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아시아 친구야! [베트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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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아시아 친구야! [베트남 이야기]

by &#$@* 2023.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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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아시아 친구야!]는 아시아 여라 나라 가운데 베트남의 사회와 역사, 문화에 대해 알아보는 이야기입니다. 베트남은 우리와 비슷한 역사적 인연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문화 가정 등을 이루며 우리 사회를 함께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와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마음에 대해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하노이와 호치민

하노이와 호치민은 각각 베트남 북부와 남부를 대표하는 도시랍니다. 그러나 1802년 응웬 왕조가 베트남을 통일하기 전까지 각각 다른 문화권의 나라였답니다. 북부 하노이는 중국의 영향을 받아 유교 문화권이었고, 남부 호치민은 이슬람과 힌두 문화권이었지요. 이후에도 하노이는 중국과 러시아의 영향으로 사회주의를, 호치민은 프랑스와 미국의 영향으로 자본주의를 받아들였어요. 그래서 북부 하노이 사람들은 격식을 차리고 고지식한 성격을 가졌고, 호치민 사람들은 격식을 차리지 않는 자유로운 성격을 가졌다고도 합니다. 호치민은 오래전부터 상업과 교역에서, 하노이는 베트남의 수도로써 정치와 문화, 교통에서 중심을 이루며 함께 성장하고 있습니다.

 

인도차이나 반도 동해안을 따라 길게 뻗어 있는 베트남은 북쪽으로는 중국, 서쪽으로는 라오스, 캄보디아와 맞닿아 있어, 동남아시아에 위치해 있어 먼 나라 같지만 실은 한국과 아주 인연이 깊은 나라이지요. 중국의 영향으로 유교적 전통이 많이 남아 있어 한국 문화와 매우 비슷합니다. 또한 예전에 베트남 전쟁 때 한국이 참전했기에 가슴 아픈 기억도 많습니다.

 

베트남의 문화 

베트남 놀이 문화 중 유명한 것 중 하나는 수상 인형극입니다. 이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베트남에만 있는 놀이고, 본고장은 하노이라고 합니다. 옛날 더운 날에 잠을 이루지 못하던 농부들이 연못에서 즉흥 인형극을 벌였던 게 지금까지 이어져 멋진 공연으로 자리 잡은 것이지요. 요즘엔 수상 인형 극장이 따로 있답니다. 극장 안에 들어가면 관객석 앞에 어른 허리 높이만큼 물이 채워진 무대가 있고, 그 옆의 누각에는 악사와 가수들이 앉아 있게 됩니다. 인형을 조종하는 배우들은 무대 뒤에 숨어서 긴 대나무로 물속에 숨겨 놓은 끈을 움직이죠. 가수들이 부르는 노래와 음악, 인형의 움직임이 합쳐져서 흥겹고 재미난 인형극이 되는 겁니다. 수상 인형극의 줄거리는 농사짓고 고기 잡는 옛날이야기입니다. 

 

베트남도 우리나라처럼 아들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화입니다. 나중에 아들이 제사를 모시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어떻게 하든 아들을 낳기 위해 노력을 했답니다. 딸을 낳으면 ‘시집을 가면 그만인 계집애’란 취급을 받으며 엄청 구박을 받게 되지요.

 

베트남의 전통 의복은 ‘아오자이’입니다.  그리고 베트남의 설날은 ‘뗏’이지요. 그때는 3일간 연휴를 보냅니다. 뗏에 아오자이를 입고 즐깁니다. 베트남의 각 가정은 뗏 두 달 전부터 완전히 잔치 분위기가 됩니다. 집안을 깨끗이 청소하고 페인트도 새로 칠하고, 음식 만들고 선물 사기에 아주 바쁘답니다. 또한 사이가 나빴던 사람이 있으면 뗏 전에 잘 풀고 빗도 몽땅 갚고 새 출발을 준비해야 하는 거랍니다. 

 

옹따오는 남신 두 분과 여신 한 분, 이렇게 셋이 한 팀입니다. 집집마다 부엌에 살면서 그 집 사람들을 돌보는 수호신이랍니다. 음력 12월 23일이면 옥황상제를 만나러 하늘로 올라간답니다. 기다란 두루마리에 그 집 사람들이 일 년 동안 한 착한 일, 나쁜 일을 속속들이 다 적어 가서 옥황상제에게 고하는 신들이지요. 그래서 베트남 사람들은 옹따오가 떠나기 전에 잘 다녀오시라고 제사를 지냅니다. 일 년 동안 잘못한 게 많은 집은 맛있는 음식을 잔뜩 차려서 옹따오를 잘 구워삶아야 나쁜 짓 한 것을 숨겨준다고 하네요. 이런 이야기는 코미디 프로그램에 자주 나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베트남의 대표 음식은 뭐니 뭐니 해도 퍼보와 짜조지입니다. 퍼보(쇠고기 쌀국수)와 짜조(튀김 만두)는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음식이랍니다. 퍼보는 쇠고기 국물에 쌀국수를 만 건데, 아침 식사로 아주 훌륭하지요. 쇠국기 국물을 진하게 내려면 오래 끓이고 정성을 많이 들여야 하거든요. 그래서 집에서는 잘 안 하고 주로 밖에서 사 먹는 편입니다. 또 남부 지역은 더워서 오래 불 피우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하기도 합니다. 쌀국수는 원래 중국에서 들어와 북부에서 먼저 먹기 시작했다고 하는데요. 북부는 추우니까 쌀국수 냄비를 가운데 두고 식구들이 빙 둘러앉아서 먹는다고 합니다. 더운 남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요. 

짜조는 묽은 쌀가루 반죽을 얇게 펴서 구운 빤짱에 돼지고기와 버섯 같은 채소를 말아 튀겨서 느억맘에 찍어 먹는 겁니다. 아주 고소하고 맛있다고 합니다. 느억맘은 생선 액젓인데, 음식에 양념으로 넣기도 하고 소스로 쓰기도 합니다. 

 

베트남 음식 이야기를 할 때 진짜 빼놓으면 안 되는 음식이 있답니다. 설날인 뗏 음식으로 절대 빠질 수 없는 것이반쯩과 빤자이라는 떡이지요. 빤쯩은 찹쌀 속에 녹두와 돼지고기를 넣고 라종 잎으로 꽁꽁 싸서 찐 겁니다. 쌀 때는 반드시 대나무 줄기로 묶어야 하지요. 차게 식혀서 며칠을 두고 먹어도 좋고, 튀겨 먹어도 맛있습니다. 그리고 빤자이는 찹쌀을 찧어 둥글게 만든 떡이죠. 이 두 떡은 베트남 역사와 전설이 담긴 음식이라 더욱 특별합니다. 

 

옛날 흥 왕에게 22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모두 무예가 뛰어나고 지혜로웠답니다. 흥 왕은 22명 중에서 한 아들을 가려 다음 왕으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했고, 아들들에게 다음 제사에 올릴 수 있도록 ‘세상에서 가장 진귀한 것’을 한 가지씩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아들들은 모두 아버지 마음에 들고 싶어서 신과 들, 강으로 진귀한 것을 찾으러 떠났대요. 한편 18번째 아들 리에우는 농사짓는 것을 좋아해서 시골에 가서 농사를 짓고 살았는데, 리에우는 자기가 농사지은 쌀을 바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늘과 땅, 마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농사를 열심히 지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리에우 꿈속에서 선녀가 찾아와 일러 줬답니다. 하늘과 땅은 세상에서 가장 크고 넓은 것이고, 그 사이에 가장 귀한 것을 쌀이라고요. 그 귀한 쌀로 떡을 만들되, 하늘을 닮도록 희고 둥글게, 하나는 땅을 닮도록 푸르고 네모지게 만들라고요. 그리고 땅을 닮은 떡에는 땅에 사는 짐승 고기와 곡식의 대표인 콩을 넣으라고 말해 주었답니다. 꿈에서 깨어난 리에우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찹쌀과 녹두를 찧고 돼지를 잡아 푸른색 라종 잎에 싸서 떡을 쪘습니다. 물론 희고 둥근 떡도 쪘지요. 

리에우가 정성스럽게 만든 떡을 아버지께 바치니, 흥 왕은 크게 기뻐하며 리에우를 다음 왕으로 삼았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뗏에 꼭 이 떡을 만들어 제사를 지냅니다. 둥글고 흰 떡이 빤자이고, 네모지고 푸른 떡이 빤쯩입니다. 

베트남은 인구의 85퍼센트가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베트남 땅의 70퍼센트가 산이라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은 흥 강과 끄우룽 강 평야 두 곳에 집중되어 있지요. 그래서 기름지고 넓은 땅을 무척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베트남 사람들은 모두가 용의 후손이라고 생각합니다. 옛날에 중국에서 용 한 마리가 남쪽으로 놀러 내려왔다가 아름다운 땅을 발견하고는 인간으로 변해 바닷속 용궁으로 갔다고 합니다. 용궁에서 만난 공주와 결혼해서 용왕이 되고, 아들을 낳아 라롱끄안(락)이라고 이름을 지었어요. 락은 백성들에게 밭 갈고 씨 뿌리는 농사법, 음식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 주며 나라를 일구었습니다. 락은 나라를 침략해 왔던 라이 황제의 딸 아우끼 공주와 결혼했습니다. 훗날 공주는 알이 100개나 든 알 주머니를 낳았는데, 그 알에서 아들 100명이 태어났답니다. 그중 절반인 아들 50명은 아버지를 따라 바다로 가고, 나머지 아들 50명은 어머니를 따라 산속으로 들어가 살았는데, 이 사람들이 비엣(베트남)족이 된 거랍니다. 그래서 베트남 사람들은 모두 용의 후손으로 다들 친척이라고 생각합니다. 베트람이라는 이름도 여기서 비롯된 겁니다. ‘중국의 남쪽에 있는 비엣 족의 나라’라는 뜻이죠. 

 

베트남의 간단한 역사

베트남은 기원전 2세기부터 약 천 년간 중국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중국 당나라 시대에는 베트남 지역을 ‘평화로운 남쪽’이라는 뜻으로 ‘안남(安南)’이라고 불렀어요. 당나라가 멸망해서 중국이 큰 혼란에 빠졌을 때, 베트남은 독립해서 최초의 국가를 세웠습니다. 다시 중국 명나라의 지배를 받기도 했지만, 결국 명나라 군대를 몰아내고 독립을 되찾아, ‘레 왕조’를 세웠습니다. 레 왕조는 수백 년 동안 계속되며 중국을 본보기 삼아 도시를 세우고 유교를 권장했답니다.

 

레 왕조가 멸망하고 다음에 일어난 응웬 왕조는 프랑스 선교사들이 전파한 천주교의 세력이 커지자 천주교 성직자와 신도를 탄압했습니다. 프랑스는 그 일을 빌미로 군사 침략을 하고 말았습니다. 프랑스는 베트남 남부 지역을 식민지로 삼아 야금야금 전 영토를 빼앗았습니다. 베트남 사람들은 외국의 침략과 지배에 숨죽이고 살고 있지만은 않았지요. 1920년대 들어 베트남 민족주의 운동이 일어나면서, 오랫동안 지배를 받아 왔던 중국의 영향에서 벗어나 진정한 독립을 이루자면서 한자어를 버리고 로마자로 베트남 어를 표기하기 시작했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베트남의 남부 지방은 프랑스가 차지하다시피 하는 상황이 됐어요. 북부 지방은 호치민이 세운 공산당 ‘베트민(베트남 독립 동맹)’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 이후 프랑스와의 전쟁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 이어졌습니다. 베트남 민족은 베트민을 중심으로 뭉쳐서 끝까지 싸워 프랑스를 몰아내고, 프랑스의 바통을 이은 미국까지 이겨냈지요. 

 

드디어 1975년, 남북을 모두 아우르는 통일을 이루고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을 세웠습니다. 베트남이 프랑스에 맞서 싸운 기간은 모두 합해 80년, 미국에 맞서 싸운 기간은 20년이었습니다. 베트남 사람들은 기나긴 전쟁을 하면서도 지쳐 포기하거나 실망하지 않고 끝내 자신의 나라를 지켜 냈다는 데 자부심이 강하답니다. 

 

호치민은 베트남 통일의 아버지이자, 나라의 아버지로 존경받습니다. 1890년에 유학자의 아들로 태어나, 18살에 농민 봉기에 참여했다가 퇴학당하고 외국으로 나가 30년이 넘는 시간을 망명자로 지냈지요. 선원, 청소부, 하인 같은 밑바닥 일을 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의 아픔을 함께 느끼며 평생을 검소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프랑스에서 베트남 독립운동을 하다가 쫓기게 되자 유럽, 소련, 중국과 태국을 떠돌며 독립 운동을 이어 나갔습니다. 그 사이 베트남에는 일본군이 밀려오고, 중국과 영국, 프랑스가 달려와 탐욕스럽게 나라를 빼앗으려고 했어요.

호치민은 베트남으로 돌아와 베트민을 세우고 베트남 국민을 이끌었습니다. 강인하면서도 지혜롭고, 청렴하고, 자애롭게 국민을 이끌어 결국 자랑스러운 독립을 이루었지요. 그런데 호치민은 진짜 이름이 아닙니다. 독립 운동을 할 때 워낙 자신의 신분을 숨겨야 하니까 가명을 많이 썼는데, 호치민도 그중 하나입니다. 호치민의 진짜 이름은 응웬신꿍이랍니다.

 

하부르타식 질문의 예:

하노이와 호치민은 어떤 점에서 다를까요?

베트남 사람들은 왜 호치민을 존경할까요?

베트남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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