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정해진 운명이나 복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씨와 의지에 따라 달라진다고 합니다. ‘서천 서역국으로 복 받으러 간 총각’은 우리나라 옛이야기이지요. 착한 마음씨를 갖고 살면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사람마다 다 타고난 복이 있어서 그 복만큼만 살게 돼 있다고 믿었답니다. 어느 마을에 떠꺼머리 총각이 하나 살고 있었어요. 지지리도 복이 없는 총각이었지요. 아주 어려서 부모님을 여의고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면서 자랐는데, 어른이 되어서도 도무지 제대로 되는 일이 없었어요. 농사를 지으면 흉년이 들고, 장사를 하면 손해를 보았어요. 그러니 살림살이 나아지질 않았지요. 그나마 하루 두 끼나 먹을까 말까 였어요.
그러다 보니 서른이 넘도록 장가도 못 가고 삶은 너무나 팍팍했지요. 그래서 한 숨이 저절로 나왔어요. “아이고, 이놈의 팔자는 어떻게 생겨 먹었기에 사는 꼴이 이다지도 지지리 궁상일까?” 날마다 이렇게 한탄만 하다가 하루는 크게 결심했어요. “서천 서역국에 가면 부처님이 사니, 부처님을 찾아가 복을 좀 달라고 졸라 봐야지.”
총각은 그 날로 괴나리봇짐을 싸 가지고 길을 떠났습니다. 서천 서역국이라고 하니까 총각은 그저 하염없이 걸어갔어요. 산을 몇 개나 넘고, 물을 몇 개나 건너가다 보니 해가 꼴딱 넘어가 버렸어요. 배는 고프고 다리도 아팠어요. 산속에서 있자 하니 막막했어요. 그런데 그때, 멀리서 불빛이 하나 깜박깜박 거리는 거였어요. 총각은 기운이 나서 그 불빛을 찾아갔어요.
그랬더니 훌륭하게 지어진 기왓집이 한 채 서 있던 거예요. 대문을 두드리며, “여보시오, 저 아무도 없소?” 그러자 안에서 한 달덩이 같은 여인네가 문틈으로 고개를 내밀었어요. 그는 이러저러한 사정을 이야기했어요. 이야기를 들은 여인은 총각에게 사랑채를 내주고 뜨끈한 저녁상까지 차려다 주었어요. 총각은 배가 고파 뚝딱 밥을 먹고 둘러보니 큰 집에 여인 혼자만 살고 있는 거예요.
총각은 달덩이 여인에게 물어 보았어요. 그랬더니 달덩이 여인은 “몇 해 전에 이 집으로 시집을 온 지 얼마 안 되어 신랑이 덜컥 죽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 큰 집에서 혼자 살고 있지요”라고 말하면서 부처님께 가서 ‘여인의 신랑감을 하나 구해달라’고 부탁을 했어요. 총각은 부처님께 전해 주겠다고 했어요. 그렇게 그 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또 산과 물을 몇 개 넘고 건너 갔는데, 가다 보니 어느 경치가 좋은 곳에서 댕기동자 세 명이 노래를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어요. “신선초야, 신선초야, 꽃을 피워라…” 총각은 궁금해서 가까이 가 물어보았어요. “무엇을 하는 겁니까?” “우리는 신선이 되려고 삼십 년 동안 도를 닦았다오. 마지막으로 이 신선초의 꽃을 피우는 도를 닦고 있는데 심은 지 삼 년이 다 되도록 꽃이 피어나지 않는구려.”라고 댕기동자들이 말했어요. 총각이 부처님께 복을 받으려고 서천 서역국으로 간다고 하니 댕기동자들도 자기들 대신에 부처님께 어떻게 하면 신선초의 꽃을 피울 수 있는지를 물어봐 달라고 했어요. 총각은 그렇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총각은 댕기동자들과 헤어져 다시 산을 몇 개 넘고, 물을 몇 개나 건너가다 보니 아주 큰 강이 나타났어요. 그런데 강물은 출러이는데 나루도 없고 배도 없었어요. 총각이 실망하고 있을 때 갑자가 집채만 한 이무기가 고개를 쑥 내밀었어요. 총각은 ‘이제 꼼짝없이 죽었구나’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무기가 사람처럼 말을 하는 거였어요. “댁은 누구인데 거기 그러고 서 있소?” “서, 서, 서, 서천 서역국으로 복 받으러 가는 총각이요.”라 고 총각은 대답했어요. 그랬더니 이무기는 자기는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려고 이 강에서 천 년을 살았는데 아직도 이무기로 살고 있으니, 그 까닭을 부처님께 물어봐 달라고 했어요. 총각은 그리 하겠다고 하고는 이무기 등에 업혀 강을 건넜어요.
총각은 또 산을 몇 개 넘고, 물을 몇 개 건너서 마침내 서천서역국에 이르렀습니다. 부처님 앞에 넙죽 엎드려 큰 절을 한 총각은 주절주절 찾아온 이야기를 했어요. 그 말을 다 들은 부처님은 총각에게 어느 때에 태어난 누구인지를 물었어요. 총각이 대답을 하니 두툼한 장부를 하나 꺼내 들고 뒤적거리더니, 딱한 듯이 혀를 끌끌 차며 “허허, 안 됐지만 너는 타고난 복이 그것뿐이구나.”라며 복장부를 보여 총각의 복이 쓰였다며 보여 주었어요. 총각이 고개를 쭉 빼고 들여다보았더니, 자기 이름 석자 위헤 복이랍시고 적혀 있는 것이 달랑 ‘좁쌀 한 됫박, 것도 작은 됫박으로’라는 것이었어요. 총각이 기가 막혀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통사정을 하면서 말했어요. “아이고, 복장부를 보니 남들은 다 ‘쌀 한 가마,’나, ‘돈 천 냥’이라고 쓰여 있는데, 달랑 ‘좁쌀 한 됫박’이 뭡니까? 것도 작은 됫박으로… 이대로는 못 삽니다. 제발 부탁이니 ‘좁’자라도 지워 주시든가 아니면 ‘작은 됫박으로’라도 떼어내주십시오.” 부처님도 딱해서 눈물을 흘렸어요. 하지만 총각의 복을 늘려주면 다른 사람의 복은 줄여야 한다면 그럴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더구나 사람은 제 몫이 열 가나마 된다고 해도 거기서 한 됫박만 덜어내자고 하면 억울해하고, 아까워서 배를 앓는다고 했어요. 그래서 하늘이 정한 복을 사람이 복을 스스로 늘리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총각이 부처님의 말씀을 들으니 그런 것 같아서 한숨만 푹푹 쉬었습니다.
그러면서 총각은 부처님께 오는 길에 남들한테 부탁을 받은 것을 해결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달덩이 여인, 댕기동자 세 명, 그리고 이무기가 부탁한 것을 풀어 놓았어요. 그러자 부처님은 그런 것은 쉽다고 하면서 이야기해 주었어요. 이무기는 여의주를 하나만 입에 물고 있어야 하는데 욕심껏 둘이나 물고 있어서 무거워 올라가지 못한 것이지요. 댕기동자들은 신선초를 심은 곳 땅 밑에 황금덩이 하나가 묻혀 있어 뿌리가 물을 잘 못 빨아들여서 꽃이 안 피는 거라고 일어 주었어요. 달덩이 여인네는 혼자되고 난 뒤에 맨 처음 만난 남자가 천생연분 새 신랑감이라고 했습니다. 그러고는 총각의 복은 늘려주지 못하고 남의 부탁만 들어주어 미안하다는 말도 했지요.
총각은 다시 길을 떠나 강가에 도착했어요. 그랬더니 이무기가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다가 총각에게 물었어요. “그래 부처님께 물어 보았소?” “물론이지요. 당신의 여의주 하나를 버려야 용이 된답니다.” 이무기는 총각을 강 건너까지 데려다주고는 얼른 여의주 한 개를 뱉어 심부름 값으로 총각에게 주었어요. 그러고는 곧장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또 가다가 총가는 댕기동자들을 만나서, 신선초 뿌리 밑에 황금덩이가 있어서 그렇다고 말해 주었어요. 댕기동자들이 얼른 황금덩이를 파내자 신선초 꽃이 피었어요. 댕기동자들은 그 황금덩이를 총각에게 주고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총각은 다시 또 가다가다가 달덩이 여인네 집에 갔습니다. 여인은 총각에게 부처님께 부탁을 전해 주었는지 물었어요. 총각은 “혼자되고 난 뒤에 맨 처음 만난 남자가 천생연분 새 신랑감이니 그 남자를 찾아서 혼인을 하라고 합니다.”라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달덩이 여인이 총각을 와락 끌어안았어요. 그러면서 “서방님, 이제야 천생연분을 만났군요.”라고 말했어요. 총각은 너무 놀라서 자신을 놓아달라고 했어요. 달덩이는 “서방님이 바로 제가 혼자된 뒤에 맨 처음 만난 남자랍니다.”라고 말하지 뭐예요. 그제야 총각도 비로소 얼굴빛이 황홀해지면서 달덩이를 담쏙 끌어안았어요.
그렇게 해서 총각은 커다란 기와집에서 달덩이같은 각시와 함께 아주 잘 살게 되었습니다. 아들 낳고 딸 낳고, 손주며느리 볼 때까지 오순도순 깨가 쏟아지게 잘 살았답니다. 그런데 ‘좁쌀 한 됫박’은 도대체 무슨 소리냐고요? 그건 저 혼자 잘 먹고 잘 살자고 버둥거릴 때 복이 고만큼이라는 뜻인 것 같습니다. 그것 말곤 잘 모르겠어요. 옛날이야기이니까요.
하부르타식 질문:
떠꺼머리 총각은 왜 부처님께 복을 받으려고 했을까요?
총각은 부처님이 자신에게는 복을 주지 않았는데도 왜 남들이 부탁한 것을 부처님에게 물어보았을까요?
부처님은 총각에게 복을 준 걸까요? 주지 않은 걸까요?
총각이 잘 살게 된 것은 총각의 복이 아니라 남들의 복 때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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