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를 전파한 대중매체의 왕: 종이[셀룰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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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를 전파한 대중매체의 왕: 종이[셀룰로스]

by &#$@* 2022.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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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에서 액정 디스플레이까지

땅에서 자라나 도망칠 수도, 먹잇감도 쫓을 수도 없는 식물은 살아남기 위해서 여러 가지 장치를 만들어 냈습니다. 거센 바람을 맞아도 쓰러지거나 찢어지지 않는 강하고 유연한 섬유는 식물이 생존하는 핵심적 요소 중 하나입니다.

 

식물의 특성은 겉모습과 성장주기, 생존하는 환격에 이르기까지 놀랄 만큼 다양하지만 강한 섬유질, 엽록소에 의한 광합성 시스템, 춥거나 메마른 환경을 견뎌내는 씨앗, 이 세 가지는 공통으로 발견됩니다. 이것은 식물이 진화 과정에서 고안해 낸 ‘3대 발명품’이지요.

 

섬유소가 강하고 질긴 이유는 셀룰로스와 리그닌이라는 두 가지 물질 때문입니다. 사람의 몸으로 말하면 셀룰로스가 골격, 리그닌이 근육에 해당합니다. 식물이 지구 표면을 덮어버릴 만큼 번성하는 데 이 조합은 커다란 무기가 되었었지요. 예를 들어, 나무 무게의 40-50%는 셀룰로스이므로, 셀룰로스는 지구 상에 가장 많이 존재하는 유기화합물입니다. 전 세계 식물이 만들어내는 셀룰로스는 연간 1,000억 톤이라고 하지요. 

 

이 엄청난 양의 유용한 물질을 인류가 활용하지 않을 리 없었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셀룰로스로 둘러싸였다고 해도 좋습니다. 앞세어 이야기했듯이 목재의 주성분은 셀룰로스이므로, 건축 자재나 연료로서 가장 오래전부터 인류와 함께해 온 재료인 셈입니다. 모시나 무명 같은 천 또한 거의 순수한 셀룰로스이기 때문에 의류에서도 중요합니다. 식물성 섬유도 대부분 셀룰로스이며, 의약품인 알약을 만드는 데도 이용합니다. 셀룰로스를 생산하는 세균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나타데코코(Nata de coco, 코코넛을 젤리 형태로 가공한 식품)는 아세트산 균이 만들어낸 젤 형태의 셀룰로스입니다. 

 

화학가공한 셀룰로스도 널리 이용되고 있지요. 아세테이트 섬유가 대표적으로, 한때 폭넓게 사용했던 셀룰로이드 또한 셀룰로스로 만들지요. 아세틸셀룰로스라 불리는 물질은 사진 필름이나 액정 디스플레이에 널리 사용하니, 셀룰로스는 고도의 첨단 기술 제품에도 필수 재료인 셈이죠. 

 

무엇보다도 우리 가까이에 있는 셀룰로스 제품은 역시 종이입니다. 책이나 노트 등 정보를 기록하는 매체로는 물론, 미닫이문 등의 건축 재료, 골판지나 포장지 등의 포장 재료, 종이컵이나 우유 팩 등의 용기류, 커피 필터나 종이 기저귀, 화장지 등의 일상용품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종이 제품에 신세 지지 않는 날은 단 하루도 없습니다. ‘인류사 최대의 발명품은 무엇인가?’란 질문에는 다양한 대답이 있겠지만 종이는 그 유력 후보에 틀림없이 꼽히지 않을까요? 

 

그림 자료: 셀룰로스의 분자 구조
(그림 자료: 셀룰로스의 분자 구조)

 

종이는 누가 발명했을까?

종이는 예로부터 널리 사용되는 재료로는 드물게 발명자의 이름은 물론 발명 연대까지 확실합니다. 발명자는 중국 후한시대(서기 25-220년)의 환관이었던 채륜이란 사람입니다. 채륜은 환관 중에서도 간부급 직책인 중상시를 거쳐 상방령이란 자라에 올랐다고 합니다. 상방령은 황제가 사용하는 물건을 만드는, 이른바 궁정의 공방을 책임지고 관리하는 자리입니다. 채륜은 발명에 매우 뛰어난 재능을 지닌 인물이어서 그가 만드는 도구류는 정밀하다는 평이 자자했다고 합니다. 

 

서기 105년, 채륜은 나무껍질이나 모시 조각, 찢어진 어망 등을 원료로 삼아 얇고 질긴 종이를 발명해냈습니다. 역사서에 따르면, 채륜이 당시 황제인 화제에게 이 종이를 바치자 황제는 크게 기뻐하며 채륜의 재능을 칭송했다고 합니다. 

 

그때까지는 기록 매체로 주로 목재 또는 기름을 뺀 대나무를 여러 개 묶어 만든 목간이나 죽간을 사용했습니다. 이것들은 부피가 커서 두말할 필요도 없이 다루기 힘들었습니다. 반면, 종이는 글시를 편하게 쓸 수 있을 뿐 아니라 얇아서 자리를 많이 차지하지도 않습니다. 종이를 말거나 모아서 묶으면 효율적으로 정보를 모을 수 있지요. 이전까지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편리성이 향상된 것입니다. 

 

참고로 채륜 이전의 시대에도 종이 비슷한 물건이 존재하기는 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종이’는 간쑤성 톈수이시에서 출토된 마 조각으로, 기원전 179년-기원전 142년경의 종이로 추정됩니다. 글자가 적힌 종이로는 전한 시대의 선제 황제 때 만들었다고 추정되는 ‘현천지’가 가장 오래되었습니다. 

 

이집트의 파피루스(파피루스 줄기 껍질을 나란히 놓고 강한 압력을 가해 종이 형태로 만든 것) 등 중국 이외에서도 이미 종이와 비슷한 물건이 발명되어 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물건들은 품질이 좋지 않았을뿐더러 값도 매우 비쌌지요.

 

채륜의 공적은 흔한 재료나 폐기물을 원료로 해 종이를 적은 비용으로 만들어낸 데 있습니다. 채륜이 만든 종이는 얇고 질겨서, 이전의 종이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고품질이었습니다. 그야말로 파격적 혁신이라 불릴 만한 것이었습니다. 

 

채륜은 종이를 어떻게 만들었을까요?

먼저 너덜너덜한 모시 천을 깨끗이 빨아서 재와 함께 삶습니다. 현대 과학 용어로 표현하면, 알칼리로 가열해 불순물을 분해, 제거해 순수한 셀룰로스를 추출하는 작업입니다. 이것을 절구에 넣고 찧은 다음 물에 푼 뒤 망을 덧댄 나무틀로 건져냅니다. 이것을 절구에 넣고 찧은 다음 물에 푼 뒤 망을 덧댄 나무틀로 건져냅니다. 마지막으로 이것을 잘 건조하면 종이가 완성됩니다. 이 제조법은 2천 년 가까이 지난 오늘날의 방법과 기본적으로 똑같습니다. 이 점을 생각하면 채륜 이전 시대에 유사품이 있었을지언정 채륜을 종이의 발명자라고 단정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식물이 만든 최고의 건축 재료

어째서 종이는 이토록 얇고 질긴 것일까요?

종이의 원료인 셀룰로스를 화학의 관점에서 살펴볼까요? 셀룰로스는 수많은 포도당 분자가 길게 일직선으로 연결된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즉, 포도당으로 구성된 사슬입니다. 식물의 잎이 광합성 작용으로 만들어내는 포도당을 그대로 원료로 쓸 수 있기 때문에 효율성이 매우 높을 뿐 아니라 대량생산 또한 가능합니다. 

 

포도당 분자에는 여러 개의 하이드록시기가 있지요. 셀룰로스 분자 전체로 보면 몇 천, 몇 만 개의 수소와 산소가 있는 셈입니다. 수소와 산소는 서로 잡아당겨 수소결합이란 결합 형식을 만듭니다. 수소 결합은 일반적인 원자 간 결합(공유결합)의 고작 1/10 정도의 강도를 지니지만 여러 개가 모이면 좀처럼 무시하기 위한 힘든 힘을 발휘합니다.

 

이 수소 결합으로 이웃한 포도당끼리, 혹은 다른 사슬의 포도당 분자들이 서로를 잡아당겨 결합함으로써 상당히 질긴 섬유를 형성합니다. 셀룰로스 섬유에는 다른 분자나 분해 효소가 비집고 들어갈 틈도 적으므로, 셀룰로스는 오랜 세월을 견디고 계속 안정한 상태로 존재합니다. 천몇 백 년 전에 만들었는데도 변함없이 형태를 유지하는 목조 불상에 오늘날에도 우리가 합장할 수 있는 이유 역시 강하고 질긴 셀룰로스 섬유의 힘 덕분입니다. 

 

 

종이의 장점: 2천 년 전 베스트셀러의 탄생 비화

종이의 장점은 정보를 기록하고 전달하며 남기기에 적합하다는 점이지요.

중국의 진시 황체는 ‘분서’를 단행해 정복한 나라의 역사서와 유교 경전 등 자신에게 불리한 서적을 모조리 불태웠습니다. 종이가 발명되기 이전에는 문서가 목간 등에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에 불에 태워 정보를 없애기란 매우 간단했지요. 

종이 역시 불에 약하기는 하지만 훨씬 싼값에 대량 생산이 가능하므로 정보를 복사해 여러 군데에 보관할 수 있습니다. 즉 책을 한두 권 불태워서는 정보를 완전히 없애기가 불가능하지요. 비용이 절감되어 대량생산을 할 수 있게 된 매체는 정보의 존재 방식 자체를 바꿔 놓았답니다. 

 

종이의 등장은 문화에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본래 한자는 소나 말의 , 거북이 등딱지에 새기기 위한 문자(갑골문자)로서 탄생했지만, 목간과 붓이 보급되면서 글자 모양도 변해 전서와 예서라는 서체가 탄생했어요. 종이가 발명된 후한시대에는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매우 익숙한 해서와 행서가 만들어져 수많은 명필이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종이 질이 개량된 동진(317-420)에는 서성이라 불리는 왕희지가 활약해 서예는 점차 예술의 영역으로 격상되었습니다.

 

보존하기 쉽고 운반하기 편한 종이란 매체는 문화이 전파에도 공헌했습니다. 서진시대(265-316)의 문인이었던 좌사 또한 ‘삼도부’란 제목의 시문을 10년에 걸쳐 완성했습니다. 이 시는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고, 사람들이 앞다투어 필사를 했으므로, 뤄양에서는 종이가 부족해져 종이값이 폭등했다고 합니다. 베스트셀러가 탄생한 셈인데, 이 사건으로 뤄양의 종이값이 올랐다는 뜻의 ‘낙양지가귀’란 고사성어가 태어났다고 하네요. 

 

‘과거 제도’ 또한 종이가 보급되지 않고는 성립하기 어려운 제도이지요. 과거란 일반 백성 가운데 재능이 뛰어난 자를 선발해 국가를 위해 일하는 관료로 삼기위한 시험입니다. 시험은 ‘논어,’ ‘맹자’ 등 사서오경에서 출제되므로, 응시자는 약 43만 자에 달하는 고전과 주석을 통째로 암기해야 했습니다. 공부를 위해서도, 시험을 위해서도 엄청난 양의 종이가 필요했던 것이지요. 

 

과거는 수나라(581-618) 문제가 6세기 말에 시작한 이후, 20세기 초반까지 이어졌습니다. 수많은 유명 정치가가 과거를 통해 궁정에서 권력을 움켜쥠으로써 역사를 움직여 온 것이지요. 종이와 붓이란 뛰어난 필기도구가 없었다면, 이 같은 대규모 인재 등용 제도 도한 탄생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림 자료: 중세 시대의 그림 제작 장면
(그림 자료: 중세 시대의 그림 제작 장면)

 

서양에서는 왜 뒤늦게 종이를 사용했을까?

751년, 서쪽으로 세력을 확장하던 당나라는 점차 두각을 드러내던 아바스 왕조의 이슬람 제국(750-1258)과 오늘날의 카자흐스탄 부군에서 충돌했습니다. 이 전투를 ‘탈라스’라고 부릅니다. 이 전투는 후세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지요. 이 전투에서 2만명이나 되는 많은 당나라군의 포로가 되었답니다. 그런데 이 포로 중에 종이 장인들이 있었던 것이죠. 이들에게 종이 뜨기 기술이 있었어요. 

 

처음으로 종이를 접한 아바스 왕조 사람들은 바로 종이의 중요성과 편리성을 깨달았던 것 같아요. 종이의 재료가 될 만한 식물을 찾아 제지법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794년에는 수도 바그다드에 제지소를 세워 행정문서와 공문서에 종이를 사용하였습니다. 

 

얼마 안 가 종이는 유럽에까지 전파되었습니다. 일설에 의하면, 2차 십자군원정에 참전했다가 포로로 잡혔던 장 몽골피에(Jean Montgolfier)란 프랑스 병사가 다마스쿠스(지금의 시리아)의 제지소에서 강제 노동을 한 후 귀향해, 1157년에 제지업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 후 제지 기술은 스페인에 1056년에, 이탈리아는 1235년에, 독일은 1391년, 영국은 1494년, 네덜란드 1586년, 그리고 북미에는 1690년에 전파되었습니다. 물론 년대를 다르게 볼 수도 있지만, 뜻밖에도 제지 기술은 매우 천천히 퍼져 나간 것이지요. 그 이유는 유럽에서 제지에 적합한 식물을 좀처럼 손에 넣기가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동양에서는 서예나 수묵화 등 종이를 그림의 재료로 하는 예술이 발전했지요. 한편 서양에서는 오랜 기간 조각이 예술 분야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었고, 회화 또한 프레스코화와 유화 같은 장르가 주류를 이루었습니다. 유럽에 질 좋은 종이가 풍부했더라면 미술사의 흐름은 어떻게 변했을지 상상해 보면 흥미롭겠죠.

 

인쇄술의 전파와 구텐베르크

15세기 중반, 종이를 구하기 어려웠던 유럽에서 종이 수요를 폭발적으로 늘려준 사건이 일어나게 되었어요. 바로 인쇄술의 발명입니다. 필사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속도로 정보가 대량으로 찍어내는 ‘인쇄’란 기술이 얼마나 획기적이었는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기록에 따르면, 활자를 조합해서 찍는 활판 인쇄는 11세기 송나라에서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같은 결과물을 제쳐놓고 역사에 이름을 새긴 것으 ㄴ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개발한 인쇄기입니다. 구텐베르크는 포도 압착기를 개조한 인쇄기로 1450년 무렵부터 인쇄업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후, 종이와 인쇄술에 따른 지식 보급은 유럽에서 과학 기술이 보급되는데 큰 공을 세웠어요. 

 

디지털 매체 때문에 종이가 사라질까요?

이후에도 종이를 매개로 정보와 지식이 전달되면서 세계의 역사 및 문화는 점차 크게 변해갔습니다. 오늘날 종이의 혜택을 의식조차 하지 못할 만큼 종이는 우리 생활에 깊이 침투해 있습니다. 인류의 문명은 셀룰로스로 구성된 이 연약하고 얇은 조각 위에 세워진 것이지요.

 

20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드디어 대중 매체의 왕인 셀룰로스의 지위를 위협하는 재료가 등장했지요. 각종 자기 기록 매체입니다. 오늘날에는 한 군데 서점에 진열된 책 속 내용이 손바닥만 한 하드디스크 하나에 들어가며, 필요한 정보로 순식간에 접속할 수 있습니다. 

 

자기기록 매체가 등장했을 당시에는 이제 종이가 자신의 임무에서 물러나게 되어 종이 없는 사회가 올 것이라고 선전했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전 세계 종이 생산량은 연간 4억 톤을 넘어 계속 증가하는 중입니다. 취급하는 정보량이 비약적으로 늘어난 만큼 이를 열람하기 위한 종이의 수요도 늘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무려 2천 년 간 인류의 곁에 있었던 종이(=셀룰로스)에는 아직도 거대한 성장 잠재력이 있지요. 나노 셀룰로스가 대표적 재료입니다. 나노 셀룰로스는 식물에서 얻은 셀룰로스 섬유를 무려 수십 나노미터쯤 되는 크기로 분해한 물질인데, 이것을 굳히면 투명해집니다. 종이는 셀룰로스 섬유 사이에 공기가 포함되어 있어서 빛을 반사해 하얗게 보이지만 셀룰로스 나노파이버(CNF)는 공기가 들어갈 틈이 없으므로 빛을 통과시킵니다.

 

이 나노 셀룰로스와 플라스틱을 합치면 무게가 강철의 5분의 1밖에 되지 않으면서 강도가 5배나 되는 재료가 탄생합니다. 혼합하는 플라스틱의 성분을 바꿈으로써 ‘전기를 통과시키는 종이’를 만들어낼 수 도 있는 것이지요. 지금은 제조 비용이 많이 드는 것이 단점이지만, 이 문제만 해결된다면 가볍고 저렴할 뿐 아니라 응용 범위까지 넓은 재료가 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2천 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종이는 새로운 기술의 등장으로 그 왕좌를 물려주기는커녕 활약의 장을 계속 넓혀가고 있는 중이지요. 구하기 쉬울 뿐 아니라 응용 범위까지 넓은 셀룰로스란 재료를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앞으로 우리 사회가 발전하는데 중요한 열쇠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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