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망치가 있다면 어떨까요? 보물 망치는 정말 있는 것일까요? 누구나 한 번쯤 뭐든지 원하는 것이면 척척 들어주는 도깨비방망이 같은 것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봤을 겁니다.
[보물 망치]는 북한 작가의 김영삼의 작품으로, 그런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는 망치가 나옵니다. 일명 ‘보물 망치’라고 불리는 망치인데 특이하게도 이 망치는 일을 해야만 소원을 들어주지요. 글쓴이는 이런 망치 이야기를 통해 일하며 사는 삶의 소중함과 기쁨을 일깨우고 우리에게 있어 진짜 보물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게 한 것이지요. 이야기를 읽고 우리가 살면서 진짜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옛날 옛적 어느 오붓한 산골 마을에 자그마한 야장간(대장간) 하나가 있었습니다. 허연 수염을 가슴 앞에까지 길게 드리운 늙은 할아버지가 귀동이라는 어린 손자애를 데리고 이 야장간에서 부지런히 일하며 살아가고 있었어요. 이들에게는 보물 망치라고 부르는 야장 망치가 하나 있었는데요. 그것은 무엇이나 바라는 대로 척척 내놓아 주는 매우 신기한 망치였답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부엌 구석에 아무렇게나 내버려 두고, 간혹 가다가 호미 자루를 박거나 감자밭 가운데 드러난 큰 돌을 깰 때에나 드문드문 쓰던 보통 망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해 장마통에 지주한테 소작으로 얻어 부치던 감자밭과 함게 귀동이네 집과 가장 집물 모두가 물에 다 떠내려가고 재산이란 그 망치 하나밖에 남지 않게 되었지요. 그래서 귀동이 할아버지는 그 망치로 야장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부터 귀동이네 집에서는 ‘땡그랑땡그랑 땡’ 벼림질 소리가 봄, 여름, 가을 내내 울려 나왔어요. 할아버지는 망치질을 하고 귀둥이는 물무질을 했지요. 이렇게 일할 때면 귀동이에게는 한 가지 걱정거리가 있었는데 그것은 온종일 힘들게 일하는 할아버지에게 하루에 저녁 한 끼도 온전히 대접하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봄날 저녁이었어요. 앞산에 가서 메꽃 싹 몇 뿌리를 캔 귀동이가 방금 야장간에 들어서면서 ‘호’하고 한숨을 내쉬는데 어디선가 “너무 걱정 말어.”하는 말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래서 귀동이가 “걱정 말라는 건 누구냐? 남의 사정 알지도 못하면서 ….” 하고 중얼거리자 “나 야장 망치야.”하는 말소리가 또다시 들렸어요. “뭐, 야장 망치? 네가 사람을 놀리는 게 아니냐?” “글쎄, 집 안에 들어가 보렴. 내가 너를 놀리나.” 귀동이는 야장 망치의 말이 믿어지지는 않았으나 정말 그래 줬으면 하는 생각을 안고 야장간 안쪽에 붙어 있는 방 안에 들어가 보았답니다.
그랬더니 정말 집 안에는 삶은 감자를 가득히 담은 밥사발과 발그레한 물이 우러나 있는 갓 김치 등 여러 가지 음식이 차려져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야! 감자, 감자가 생겼어요, 할아버지!” 귀동이는 너무 기뻐 소리치며 그 감자가 든 사발을 들고 할아버지에게 달려 나갔습니다. 귀동이의 이야기를 들은 할아버지는 “허허, 그 망치가 뒤동이의 마음을 알아줬구나.” 하고 기뻐하였어요. 그리하여 할아버지와 귀동이는 감자를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이런 일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럴수록 할아버지는 그 야장 망치로 더 부지런히 일을 하였지요.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고 이 소문은 한 입 건너 두 입 건너 지주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지주는 어떻게 해야 그 야장 망치를 빼앗아 벼락부자가 될까 하고 밤새 궁리를 짜냈어요. 그러던 끝에 지주는 소작으로 주었다 장마통에 떠내려간 그 감자밭 값이라고 하면서 야장 망치를 빼앗아 갔습니다.
그 날 밤 지주는 그 망치를 앞에 놓고 “호호, 그새 가난뱅이네 집에서는 고생이 많았구나. 이제부터 너를 비단 이불에 앉혀 놓고 호강을 시켜 줄 테니 오늘은 저 돈궤에 금덩이나 한가득 채워다오.” 하고 희떠운(마음에 없는) 소리를 하였습니다.
그러자 망치는 휙 소리를 내면서 한 길이나 떠오르더니 지주의 돈궤를 지끈지끈 내리찧어 납작하게 만들어 놓았어요. 그 바람에 하도 기가 막혀 문이 뒤집힌 지주가 쭈그러진 금고를 덥적 그러안자 야장 망치는 다시 그의 넓적한 잔등이며 뒤통수를 사정없이 내리 찧었습니다. 그러고는 뻘건 불덩어리가 되어 이쪽저쪽 윙윙 날아다니며 지주의 집을 불태워 버렸지요.
그런 상황도 모르고 귀동이네는 억울하게 빼앗긴 야장 망치를 애타게 기다리며 온밤 잠들지 못하고 있었어요. 빼앗겼던 야장 망치가 어느새 머리맡에 와 놓여 있었습니다. “아니, 우리 야장 망치가 돌아왔구나.” 할아버지는 너무 기뻐 야장 망치를 가슴에 꼭 껴안고 어쩔 줄 몰랐답니다. 귀동이는 “야! 망치!”하고 발을 동동 구르며 좋아했습니다. 할아버지는 벼림질한 차비를 하고 야장간으로 나갔어요. 되돌아온 야장 망치는 또다시 매일같이 농쟁기를 벼리며 귀동이네가 바라는 것이라면 그 무엇이든 제때에 내놓아 주었지요. 이때부터 그들은 이 망치를 보물 망치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귀동이는 세상에서 제일 귀한 것은 바로 이 보물 망치라고 늘 생각해 왔어요. 그런데 웬일인지 할아버지는 보물 망치도 귀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세상에서 제일 귀한 것은 일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귀동이는 할아버지를 도와 풀무질하던 손을 멈추고 머루알 같은 눈을 깜빡거리며 “아니, 일이 보물 망치보다두요?”하고 묻곤 했어요. 그러면 할아버지는 일을 하면서 억세어진 손으로 허연 수염을 내리쓸면서 “허허, 그렇게 묻는 걸 보니 우리 귀동이가 철이 들자면 아직 장독 몇 개는 더 비워야겠구나.”하고 벙글써 웃곤 하였습니다.
하지만 귀동이는 할아버지의 그 말만은 믿을 수가 없었어요. 아무려면 뙤약볕 내리쬐는 무더운 여름에도 뜨거운 불 앞에서 땀방울을 뚝뚝 떨구며 해야 하는 일, 눈이 강산같이 내려 쌓이는 겨울에도 야장간에 쓸 나무를 해 오느라 눈 판을 헤쳐야 하는 일이 보물 망치보다 더 귀하다니? 귀동이는 먹을 것을 다 내놔 주는 보물 망치가 있는데 뭣 때문에 할아버지는 하루도 쉬지 않고 일만 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는 동안 세월이 흘러 귀동이가 열여덟 살 되는 해에 나이 많아진 그의 할아버지는 “보물 망치를 귀중히 돌봐라. 보물 망치는 소리를 먹고사는데 굶겨서는 안 되느니라!”하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영영 세상을 떠났습니다.
할아버지가 세상을 따난 날 이후, 이틑날부터 귀동이의 일손은 점점 떠지기 시작했어요. ‘보물 망치가 있는데 그렇게까지 힘들게 일은 해서 뭣 하겠는가.’라는 생각이었기 때문이죠. 그리하여 봄이건 가을이건 쉼 없이 들리던 “땡그랑 땡 땡그랑 땡”하는 벼림질 소리는 이틀에 한 번 사흘에 한 번씩 사흘에 한 번씩 들리다가 얼마 후부터는 영영 끊어지고 말았답니다. 야장간에서는 그 대신 “밥 나오라,” “옷 나오라”하는 소리만 점점 잦게 들려 나왔습니다.
이런 식으로 석달 열흘이 지난 어느 날이었어요. 밤늦도록 마을돌이만 하다가 새벽에야 집에 돌아와 잠들었던 귀동이는 대낮이 되어서야 눈을 비비며 깨어났습니다. 그러고는 두 팔을 올려 뻗치고 기지개를 하며 아직 잠에 취한 목소리로, “나의 쥐중한 보물 망치야. 몸이 지긋지긋하고 속이 답답하니 꿀물이나 한 사발 풀어 주려무나.”라고 말했어요. 그런데 어떤 영문인지 보물 망치는 꿀물은커녕 맹물 한 사발도 한 주었답니다.
귀동이는 보물 망치가 잘 듣지 못해서 그러는 줄 알고 이번에는 좀 더 큰 목소리로 말하였습니다. “나의 귀중한 보물 망치야. 밥 먹을 때가 퍽이나 지났으니 제꺽 기장밥이나 한 사발 듬뿍 차려 주려무나.” 하지만 이번에는 무슨 영문인지 보물 망치는 기장밥은커녕 강냉이죽 한 사발도 차려주지 않았어요. 그 이틑날도 또 그다음 날도 보물 망치는 여전히 아무것도 내놔 주지 않았습니다. 문득 보물 망치가 소리를 먹고 산다던 할아버지의 말이 퍼뜩 떠올렸습니다.
귀동이 자신은 한 끼를 못 먹어도 죽을 지경인데 보물 망치는 백날이나 굶었으니 오죽할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보물 망치에게 어떤 소리라도 먹어야 하겠다는 마음을 먹었어요. 할아버지가 있을 때 제일 많이 들렸던 소리가 어떤 소리였던가를 곰곰이 생각했지요. 할아버지는 흥얼흥얼 노래를 잘하면서 풀무질을 했었지요. 할아버지가 야장질 할 때 늘 하던 노래를 시작하면서 풀무질을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귀동이의 눈앞에서는 참 신기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보물 망치가 귀동이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것이었어요. 망치 이쪽 끝이 들썩 저쪽 끝이 들썩 어깨춤을 추는가 하면, 망치 자루는 쿵다닥 쿵다닥 외다리 장단을 쳤어요. 귀동이가 흥타령을 하면서 보물 망치에게 뭐든 좋으니 먹을 것 한 그릇을 내놓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그의 앞에는 난데없는 밥사발 하나가 뎅그렁 나타났지요. 귀둥이는 얼른 밥사발 뚜껑을 열었어요. 하지만 그것은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사발이었습니다. 참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귀동이는 사발 뚜껑을 도로 덮고 할아버지가 보물 망치에게 이야기를 했던 것을 기억해 내고, 더듬더듬 이야기를 해 주었어요. 거의 열 번이나 곱씹어 망치에게 들려주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보물 망치에게 먹을 것을 내놓으라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구수한 밥 냄새가 물씬 풍겨왔습니다. 밥사발 뚜껑을 열어보니 흰 김만 날 뿐 여전히 비어 있었지요. 아마도 시간이 좀 걸려야 되는가 부다 하고 생각한 귀동이는 밥사발 뚜껑을 덮어 놓고 좀 기다렸다가 다시 열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밥 냄새조차 나지 않았답니다.
순간 귀동이는 자기가 보물 망치의 놀림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어 대번에 볼이 부어올라 투덜거렸습니다. 이 소리 저 소리가 다 싫으면 어떻게 하란 거냐며, 귀동이는 호미와 낫가락 무더기 위에 보물 망치를 휙 내던지고 말았어요. 보물 망치가 땡그랑 소리를 내며 무딘 농쟁기 무지 위해 나떨어졌습니다. 그런데 이때 바로 그 구석 쪽에서 난데없이 “아이, 고마워. 한 번 더요.”하는 말소리가 들려왔어요. 귀동이는 너무도 놀라워 그쪽으로 다가가 호미, 낫 무지를 헤쳐 보았으나 아무도 없었습니다. 마당에 나가 여기저기 둘러보았지만 그 말소리가 어디서 나는지 몰랐어요.
귀동이는 농쟁기 무지 앞에 다시 돌아와 방금 전에 있었던 일을 처음부터 더듬어 보았습니다. 할아버지가 벼림질을 할 때 땡그랑 소리를 시작하던 것을 생각해 내면서 자신도 땡그랑땡그랑 소리를 내면서 두드렸습니다. 소리가 연거푸 올리자 보물 망치가 “고마워, 고마워, 고마워….”하고 소리를 받아 주었습니다. 하지만 왜 그런지 고마워하는 소리가 맥이 없게 들렸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힘을 주어 두드려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댕그랑 소리는 한결 귀맛 좋게 울리고. 고마워하는 소리도 퍽 쟁쟁하게 들렸어요. 하지만 아직 그 소리는 어딘가 설익은 데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할아버지가 있을 때 하던 일을 다시 곰곰이 생각하던 귀동이는 풀무 소리를 빠뜨렸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귀동이는 할아버지가 하던 것처럼 풀무를 돌려 숯불을 피우고 거기에 무딘 호비, 낫을 넣어 빨갛게 달구어 냈습니다. 그런 다음 그것을 모루쇠 위에 놓고 아까보다 더 힘을 내어 장단까지 맞춰 가며 두드리기 시작했어요. “땡그랑 뗑, 땡그랑 뗑….” “고마워, 고마워, 고마워….” 가락에 맞춰 번갈아 울리는 여주진 소리에 맞춰 귀동이도 흥얼흥얼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러니 호미 날이나 낫날이 번쩍 만들어졌습니다.
그날 저녁이었어요. 귀동이가 냇물에 나가 시원하게 세수를 하고 집 안에 척 들어서니 어느새 구들 아랫목 밥상 위에 흰 김이 문문 피어나는 쌀밥과 따근한 생선국이 차려져 있었습니다. 보물 망치가 차려 준 저녁상이었습니다. 귀동이는 너무 기뻐 보물 망치를 가슴에 껴안고 거기에 자기의 볼을 꼭 갖다 대었습니다.
그 다음 날부터 귀동이의 일손에선 더욱 성수가 났습니다. 야장간에서는 온종일 흥겨운 노랫소리, 살뜰하고 정다운 말소리, 땡그랑 땡 장단 소리가 그치지 않았고, 샇여 있던 무딘 호미, 낫은 전부 새 호미, 낫이 되어 밭으로 나갔습니다. 이렇게 되어 귀동이는 보물 망치에게 날마다 흥겨운 소리를 푸짐히 먹이고, 보물 망치는 귀동이가 바라는 모든 것을 제때에 내놔 주곤 하였답니다.
그 후부터 동네 아이들이 찾아와 “아저씨는 신기한 보물 망치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홰 힘들게 일만 하나요?” 하고 물으면 귀동이는 빙그레 웃으면서 늘 이렇게 말한답니다. “일을 해야 보물 망치가 제 구실을 한단다. 그러니 일이 진짜 보물이지!”
하부르타식 질문의 예:
- 귀동이가 노래를 부르며 일하는 것을 상상해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 할아버지는 ‘보물 망치는 소리를 먹고 산다.’고 했어요. 할아버지가 말한 소리란 어떤 소리였을까요?
- 보물 망치는 왜 일하지 않고 게으름만 피우는 귀동이를 혼내 주지 않았을까요?
- 보물 망치는 왜 귀동이에게 저녁상을 차려 주었을까요?
- 귀동이는 신기한 보물 망치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왜 힘들게 일만 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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