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 땅은 얼마나 필요할까?]의 저자 톨스토이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묻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에게 돈은 얼마나 필요할까? 또 옷과 집과 음식은 얼마나 많이 필요한 것일까? 갖고 싶은 것은 한이 없는데,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정해져 있습니다. 하루 동안 더 많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 죽도록 걸었던 빠홈의 모습은 아등바등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대변하는 것 같습니다. 이처럼 19세기의 러시아 작가 톨스토이는 이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삶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요.
빠홈은 왜 죽었을까요? 이야기를 읽으면서 삶의 바람직한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1.
도시에 사는 언니가 시골 동생네 집에 놀러 왔습니다. 언니는 도시 상인과 결혼했고 동생은 시골 농부와 결혼했습니다. 자매는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어요. 언니는 도시 생활이 시골 생활보다 훨씬 낫다며 자랑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도시 생활이 얼마나 편한지, 아이들은 얼마나 좋은 옷을 입으며, 맛있는 음식은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스케이트도 타고 파티에 잠석도 하고 극장 구경도 다닌다고 자랑을 늘어놓았습니다.
이 말을 듣고 동생은 화가 났어요. 그래서 장사꾼의 아내보다 농부의 아내로 사는 게 얼마나 좋은지 이야기했습니다. “나는 내 생활과 언니 생활을 바꾸라고 해도 절대 바꾸지 않을 거예요. 시골에서 사는 것이 좀 재미없기는 하지만 적어도 걱정거리는 없잖아요. 언니네는 호화롭게 살기는 하지만 그만큼 열심히 벌어야지 안 그러면 금방 바닥이 나잖아요. 왜 ‘손해는 이익의 형님’이란 말도 있잖아요. 도시에 살다 보면 부자가 하루아침에 망하는 일도 만다던데요. 이런 시골에는 그런 일은 없어요. 농사꾼이 아주 부유할 수는 없지만 늘 한결같죠. 부자는 못 되더라도 굶을 일은 없다고요.”
그러자 언니가 말했어요. “더러운 소, 돼지와 살면서 먹을 것만 충분하면 되니? 하긴 멋진 옷과 우아함에 대해 네가 뭘 알겠니? 네 남편이 아무리 뼈 빠지게 일해도 너는 구정물 속에서 살다가 구정물 속에서 죽을 텐데. 네 자식들도 마찬가지고.” “그게 어때서요? 이곳에선 다를 그렇게 사는데요. 적어도 우리는 분수는 알고 살아요. 우리는 누구에게 굽실거릴 필요도 없고 겁낼 사람도 없어요. 하지만 도시는 온갖 유혹들로 가득 차 있잖아요. 모든 게 다 잘되다가도 어느 날 악마가 다가와 형부를 유혹해 노름이나 여자나 술독에 빠지게 할지도 몰라요. 그러면 모든 게 끝장이죠. 실제로 그런 일이 종종 일어나잖아요?”
동생의 남편인 빠홈이 난롯가에서 자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끼어들었습니다. “그건 당신 말이 맞아. 나를 보라구. 난 어렸을 때부터 농사짓느라 너무 바빠서 그런 쓸데없는 것들은 생각조차 할 틈도 없었어. 그저 바람이 하나 있다면 땅을 넉넉히 갖고 싶은 것뿐이지. 땅만 넉넉하게 갖게 된다면 세상에 겁날 게 없어. 악마도 겁 안 난다고.”자매는 차를 다 마시고도 옷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식탁을 치우고 잠자리에 들었어요.
그런데 빠홈이 말한 악마가 난로 뒤에 앉아 이 이야기를 듣고 있었답니다. 악마는, 빠홈이 땅만 넉넉히 갖게 되면 세상 누구도 심지어 자기도 겁나지 않는다고 떠벌리는 것을 듣고 몹시 기뻐했지요. ‘좋았어. 네놈과 어디 한번 내기를 해 볼까. 네놈이 그토록 갖고 싶어 하는 땅을 이용해서 말야. 누가 이기나 두고 보자.’
2. 마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한 부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부인은 삼백 에이커 정도의 땅을 갖고 있었는데, 자신의 땅을 빌려 농사짓는 마을 사람들을 잘 대해 주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군대에서 제대한 군인이 부인의 토지 관리인으로 들어왔습니다. 그 사람은 마을 사람들에게 걸핏하면 벌금을 물리며 사람들을 괴롭혔어요. 빠홈도 아주 조심했지만 빠홈의 말과 소들이 그 땅에 들어가 엉망으로 만들어 놓곤 했기 때문에 그때마다 빠홈은 벌금을 내야 했지요. 벌금을 물고 돌아온 날이면 빠홈은 가족들에게 화풀이를 하곤 했습니다.
그해 여름 내내 빠홈은 그 관리인에게 잔소리를 들어야 했어요. 그래서 가축들을 우리에 넣어 두는 겨울이 오히려 반가웠습니다. 가축들에게 먹일 꼴은 아까웠지만 가축들이 아무 데나 들어갈까 봐 걱정할 필요는 없었으니까요. 그해 겨울에 땅 주인인 부인이 땅을 팔려고 내놓았는데, 큰 길가에 있는 여관 주인이 그 땅을 사려고 한다는 소문이 들왔어요. 마을 사람들이 이 소문을 듣고 마음이 편하지가 않았습니다. “여관 주인이 그 땅을 사면 지금 있는 관리인보다 훨씬 더 많은 벌금을 물릴 거야. 우리는 모두 그 땅으로 먹고 사니까. 그 땅 없이는 살 수 없는데.”
마을 사람들은 부인을 찾아가 더 좋은 값을 줄 테니 그 땅을 자기들에게 팔라고 사정했습니다. 부인은 그렇게 하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마을 사람 몇 명이 모여 마을 조합의 이름으로 그 땅을 사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의견을 모을 수가 없었어요. 다시 한 번 모여서 회의를 했지만 역시 마찬가지였지요. 악마가 마을 사람들을 서로 다투게 만들었기 때문에 도무지 의견을 모을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마을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각자 형편에 따라 땅을 나누어 사기로 결심했습니다. 부인은 이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빠홈은 이웃 사람이 그 부인에게서 50 에이커의 땅을 사면서 땅값의 절반만 주고 나머지는 일 년 후에 갚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어요. 그러자 빠홈은 몹시 샘이 났지요. ‘다른 사람들이 이 땅을 몽땅 사 버리겠어. 그러면 내 몫은 하나도 남지 않잖아.’ 빠홈은 이 문제를 아내와 상의했습니다. “다른 땅을 사들이고 있는데 우리도 20 에이커 정도는 사 둬야겠소. 안 그러면 그놈의 관리인이 벌금을 물릴 테니 그러면 우리는 도저히 살아갈 수가 없을 것이오.” 빠홈과 아내는 어떻게 하면 땅을 살 수 있을지 궁리했습니다.
그들에게는 그동안 푼푼이 모아온 100 루블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땅을 사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지요. 그래서 당나귀 한 마리와 집에서 치던 꿀벌의 반을 팔았습니다. 그리고 아들 하나를 몇 달치 월급을 미리 받고 남의 집 일꾼으로 보냈어요. 그러고도 모자라 아내의 언니에게 얼마간의 돈을 빌리고 나서야 겨우 땅값의 절반을 모을 수 있었습니다. 빠홈은 숲이 있는 땅으로 30 에이커를 고른 뒤 땅 주인에게 갔어요. 빠홈은 계약금을 지불하고 땅문서에 서명했습니다. 빠홈은 땅값의 반을 내고 나머지는 이 년 내에 갚기로 약속했답니다.
이렇게 해서 빠홈도 이제 땅을 갖게 되었습니다. 빠홈은 얼마간의 돈을 빌려 씨앗을 산 뒤 새로 산 땅에 씨를 뿌렸습니다. 농사는 풍년이었지요. 일 년 만에 빠홈은 나머지 땅값도 모두 갚고 아내의 언니에게 빌린 돈도 갚았습니다. 빠홈은 이제 진짜 땅 주인이 된 것입니다. 빠홈은 남의 땅이 아닌 자기 땅을 갈아 씨를 뿌렸고, 자기 땅에서 자란 풀을 베어 가축들에게 먹였으며, 자기 땅에서 자란 나무를 땔감으로 베었고, 자기 땅에 가축들을 풀어놓았습니다. 이제는 영원히 자기 것이 된 땅을 길러 나오거나 어린 옥수수의 풀이 얼마나 자랐는지 살펴보러 나올 때마다 빠홈의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 찼답니다. 자기 땅에서 자란 풀과 꽃들은 왠지 다른 풀이나 꽃과는 다르게 느껴졌지요. 전에는 그 땅이 다른 땅과 똑같은 것 같았는데 이제는 뭔가 특별한 것 같았습니다.
3.
땅을 가진 빠홈은 행복했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다 잘 되어 갔지만 단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지요. 이웃 사람들이 자신의 옥수수 밭과 풀밭을 지나다니는 것이었습니다. 빠홈은 사람들에게 아주 점잖게 말했지만 사람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어요. 사람들이 빠홈의 풀밭에 소를 풀어놓는가 하면 풀을 뜯다가 밤늦게 집에 돌아가는 말들이 빠홈의 옥수수 밭에서 헤매기도 했지요. 빠홈은 자신의 밭에 들어온 가축들을 몰아내기만 할 뿐 고소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이 계속되자 빠홈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법원에 고소를 했지요. 빠홈도 사람들이 땅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지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계속 이대로 놔둘 수는 없어. 저 사람들이 내 땅을 모두 망가뜨리기 전에 혼을 내줘야 해.’ 빠홈은 몇몇 사람을 고소하고 여러 사람에게 벌금을 물렸습니다. 화가 난 이웃 사람들은 일부러 가축들을 빠홈의 땅에 풀어놓았어요. 그리고 어느 날 밤, 누군가가 빠홈의 숲에 들어와 아직 다 자라지도 않은 보리수나무를 베어 껍질을 벗겨 갔습니다. 다음 날 빠홈이 숲을 산책하는데 땅 위에서 뭔가 하얀 것이 눈에 띄었어요. 가까이 가 보니 나무줄기들이 껍질이 벗겨진 채 사방에 널려 있고 잘린 나무도 많았습니다. “어떤 놈의 짓인지 알면 가만두지 않을 테다.” 빠홈은 화가 끓어올랐어요. 빠홈은 누구의 짓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셈까의 짓이 틀림없어. 그 녀석 말고는 이런 짓을 할 사람이 없어.”
빠홈은 셈까의 집으로 증거를 찾으러 갔어요. 그러나 아무것도 찾지 못한 채 말다툼만 하고 돌아왔지요. 빠홈은 이제 더욱더 셈까의 짓이라는 생각이 들어 셈까를 고소했습니다. 재판관들은 오랫동안 그 문제를 놓고 토론을 했지만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셈까를 풀어 주었어요. 판결이 이렇게 나자 빠홈은 더욱더 화가 났지요. 빠홈은 마을 어른들과 재판관들에게 심하게 항의했습니다. “당신들 도둑과 한 패 아니요? 그렇지 않다면 저런 도둑놈을 풀어 줄 리가 없지 않소!” 이런 일이 있고 나서 빠홈은 이웃 사람들뿐만 아니라 재판관 하고도 사이가 나빠졌습니다. 이웃 사람들은 빠홈의 집에 불을 지르겠다고 위협했습니다. 빠홈은 넓은 땅을 갖고 있기는 했지만 마을 사람들에게 당하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들었어요.
그즈음 많은 농부들이 새로운 지방에 가서 살기 위해 떠난다는 소문이 들려왔습니다. 빠홈은 생각했어요. “땅을 많이 가지고 있는 내가 떠날 이유가 없지. 만약 마을 사람들이 떠나면 남은 사람들이 땅을 더 많이 차지할 수 있을 거야. 그 땅을 사들여 땅을 더 넓혀야지. 그러면 살기가 더 편해지겠지. 이제 이곳은 너무 비좁아서 마음에 들지 않아.
그러던 어느 날 지나가던 나그네가 빠홈의 집을 찾아왔습니다. 빠홈의 가족은 나그네가 하룻밤 묵어 가도록 해 주었어요. 빠홈은 나그네에게 어디서 오는 길이냐고 물었어요. 나그네는 남쪽 볼가 강 건넛마을에서 왔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고향 사람들이 그곳으로 옮겨 가 마을 조합에 가입하고 한 사람당 25 에이커의 땅을 받은 일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땅이 얼마나 기름진지 호밀을 심으면 키가 말만큼 자라고 알이 꽉 차서 다섯 줌만 가지고도 한 단을 만들 수 있을 정도랍니다. 글쎄 어떤 사람은 1 코페이카만 달랑 들고 왔는데, 지금은 말이 여섯 마리에 소가 두 마리나 된다고 해요.”
빠홈은 그 말을 듣고 가슴이 뛰었습니다. ‘다른 곳에 가서 잘 살 수 있는데 굳이 이곳에서 살 필요가 뭐가 있어. 땅과 이 작은 집을 팔면 그 돈으로 가서 큰 집을 짓고 새 농장을 시작할 수 있을 거야. 이곳은 너무 좁아서 숨도 못 쉬겠고, 점점 짜증 나. 내가 직접 가서 살 만한 곳인지 알아봐야겠어.”
여름이 되자 빠홈은 그곳으로 떠났습니다. 그곳은 나그네가 말하던 그대로였지요. 한 사람당 25 에이커의 땅을 얻어 넓게 살고 있었고, 누구나 마을 조합에 가입할 수 있었어요. 이 사실을 확인한 후 빠홈은 가을이 시작될 즈음에 고향으로 돌아와서 가진 것을 모두 팔아 그다음 봄에 가족과 함께 새로운 곳으로 떠났습니다.
4.
가족과 함께 새로운 곳에 도착한 빠홈은 마을 조합에 가입하고 마을 어른들에게 거하게 술대접을 했습니다. 빠홈은 가족 한 사람당 25 에이커씩 100 에이커의 땅을 받았어요. 가축들은 마을 공동의 풀밭에서 마음껏 풀을 뜯을 수 있었습니다. 빠홈은 건물을 짓고 가축을 사들였습니다. 받은 땅만도 고향 땅의 세 배나 되는 데다 옥수수를 기르기에 더없이 좋은 땅이었답니다. 빠홈은 이곳에 와서 예전보다 열 배는 더 잘살게 되었습니다. 경작할 만한 땅도 많아진 데다 풀밭도 넓어서 원하는 만큼 가축을 기를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처음에 건물을 짓고 이것저것 사들이느라 바쁠 때만 해도 빠홈은 모든 것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생활이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자 곧 이곳도 좁게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밀을 더 심고 싶은 욕심이 생겼던 겁니다. 그래서 다음 해는 상인들에게 일 년 동안 땅을 빌리기로 했어요. 빠홈은 아주 많은 밀을 심어 수확량도 대단했습니다. 그러나 그 땅이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밀을 수레에 실어 16킬로미터도 넘는 거리를 날라야 했지요. 그때 이웃 농부들이 커다란 농장이 딸린 집에서 부유하게 사는 것을 보았습니다. 빠홈도 그들처럼 땅을 사서 집을 짓고 싶었어요.
빠홈은 삼 년 동안 계속 땅을 빌려 밀을 심어 돈을 좀 모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빠홈은 해마다 땅을 빌리기 위해 쩔쩔매야 하는 것이 지겨웠습니다. ‘내 땅만 있다면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이렇게 골치 아픈 일도 겪지 않을 텐데.’ 빠홈은 개인이 가진 땅을 조금 살 만한 데가 없나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다 1300 에이커의 땅을 사들이느라 망해서 땅을 헐값에 팔고 있는 한 농부를 만났어요. 빠홈은 그 농부와 땅값을 흥정해 다 되어갈 무렵, 지나가던 한 상인이 말에게 먹이를 먹이려고 빠홈의 집에 들렀습니다.
그들은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상인은 멀리 바쉬끼르 마을에서 오는 길이라고 했어요. 그곳에서 상인은 단돈 1000 루블에 땅을 13000 에이커나 샀다고 말했습니다. 빠홈은 그 이야기를 더 자세히 듣고 싶었지요.
“그곳 어르신들에게 선물을 조금 했어요. 비단옷, 양탄자, 차, 보드카 등을 한 100루불어치 선물하고 1 에이커 당 20 코페이카에 땅을 샀지요.”상인은 빠홈에게 땅문서를 보여 주었습니다. “강을 끼고 있는 아름다운 초원이지요.” 빠홈은 계속해서 이야기를 더 해달라고 졸랐습니다. “그곳은 1년을 걸어도 다 돌지 못할 만큼 땅이 넓습니다. 모두 바쉬키르 사람들 땅이죠. 게다가 그곳 사람들은 양처럼 순해서 실제로 아무것도 안 주고도 땅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빠홈은 생각했어요. ‘그렇다면 1300 에이커를 사느라 1000 루블이나 내고 또 빚을 질 필요가 뭐 있어? 그 돈이면 거기 가서 얼마든지 땅을 살 수 있을 텐데.’
5.
빠홈은 상인에게 그곳으로 가는 길을 자세히 묻습니다. 그리고 상인이 떠나자마자 자기도 떠날 채비를 했어요. 아내는 집에 남겨 두고 하인 한 명만 데리고 길을 떠났습니다. 먼저 시내에 들러 상인이 일러 준 대로 차와 보드카를 비롯해 여러 가지 선물을 샀습니다. 집을 떠난 지 7일째 되는 날, 빠홈은 바쉬끼르 마을에 닿았지요. 모든 것이 상인이 말한 그대로였어요. 바쉬끼르 사람들은 강 옆 초원에서 천막을 치고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밀농사를 지으려고 땅을 갈지도 않았고 빵을 먹지도 않았지요. 가축과 말들은 초원을 떼 지어 돌아다녔고, 망아지들은 천막 뒤에 매여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하루에 두 번씩 어미 말의 우유를 짜서 쿠미스라는 술을 만들었습니다. 남자들은 쿠미스와 차를 마셨고, 아낙네들은 그 술로 치즈를 만들었어요. 하는 일이라고는 양고기를 먹고, 피리를 부는 일뿐인 것 같았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모두 여름 내내 빈둥거리며 즐겁게 살고 있었답니다.
사람들은 빠홈을 보자 천막에서 몰려나와 그를 둘러쌌습니다. 빠홈은 통역할 만한 사람을 찾아 땅 때문에 왔다고 말했어요. 사람들은 빠홈을 가장 좋은 천막으로 데리고 갔지요. 푹신한 양탄자 위에 빠홈을 앉히고는 빙 둘러앉아 그에게 차와 술과 양고기를 대접했습니다. 빠홈은 마차에서 선물을 가져다가 사람들에게 골고루 나눠 주었어요. 바쉬끼르 사람들은 무척 좋아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선물을 주었으니 원하는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감사의 표시로 주겠다고 했습니다.
빠홈은 자신이 원하는 것은 이 지역의 땅이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은 땅이 부족해 골고루 돌아가지 않는 데다가 농사를 많이 지어 거칠어졌다고 했지요. 통역을 통해 빠홈의 말을 들은 바쉬끼르 사람들은 오랫동안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들이 의논을 한 후, 통역사는 빠홈이 어디를 원하는지 손가락으로 가리키기만 하면 모두 빠홈의 땅이라고 알려 주었어요.
6. 마을 사람들이 어르신의 의견을 듣자고 하며 옥신각신하고 있을 때, 여우털 모자를 쓴 노인이 천막 안으로 들어왔어요. 그러자 모두들 입을 다물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빠홈은 즉시 자기가 가지고 온 가장 좋은 옷을 꺼내 5파운드짜리 차와 함께 노인에게 주었어요. 노인은 선물을 받더니 제일 윗자리에 가서 앉았습니다. 그러자 곧 바쉬끼르 사람들이 노인에게 뭐라고 말하기 시작했어요. 노인은 그 말을 한참 듣고 있더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빠홈에게 러시아 말로 말했습니다. “좋소, 어디든 원하는 곳을 고르시오. 땅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빠홈은 나중에 문제가 되지 않기 위해 땅을 정확히 재어 서류 같은 확실한 방법으로 자신에게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노인은 선뜻 서류를 만들어 주겠다고 했지요. 노인은 바쉬끼르 사람들이 땅을 재는 가격은 하루 동안 걷은 만큼이 1000루블이라고 했습니다. 빠홈은 깜짝 놀랐어요. 하루 동안이면 꽤나 많이 걸을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노인은 한 가지 조건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아무리 많이 걸어도 다 당신 땅입니다. 단 한 가지 조건이 있어요. 만약 하루 안에 출발했던 장소로 되돌아오지 않으면 땅은 물론 당신 돈도 못 받게 됩니다.” “하지만 제가 어디까지 갔다 왔는지 어떻게 알죠?” “우리 모두 당신이 선택한 곳에 가서 당신이 한 바퀴 돌고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 겁니다. 그러면 당신은 삽을 가지고 가서 방향을 바꿀 때마다 작은 구덩이를 파고 풀을 심어 두어야 합니다. 원하시는 만큼 얼마든지 멀리 가도 됩니다. 다만 해가 질 때까지는 반드시 출발했던 곳으로 되돌아와야 합니다. 그러면 걸어서 돌아온 만큼의 땅이 전부 당신의 것이 됩니다.”
빠홈은 무척 기뻐하며 다음 날 아침 일찍 출발하기로 약속했습니다.
7. 빠홈은 원하는 만큼의 땅을 가질 수 있을 거라는 셀레는 마음으로 밤새 한숨도 못 자다가 새벽녘이 되어서야 잠깐 선잠이 들었습니다. 빠홈은 잠이 들자마자 꿈을 꾸었어요. 꿈속에서도 지금 누워 있는 천막 속에 있었는데 누군가 밖에서 떠나갈 듯이 웃고 있었어요. 빠홈은 누군가 하고 일어나 밖으로 나가보니 바쉬끼르의 어르신이 밖에 앉아 있었습니다. 빠홈이 가까이 가 보니 그 사람은 어르신이 아니라 며칠 전에 빠홈의 집에 와서 바쉬끼르 땅 얘기를 했던 그 상인이었어요. 빠홈이 상인에게 물었어요. “여기 온 지 오래되셨습니까?” 그러자 이번에는 그 상인이 볼가 강에서 왔다는 농부로 바뀌었어요. 다시 보니, 그것은 농부가 아니라 바로 악마였습니다. 이마에 뿔이 나고 말에 발굽이 달린 악마가 자지러지게 웃고 있었어요. 그런데 악마 앞에 셔츠와 바지만 입은 어떤 남자가 맨발로 누워 있었습니다. 빠홈이 가서 자세히 들여다보자 그 남자는 바로 죽어 있는 자기 자신이었어요. 빠홈은 식은땀을 흘리며 잠에서 깨어났어요.
불길한 꿈을 꾼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빠홈은 일어나 하인에게 말을 준비하게 하고 사람들을 깨우러 갔습니다.
8.
빠홈은 삽을 들고 하인과 함께 작은 마차를 타고 동네 사람들과 함께 바쉬끼르 말로 ‘쉬칸’이라고 하는 언덕에 올라갔습니다. 어르신이 빠홈에게 다가가 손으로 땅을 가리키며 말했어요. “보시오. 저게 다 우리 땅이오. 저 앞에 보이는 땅 전부가 말이오. 아무 곳이나 마음에 드는 곳을 고르시오.” 빠홈의 눈이 번쩍하였어요. 그 땅은 전혀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땅으로 손바닥처럼 평평한 데다 기름져서 양귀비처럼 새까맣고, 습지에는 갖가지 풀들이 가슴 높이까지 자라 있었습니다. 어르신은 쓰고 있던 여우털모자를 벗어 땅에 놓았습니다. “이걸로 표시를 합시다. 여기가 출발점이니 이곳으로 다시 돌아와야 합니다. 그러면 그 땅은 모두 당신의 것입니다.”
빠홈은 돈을 꺼내 모자 위에 놓고 겉옷을 벗었습니다. 그리고 조끼 바람에 물통을 매단 허리띠를 졸라매고 빵이 든 가방을 품속에 넣고 장화를 신은 뒤, 하인에게서 삽을 받아 들었어요. 이제 떠날 준비가 되었지요. 어느 땅이든 너무 좋아서 어느 뱡향이든 가야 할지 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빠홈은 오른쪽 방향을 잡고 해가 지평선 위로 떠오르기를 기다리면서 몸을 풀었어요. 잠시라도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걷기 위해 햇빛이 지평선 위로 쏟아지기가 무섭게 삽을 어깨메 메고 초원으로 걸어갔어요. 빠홈은 빨리 걷지도 천천히 걷지도 않았습니다. 1킬로미터쯤 가서 구멍을 파고 눈에 잘 띄도록 풀을 심었어요. 다리가 풀리자 얼마쯤 더 가서 빠홈은 걸음을 멈추고 구멍을 팠습니다.
햇볕이 내리쬐자 한낮은 너무 더웠지요. 그래도 빠홈은 물도 마시지 않고 기름진 땅을 놓치기 아까워 계속 걸으면서 구덩이를 파고 풀을 심었습니다. 그런데 가면 갈수록 땅이 더 좋아지는 거예요. 날씨가 몹시 더워 점점 피곤해지기 시작했어요. 빠홈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빵과 물을 먹었습니다. 하지만 누우면 잠이 들 것 같아 눕지는 않았지요. 잠시 후 빠홈은 다시 걷기 시작했습니다. 점심을 먹고 나니 힘이 생기는 것 같았어요.
날씨는 점점 더 무더워졌고, 빠홈은 슬슬 졸리기 시작했어요. 그렇지만 빠홈은 ‘한순간의 고생으로 평생 편히 살 수 있다.’는 말을 생각하면서 계속 걸었습니다. 계속 걸으면서 푸을 심다가 보니 적어도 16킬로미터는 온 것 같았어요. 두 면을 너무 길게 잡은 것 같아 이번에는 짧게 잡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빠홈은 빠른 걸음으로 세 번째 면을 걷기 시작했어요. 해를 쳐다보니 벌써 한나절이 훨씬 지났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모퉁이를 돌아 이제 1킬로미터밖에 걷지 못했으니 출발점까지는 아직 16킬로미터는 더 가야 했습니다.
너무 욕심부리지 말고 돌아가는 길은 짧게 잡으려고 했어요. 빠홈은 서둘러 구멍을 파고 언덕을 향해 곧장 걸었습니다.
9.
돌아오는 길은 몹시 힘들었습니다. 더운 날씨 때문에 지쳐 있었고, 맨발에는 상처가 나고 힘없는 다리는 자꾸 꺾였습니다. 쉬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쉬다 보면 해질 때까지 절대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았지요. ‘너무 욕심을 내서 망친 게 아닐까? 만약 제때에 돌아가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 빠홈은 언덕을 한번 바라보고는 해를 쳐다보았어요. 언덕은 아직 멀기만 한데, 해는 지평선 가까이 가 있었습니다. 그래도 빠홈은 포기하지 않았어요. 힘들었지만 점점 더 빨리 걸었어요. 하지만 아무리 걸어도 돌아갈 길은 멀기만 했습니다. 빠홈은 뛰기 시작했습니다. 뛰면서 조끼도 장화도 물통도 모자도 다 내던져 버리고 오직 삽만 가지고 지팡이 삼아 뛰었지요.
빠홈은 계속 달렸습니다. 이미 옷은 흠뻑 젖었고 목이 탔어요. 가슴을 풀무질하듯 헐떡거렸고, 심장은 망치질하듯이 뛰었습니다. 다리는 남의 다리처럼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숨이 끊어지는 것 같았지요. 빠홈은 이러다 죽을 것 같아서 겁이 났습니다. 죽을까 봐 무서웠지만 그렇다고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 ‘여기까지 와서 포기하면 사람들이 바보라고 할 거야.’빠홈은 계속 달렸습니다. 멀리서 사람들이 빠홈에게 힘내라고 고함치는 소리가 들렸어요. 그래서 빠홈은 힘을 내어 계속 달렸어요. 그러나 해는 지평선에 거의 닿을락 말락 하고 있었습니다. 커다랗고 붉은 해와 막 지려는 참이었습니다. 출발전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어요. 이제 언덕 위의 사람들이 보였어요. 사람들은 빠홈에게 힘을 내라며 팔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돈이 놓여 있는 여우털 모자도 보였지요. 어르신이 옆구리에 손을 얹고 앉아 있는 모습도 보였어요. 그때 어젯밤 꿈이 생각났습니다.
‘땅은 많이 갖게 되었지만 하느님이 거기에서 살도록 날 살려 두실까? 아니야. 틀렸어. 해내지 못할 거야.’ 빠홈은 해를 쳐다 보았어요. 해는 이미 땅에 닿아 반은 지평선 아래로 가라앉았습니다. 빠홈은 온 힘을 다해 넘어지려는 몸을 겨우 지탱하며 비틀비틀 발을 옮겼습니다. 빠홈이 언덕에 다다랐을 때 사방이 어두워졌습니다. 해는 이미 졌습니다. 빠홈이 포기하려는 순간 사람들의 고함소리가 들렸어요. 자신은 언덕 아래에 있어 해가 진 것처럼 보였지만 언덕 위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빠홈은 숨을 깊이 들이쉬고 아직도 햇빛에 물들어 있는 언덕 위로 달렸습니다. 언덕 위에 가까이 가자 모자 옆에 앉은 어르신이 허리를 잡고 자지러지게 웃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빠홈은 다시 꿈 생각이 났어요. 빠홈은 다리가 꺾이면서 앞으로 꼬꾸라졌지만 손을 뻗어 겨우 모자를 잡았습니다. “오, 잘하셨습니다. 땅을 아주 많이 차지하셨습니다.” 어르신이 소리쳤어요.
빠홈의 하인이 달려와 그를 일으켜 세우려고 했지만 빠홈의 입에서는 피가 흘러나왔습니다. 빠홈은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바쉬끼르 사람들은 혀를 차며 빠홈의 죽음을 슬퍼했습니다. 빠홈의 하인은 삽을 들고 주인을 묻을 땅을 팠습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빠홈이 들어가 묻힐 땅은 2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하부르타식 질문의 예
1. 빠홈은 왜 땅만 넉넉히 갖을 수 있다면 악마도 겁나지 않는다고 했을까요?
2. 빠홈은 왜 자기 땅에서 자란 풀과 꽃들이 다른 풀이나 꽃과는 다르게 보였을까요?
3. 악마는 왜 땅만 갖게 되면 세상 누구도 심지어 자신도 겁나지 않다고 떠벌리는 빠홈의 말을 듣고 기뻐했을까요?
4. 빠홈은 왜 죽을 때까지 걸었을까요?
5. 빠홈은 그렇게 열심히 노력했는데도 왜 마지막에 작은 땅 밖에 얻지 못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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