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 즈음에 동서양의 고전 읽기를 통해 다각적인 관점을 이해하고 통합하는 능력과 스스로 주제를 파악하는 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박씨전은 병자호란 (1636년, 조선 인조 14년 12월부터 다음 해 1월 사이에 일어남)을 시대 배경으로 쓰인 작자 미상의 고전 소설입니다. 그러다 보니 재화자에 따라 내용이 조금씩 차이가 나는데 기본 줄거리는 대개 비슷합니다. 박씨전이 널리, 다양하게 읽히는 까닭은 당시 청나라에게 당한 치욕스러운 패배와 고통을 상상 속에서나마 복수하고자 했던 민중들의 욕구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옛날 조선 시대 인조 임금 때 서울에 높은 벼슬을 한 이득춘이란 사람이 살았습니다. 그는 나이가 많은데도 슬하에 자식이 없어 늘 걱정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금강산에 들어가 이레 동안 부처님께 빌었더니 하루는 꿈에 늙은 스님이 나타나 말했습니다. “그대의 정성이 지극하여 부처님께서 귀공자를 낳게 해 주셨으니 잘 기르시오.
꿈을 꾼 후 부인의 몸에 태기가 있더니 열 달 만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때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와 아기를 받아 목욕을 시켜 주었습니다. “이 아기는 자라서 금강산에 있는 처녀와 결혼을 해야 합니다. 꼭 그렇게 하십시오.” 선녀는 이 말을 남기고 하늘로 올라가 버렸습니다. 아버지 이득춘은 아들의 이름을 시백이라고 짓고 잘 길렀습니다. 시백은 보는 사람마다 놀랄 만큼 아주 총명하여 세 살쯤 되자 책 읽기를 좋아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시백이 어느덧 열여섯 살이 되던 해에 이득춘은 관찰사 벼슬을 얻어 강원도로 떠났습니다.
어느 날 금강산에 살고 이쓰는 박현옥이라는 사람이 찾아와, 자신의 딸과 결혼을 시키라는 하늘의 지시를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딸은 너무나 못생겼지만 그 뜻을 전하러 왔다고 했습니다. 시백의 아버지는 그 선비의 거동이나 말하는 폼이 예사롭지 않음을 알고 그 청을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그리하여 이듬해 8월에 아버지는 시백을 데리고 금강산으로 며느리를 맞으러 갔습니다. 금강산에 다다라 박 선비를 찾아 헤매던 부자는 갑자기 학을 타고 나타난 박 선비를 보고 놀랐습니다. 가파른 절벽과 수풀이 우거진 길을 평평한 길을 가는 것처럼 잘 가는 그는 아무래도 그는 사람이 아닌 신선 같아 보였습니다. 어느 숲 속에 이르러 박 선비의 집이 나타났습니다.
8월 24일 드디어 검소한 결혼식이 거행되었습니다. 박 선비는 너무 기뻐 못생긴 딸이 훌륭한 아드님을 신랑으로 맞게 해 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거듭했어요. “얼굴은 아름답지 못할지라도 마음씨만 고우면 그만 아니겠습니까? 그런 것은 조금도 염려하지 마십시오.”라며 이시백도 기뻐서 환한 웃으며 대답을 했습니다. 그날 밤 시백이 신방에 들어가 방 안을 살펴보고 있는데 신부가 살펴시 들어왔습니다. 신부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고 난 시백은 까무러칠 정도로 놀랐어요. 왜냐하면 코는 높고 이마는 툭 튀어나왔으며, 왕방울 같은 두 눈은 이상하리만큼 번쩍였기 때문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얼굴빛은 검고, 귀는 짐승같이 크며, 두 어깨에는 혹이 하나씩 늘어져 가슴까지 내려와 있었기 때문이죠. 신부의 모습은 소름이 끼칠 만큼 무서웠어요. 시백은 도처히 신부와 얼굴을 마주 대고 있을 수 없어 그만 방에서 뛰쳐나오고 말았습니다. 이 사실을 안 아버지 이득춘은 아들을 크게 꾸짖었지만 시백은 죽어도 그런 괴물 같은 여자와 살 수 없다고 하면서 서울로 돌아가겠다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그를 크게 꾸중을 하고 설득해서 다시 신방으로 들여보냈지요. 어쩔 수 없이 신방으로 돌아온 그는 신부와 돌아눈운 채 밤을 꼬박 새웠습니다.
며칠 밤을 이렇게 지내고 서울로 돌아 왔습니다. 서울에 돌아오자 아버지는 잔치를 베풀고 아들이 결혼을 하였음을 사당에 알렸습니다. 더럽고 못생긴 여자를 며느리로 삼은 것에 시백의 어머니는 불평을 하자 아버지는 “비록 얼굴은 곱지 못하지만 재주가 뛰어나고 도술이 능한 데다 여자로서의 덕을 고루 갖춘 사람이니 앞으로 우리 집안을 크게 빛낼 것이오. 그러니 얼굴이 못 생겼다고 너무 타박하지 마시오”라면서 나무랐습니다. 시백은 신부와 말도 하지 않으면서 남이나 다름없이 지냈습니다.
어느 날 신부가 시아버지에게 자신이 너무 못생긴 얼굴로 여러 가지 괴로움을 끼쳐 죄송하다면서 혼자 있고 싶으니 초당을 하나 지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며느리가 한없이 가엾게 느껴진 그는 뒤꼍에 아담한 초당을 짓고 그 주위에는 갖가지 아름다운 꽃들을 심게 했어요. 신부 박씨는 못생긴 얼굴을 스스로 수건으로 가리고 있었습니다. 초당으로 옮겨 간 박 씨는 붓으로 한자 “피화정 (화를 피하는 정자)”이라고 쓰고 그 종이를 한 번 뒤적이자 종이는 갑자기 금으로 쓴 현판으로 변했어요. 시아버지 이득춘은 며느리의 재주에 놀라 감탄했습니다.
박씨 여러 가지 면에서 솜씨와 재주가 뛰어났지요. 비루먹은 말을 3백 냥으로 사서 기름지고 반지르르하게 키워 명나라 사신에게 3만 8천 냥을 받고 팔았습니다. 어느 해 인조 임금이 훌륭한 인물을 뽑기 위한 과거를 보도록 하였습니다. 그때 박 씨는 꿈에 벼룻물을 담는 백옥 연적을 보고 아침 일찍 연못가로 나가 보았다가 꿈에서 본 똑같은 연적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남편을 초장으로 불러 그 연적을 주려 했습니다. 그러나 아내가 건방지게 남편을 오라 가라 한다면서 박 씨의 심부름으로 시백을 부르러 간 여종 계화를 대신 때려 주었습니다. 할 수 없이 백옥 연적으로 계화에게 남편에게 갖다 주면서, 과거 시험장에서 그 연적의 먹물로 글을 쓰라고 전하였습니다. 박 씨의 말대로 그 연적의 먹물로 글을 쓴 이시백은 장원급제를 하였습니다. 이런 공을 세운 박 씨를 이시백은 아직도 남처럼 대했습니다. 시백의 아내라는 것을 오직 말뿐이었습니다.
박 씨가 시집을 온지도 어느덧 3년이 지났습니다. 박 씨는 시부모님께 친정에 다녀오도록 허락해 달라고 했습니다. 머나먼 금강산까지 3,4일 안에 다녀오겠다는 말에 며느리의 놀라운 도술을 아는 까닭에 순순히 허락을 해 주었습니다. 초당 뜰에서 주문을 외운 박 씨는 몸이 공중으로 붕 떠오르더니 구름을 타고 사라졌습니다. 잠시 후 금강산 비 취봉에의 아버지한테로 갔습니다. 며칠 쉬고 다시 서울 시댁으로 돌아온 박 씨는 이달 보름날에 친정아버지가 오실 거라는 말을 전했습니다.
어느덧 보름날 밤이 되었을 때 박 선비가 나타났습니다. 박 선비는 이제 박 씨의 전생의 죄가 끝나서 본디의 얼굴로 돌아가게 되었다고 기뻐하며 말했습니다. 그러더니 딸을 남쪽으로 향해 앉히고 주문을 외웠더니, 그 흉하던 얼굴의 허물이 벗어지고 아름다운 얼굴이 나타났습니다. 박 선비는 혹시 누가 믿지 않으면 이 허물을 보여 주라고 하면서 허물을 상자에 넣어 주었습니다. 박 씨의 아름다운 얼굴을 본 몸종 계화는 깜짝 놀라고, 부랴부랴 이득춘에게 달려가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시어머니는 처음에는 이 사실을 믿지 않았으나 허물을 보고 자신이 미워했던 것을 뇌우 쳤습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놀란 사람은 남편 이시백이었습니다. 시백은 지난날을 진심으로 미안해하며 사과를 했습니다. 그러나 박 씨는 “군자께서는 얼굴의 곱고 추한 것만을 가려서 저를 나그네 대하듯 하거나 때로는 구박을 했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나 같은 사람은 아예 잊어버리고 좋은 아내를 맞이하여 행복하게 사십시오”라며 쌀쌀하게 대했습니다. 시백은 밤새워 빌며 사과했습니다. 박 씨는 남편이 깊이 뇌우 치자 마음을 돌려 용서해 주어 결혼 후 처음으로 정다운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 후 박 씨는 아들 쌍둥이를 낳았습니다.
그즈음 명나라는 오랑캐들 때문에 매우 골치를 앓고 있었습니다. 그 소문을 들은 임금은 명나라의 근심을 없애 주기로 했습니다. 임금은 이시백에게 명나라에 가 도와주도록 했습니다. 이시백은 임경업 장군과 함께 명나라에 갔을 때 호나라가 가달을 물리쳐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가달은 명나라까지 쳐들어오려고 한 오랑캐였습니다. 가달을 물리친 임경업은 공주를 장군의 아내를 주려했지만 그는 남의 나라 공주와 결혼을 하고 싶지 않아 일부러 공주의 눈에 거슬리는 행동만 했습니다. 이시백과 임경업이 돌아간 후 호나라 임금은 조선을 치고 항복을 받으려 마음을 먹었으나 이제 조선을 넘볼 수 없게 되었다며 한탄을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공주는 자신이 조선에 가서 이시백과 임경업 장군을 없애고 돌아 오겠다고 했습니다. 조선에 들어온 호나라 공주는 의주에 머물며 조선의 말과 풍습을 배워 익히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박씨는 이시백에게 설중매라는 여자가 찾아올 것이니 그 여자의 아름다움에 정신을 빼앗기면 큰 변을 당할 것이니 조심하라고 일러두었습니다. 다음 날 저녁에 박 씨의 말대로 정말 한 여자가 이시백을 찾아왔습니다. 아내의 말을 언뜻 떠올린 그는 “지금 손님이 많아서 만날 수가 없으니 기다리고 있으시오.”라며 곧장 설중매를 아내 박 씨에게 보냈습니다. 술을 먹여 설중매를 잠재운 박 씨는 설중매의 몸을 뒤져 비수 하나를 발견했는데, 그 비수가 저절로 박 씨를 향해 달려들었습니다. 그 칼을 피한 박 씨는 설중매가 잠에서 깨어나자 앉혀 놓고 크게 꾸짖었습니다. 설중매가 임경업 장군까지 죽이려는 속셈을 알고 도술을 부려 공주를 호나라 공주를 눈 깜짝할 사이에 호나라 궁궐 들어 떨어지게 했습니다. 이에 놀란 임금은 다시 용골대와 용홀대 두 형제 장수에게 군사 3만을 주어 조선을 치도록 했습니다.
바로 이 무렵, 박씨는 남편 이시백에게 호나라가 지금 조선을 치려한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호나라가 12월 28일에 서울에 쳐들어 올 것이니, 그때에 대비하시어 상감마마에게 급히 광주 산성으로 피난 가시도록 하십시오. 뒷일은 제가 맡겠습니다.”이 말을 듣고 이시백은 적군을 막는 일에 힘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좀처럼 적군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12월 28일이 되자 정말 적군은 서울 북쪽까지 쳐들어오고 말았습니다. 이시백은 급히 임금께 광주 산성으로 피신하도록 아뢰었습니다. 간신배들이 피신을 가지 못하도록 말렸으나, 계화가 그들을 물리치자, 임금은 그제야 알아채고 광주 산성으로 피난을 갔습니다. 용골대가 광주 산성을 위협하고 포위하자 임금은 눈물을 흘리면서 탄식을 하였습니다. 박 씨는 화평을 청하는 글을 용골대에게 주도록 하였습니다. 임금이 그대로 하자 용골대는 왕대비와 세 왕자를 데리고 광주 산성 포위를 풀고 물러갔습니다.
박 씨는 또 도술을 부려 계화로 하여금 용홀대를 죽이게 하고, 그의 형 용골대에게도 망신을 주어 자기 나라로 돌아가게 했습니다. 이렇듯 박 씨의 뛰어난 도술은 오랑캐들의 가슴을 서늘하고 만들었습니다. 호나라에 이끌려갔던 세자들은 3년 후에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이것 또한 박 씨의 힘이었습니다. 임금은 박 씨의 공을 크게 칭찬하며, 박 씨에게 정경부인의 작위를 내렸습니다.
하부르타식 질문의 예:
이시백은 왜 여자를 외모로 판단했을까요?
박씨는 왜 초당을 지어 혼자 살게 해 달라고 했을까요?
이득춘은 왜 이시백과 달리 박 씨 부인을 아껴 주었나요?
이시백은 왜 박씨 부인이 허물을 벗고 나서야 자신의 잘못을 뇌우 쳤을까요?
박 씨 부인은 구박을 받는데도 왜 시부모님을 정성껏 잘 받들었을까? 왜 용골대를 죽이지 말고 도술을 부려 혼내만 주라고 했을까요?
초당의 이름은 왜 ‘피화정’ 이라고 했을까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