류는 이런 방법으로 근근이 배를 채우며 살아갔어요. 먹을 것이 떨어지면 다른 지역을 이동을 했지요. 날씨가 추워지면 동굴에서 추위를 피했고, 만약 동굴을 찾지 못하거나 먹을 것도 구하지 못하면 꼼짝없이 얼어 죽거나 굶어 죽곤 했습니다.
인류의 이동 생활은 기원전 8천 년 무렵까지 계속됐습니다. 바로 이때부터 신석 시 시대가 시작된 것입니다. 물론 지역에 따라 신석기시대가 시작된 시기는 약간씩 다릅니다. 하지만 크게 보아 이 무렵부터 인류에게 신석기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지요. 이 시기에 인류는 놀란 만한 변화를 마주하게 되었어요. 바로 농사와 목축을 시작하게 된 것이죠. 이 사건을 신석기 혁명, 또는 농사 혁명이라고 합니다.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를 구분하는 사건은 바로 농업입니다.
농업이 왜 혁명적인 일이었는지 살펴볼까요?
구석기인들이 이동 생활을 했던 이유는 바로 식량을 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한 장소에 오래 머물면 당연히 열매도 모두 바닥이 날 수밖에 없지요. 그러다가 인류는 곡식이 땅에 떨어지면 싹을 틔우고 자라 더 많은 식량을 제공해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학자에 따라 농사가 시작된 것에 대한 관점을 조금씩 다릅니다. 하지만 아마 누군가 우연히 땅에 떨어뜨린 곡식이 자라나게 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지요. 이 모습을 본 신석기인들은 놀라워했을 겁니다.
이렇게 농사가 시작되었을 거예요. 이제 인류는 어렵게 야생에서 열매를 구하지 않아도 먹고살 수 있게 된 겁니다. 신석기인들은 한 곳에 정착해 생활하기 시작했어요. 사람들은 자기가 사는 곳에 씨를 뿌리고 곡식을 재배했어요. 정착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곡식 외에 다른 식량도 얻는 법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가축을 기르는 것이었습니다. 그전까지는 들짐승을 기르는 법이 없었습니다. 들짐승을 잡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먹어 치웠죠. 당장 배를 채우는 게 더 급했으니까요. 그런데 농사를 지으면서 식량을 확보하게 되었으니, 이제는 동물을 당장 죽이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조금 있다가 잡아먹어야지.’라면서 놓아둔 동물이 새끼를 낳았습니다. 아마도 그때부터 동물을 기르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소, 양, 돼지 등의 동물이 인간과 가까워진 건 바로 이 시기부터 일 겁니다.
농업으로 생산량이 늘어나자 사람들의 굶주림에 대한 공포도 크게 줄었어요. 식량이 부족한 겨울을 대비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이때 또 한 번 인류의 지혜가 발휘됩니다. 식량을 저장하기 위한 토기를 만들게 된 것이지요. 사람들은 이제 어떻게 하면 힘들이지 않고 일을 하면서 식량 생산량을 더 늘릴 수 있는지를 궁리하기 시작했어요. 농기구를 개량함으로써 당분간 이 문제도 해결됐습니다. 구석기시대에는 주로 돌덩이를 힘껏 던지거나 다른 돌로 쳐서 떼어 낸 ‘뗀석기’를 썼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뗀석기를 갈아서 날카롭게 만들어 썼습니다. 이 석기를 ‘간석기’라고 부릅니다. 또 호미와 도끼 같은 농기구는 물론, 재배한 식량을 잘게 부수기 위해 절구나 맷돌도 만들어 썼어요.
이렇게 전 세계에서 농업이 발전하고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특히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지역이 있었어요. 요즘에도 장사가 잘 되는 곳이 있는 것처럼 신석기시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농사짓기 좋은 곳에 사람들이 몰려든 거지요. 대규모의 주거지를 만들기 위해 건설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런 정착촌은 곧 도시로 성장하고, 그 도시가 찬란한 문명으로 발전했습니다.
농사짓기에 좋으려면 일단 기후가 온화해야 합니다. 그리고 물이 풍부해야 가능하지요. 바로 이 때문에 기온이 사람 살기에 적당하고 물이 많은 큰 강 주변에 대규모 도시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정착촌이 대규모 도시가 되는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처음에는 씨족 즉 피를 나눈 가족, 친척끼리 한 정착촌에 모여 살았어요. 즉, 한부모 밑에 있던 자식들은 어른이 되어 가정을 꾸린 뒤에도 다른 지역으로 가지 않고 부모와 같은 지역에서 살았습니다. 그 후손의 후손들도 떠나지 않고 계속 함께 살아간 것이지요. 이런 사회를 ‘씨족 사회’라고 합니다.
그러다가 다른 혈족의 사람들이 이 씨족 사회에 끼어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살기 좋고 농사짓기 좋은 곳이니 정착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씨족 사회에 같은 씨족이 아닌 사람들이 늘어나게 된 겁니다. 서로 다른 씨족들끼리 싸우기도 하고 때로는 평화롭게 어울리기도 했어요.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씨족 사회의 근본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피붙이는 아니지만 같은 동네에 사는 사람들끼리 친해지게 된 것입니다. 이때부터는 혈연이 아니라 지연(출신 지역에 따라 연결된 인연)으로 얽힌 사회가 됩니다. 바로 ‘부족 사회’가 시작된 것이지요.
이런 부족 사회 가운데 특히 살기 좋은 곳은 여러 부족이 모여 뒤섞이면서 더욱 큰 마을로 성장했습니다. 대표적인 지역이 바로 메소포타미아 평야 일대와 나일 강 주변, 인더스 강 일대, 황하 주변이었습니다. 이들 지역에서는 대규모 도시가 건설되기 시작했습니다. 고대의 4대 문명은 이 과정을 거쳐 태동했습니다. 결국 신석기시대의 농업 혁명이 고대 문명으로 이어지는 밑바탕이 된 것입니다.
그 후 도시는 더욱 성장하게 됩니다. 인구가 늘어났으니 농업 생산량도 더 늘려야 했지요. 또 식량을 많이 재배하려면 풍부하게 물을 공급해야 하는 치수(물을 다스리는 능력) 능력이 아주 중요해졌습니다. 물을 잘 관리할 수 있는 시설도 필요해졌습니다. 자연스럽게 대규모 관개 시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어요.
농업 생산량이 늘어났지만, 그 혜택이 모든 사람에게 골고루 돌아가지는 않았습니다. 처음에야 피붙이끼리 살았으니 모두가 똑같이 나눠 먹었지만 잊는 온갖 부족이 섞여 있으니 굳이 식량을 똑같이 나눌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지요. 어떤 사람은 일을 거의 하지 않고도 많은 식량을 가져가고, 어떤 이는 그보다 몇십 배의 일을 했지만 가져갈 수 있는 식량은 아주 적었습니다. 식량을 많이 확보한 사람은 부자가 되어 다른 사람을 지배하기 시작했어요. 배분하고 남은 식량을 잉여 생산물이라고 합니다. 잉여 생산물을 많이 가진 자는 지배자, 그렇지 못한 사람은 피지배자가 된 거지요.
대다수의 피지배자는 지배자의 존재를 받아 들어야 했습니다. 그저 받아들이기만 한 게 아니라 신이나 마찬가지로 높이 떠 받들었어요. 당시 사람들에게는 물이 매우 중요할 뿐 아니라 두렵기도 한 존재였습니다. 강물이 모자라면 농사를 망쳐 사람들이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하게 될 뿐 아니라 자칫하면 강물이 범람해 농지를 폐허로 만들어 버렸으니까요. 그래서 피지배자들은 지배자가 그 강물을 조절해 주고 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지배자를 신처럼 받들었습니다.
신에 버금가는 권력을 가진 지배자들은 약한 도시 국가들을 정복하기도 했습니다. 정복한 도시에서는 식량과 많은 전리품을 얻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지배자의 권력은 더욱 커졌습니다. 4대 문명 지역, 특히 메소포타미아 일대에서 이런 현상이 가장 두드러졌습니다. 인류의 초기 문명은 점점 더 활발하게 발전해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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