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 아기오리’는 세상의 환영을 받지 못하더라도 묵묵히 참고 견디다 보면 자신의 참된 모습을 발견할 때가 온다는 것을 알려 주는 이야기입니다. 안데르센의 자전적 이야기로 유명한 이야기로 어떤 상황에서나 좌절하지 않고 고통과 고난을 견뎌 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풍경이 아름다운 시골에 여름이 찾아왔어요. 낡은 농가 앞으로 깊은 시냇물이 흐르고, 그 가장자리에는 아이 키보다 훨씬 더 큰 물풀들이 자라고 있었어요. 이 물풀 속에 엄마 오리 한 마리가 둥지에 앉아 있었어요. 이렇게 오랫동안 앉아 있느라고 몹시 지쳐 있었습니다.
마침내 오리알이 하나하나 깨지면서 아기오리들이 고개를 내밀고 큰 소리고 울어대기 시작했어요. 엄마오리는 모두 다 알에서 나왔을 거라 생각하고 둘러보았습니다. 그러나 제일 큰 알은 아직 개지 않고 그냥 있었어요. “도대체 언제까지 품어 줘야 깰 작정이지?” 엄마 오리는 다시 앉아 알을 품었어요. 늙은 오리 한 마리가 엄마 오리를 찾아와서 알이 다 깨어났는지 물어보았어요. 제일 큰 알이 아직 안 나온다고 대답하자, 그 알은 아마도 칠면조 알일 것이라고 말했어요.
드디어 그 큰 알이 깨졌습니다. “끼약, 끼약.” 알 밖으로 비틀비틀 기어 나온 녀석은 몸짓이 몹시 컸고 아주아주 못생긴 놈이었어요. 엄마 오리는 다른 애들하고는 아주 딴 판으로 생긴 새끼를 보고 놀라 정말 칠면조 새끼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일단 두고 보자고 했습니다.
엄마 오리가 아기오리들을 물가와 밖으로 데리고 다니면서 세상 교육을 시켰어요. 그런데 도중에 어떤 오리가 못생긴 아리오리한테로 날아가서는 목을 쪼아대는 것이었어요. 엄마 오리가 놀라 항의를 하자 그 오리는 너무 키가 크고 괴상해서 혼을 내주어야 한다고 말했어요. 이렇게 해서 엄마 오리와 아기오리들은 마당에서만 지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못생긴 오리는 암 오리와 수오리들로부터 놀림을 받고 물리고 떠밀리기까지 했습니다. 못생긴 아기오리는 자기가 못생긴 탓이라면서 엄마와 형제 오리들을 떠나 멀리 달아났습니다.
아침이 되어 눈을 뜨니 못생긴 아기오리는 들오리들이 사는 늪지대에 쓰러져 있었어요. 그 늪지대에서도 못생겼다고 놀림은 받았지만 여기에 살면서 물이라도 얻어 먹을 수만 있다면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이틀이 지났을 때 어디선지 기러기 두 마리가 날아와 함께 철새가 되지 않을 거냐고 물어보았어요. 그때 총소리가 들리더니 기러기 두 마리가 물에 떨어져 죽고 말았어요.
미운 아기 오리는 죽을힘을 다해 그곳에서 도망치다가, 어느 다 쓰러져가는 오막살이한 채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할머니가 고양이 한 마리와 닭 한 마리를 기르며 살고 있었어요. 못생긴 아기오리는 문틈으로 살며시 집안으로 들어갔어요. 아침이 되자 아기오리는 금방 눈에 띄었고, 삼 주일 동안 그 집에 있게 되었는데, 알을 낳지는 못했어요. 고양이는 그 집의 바깥 주인처럼 굴었고, 닭은 안주인처럼 굴면서 못생긴 아기 오리를 구박했어요. 그래서 못생긴 아기오리는 더 넓은 세상으로 가고 싶어 오두막을 떠났습니다.
오두막을 떠난 아기오리는 물 위를 떠다니거나 물 속으로 머리를 막고 들어갔다 나왔다 하며 헤엄치며 놀았어요. 그러나 여전히 다른 친구들은 못생겼다고 놀리기만 했습니다.
어느새 가을이 되었어요.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해가 지는 저녁 무렵, 아름다운 큰 새들이 떼를 지어 날아올랐어요. 그렇게 아름다운 새들은 생전 처음 보는 것이었어요. 못생긴 아기오리는 그 새들을 잊을 수가 없었어요. 지금까지 만난 어떤 새들보다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에요.
가을이 되자 못생긴 아기오리는 물에서 헤엄을 쳤지만 물은 꽁꽁 얼어버려 아기오리도 함께 얼어 버렸습니다. 다음 날 새벽, 호숫가를 지나던 농부가 못생긴 아기오리를 발견하고는 집으로 데려갔어요. 그 집 아이들은 아기오리와 놀고 싶어했어요. 하지만 못생긴 아기오리는 아이들이 괴롭힐까 봐 겁이나 도망가다가 그만 버터 통으로 들어가 밀가루 통을 들이받았어요. 그 모습을 본 아이들은 손뼉을 치며 깔깔댔어요. 다행히도 문이 열려 있어 아기오리는 도망쳐 나올 수 있었습니다.
드디어 늪지대에 봄이 찾아왔어요. 건너편 숲에서 눈부신 백조 세 마리가 날아왔습니다. 못생긴 아기오리는 바로 그 새들을 알아보았어요. ‘아마 못생긴 놈이 어딜 왔느냐고 물어 죽일 거야. 하지만 오리한테 매맞고 닭한테 쪼이느니 보단 저 새들한테 죽는 게 나을 거야.’ 못생긴 아기오리는 머리를 숙이고 죽음을 기다렸어요.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요? 물에 비친 것은 보기만 해도 눈살이 찌푸려지는 못생긴 아기오리가 아니라 아름다운 백조였어요. 지금까지 겪은 수많으 어려움과 아픔이 오히려 기쁘게 생각되었어요. 아이들이 몰려왔어요. 그중 작은 아이가 외쳤어요. “새로 온 백조가 제일 아름답다. 아주 어린것이 너무너무 귀여운걸.”
하부르타식 질문의 예:
농가의 모든 오리들과 미운 아기오리의 형제 오리들은 왜 미운 아기오리를 미워하면서 못살게 굴었을까요?
미운 아기오리는 왜 오리한테 매맞고 닭한테 쪼이느니 보단 백조들에게 죽는 게 나을 거라고 생각했을까요?
못생긴 아기오리는 왜 모두막을 떠나 더 넓은 세상으로 가기를 바랬을까요?
백조가 된 못생긴 아기오리는 왜 지금까지 아픔이 기쁘게 생각되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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