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버지 길들이기]는 구세대인 시아버지와 신세대인 며느리가 한판 대결을 벌이는 이야기랍니다. 이야기 속 시아버지는 예의범절을 지나치게 강요하여 주위 사람들을 피곤하게 하지요. 반면 며느리는 고분고분한 듯하면서도 시아버지를 깨우치고 바로잡아 주는 지혜롭고 현명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깐깐하던 시아버지는 꼼짝없이 며느리의 말을 인정하게 되지요. 이 이야기를 잘못 이해하면 우리의 전통예절이 까다롭고 거추장스러워 현대 생활에 맞지 않으므로 지키기 어렵다거나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시아버지와 며느리라는 세대 간의 갈등과 조화를 해학적으로 묘사하면서 참다운 예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정성스러운 것이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지요. 더불어 우리가 지켜나가야 할 우리의 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합니다.
옛날 어느 마을에 가난한 선비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 선비에게는 딸이 하나 있었어요. 이 딸이 시집갈 나이가 되었지만, 워낙 살림이 가난하다 보니 시집갈 염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답니다. 예물이며 혼수는커녕 당장 덮고 잘 이불 한 채 장만할 돈도 없었지요. 그러니 무슨 수로 시집을 갈 수 있을까요. 날마다 부엌 아궁이나 지키면서 나이만 먹어 가는 거지요.
어느 하루는 이 말이 부엌에서 군불을 때고 있노라니까, 방 안에서 저희 아버지와 어머니가 두런두런 의논하는 소리가 들리더래요. “여보, 저 아이 나이가 저만하니 어서 혼례를 치러 줘야 하지 않겠어요?? “아, 혼례나 마나 돈이 있어야 치르든지 말든지 할거 아뇨.” “건넛마을 참봉 댁에서 며느릿감을 구한대요. 혼수고 뭐고 필요 없으니 그냥 몸만 오라는 거예요.” “아서요, 아서. 그 참봉 영감 성질을 몰라서 하는 소리요? 깐깐하니 예의범절 따지기로 말하면 둘째 못 가는 사람 아니오? 우리 애가 그 집에 시집갔다가는 사흘도 못 가서 쫓겨나고 말 거요.”
딸이 마침 그 대화를 듣고 있다가 슬그머니 방에 들어가서, “아버지, 어머니, 아무 말씀하지 마시고 저를 그 댁에 보내 주세요.”라고 말했어요. 부모님이야 딸이 제 발로 나서서 가겠다는데 어찌 말리겠어요? 그래서 중신아비를 보내 말을 넣어 가지고 참봉댁으로 시집을 가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시집을 턱하니 가 보니, 아닌 게 아니라, 참 그 시아버지 성질이 보통 깐깐한 게 아니었지요. 시집간 다음 날부터 새 며느리 문안을 받겠다고 꼭두새벽부터 일어나서 기다리는 거예요. 문안이라는 것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치장을 하고 웃어른을 찾아뵙고 큰절로 인사드리는 건데, 날마다 새벽마다 그러려면 그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글쎄 날마다 그걸 받겠다고 날도 덜 샌 새벽에 일어나 도포 입고 갓 쓰고 보료 위에 턱 하니 앉아서 기다리는 거예요.
그런데 새 며느리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날이 훤히 샐 때까지 얼씬을 안 했지요. 시아버지가 그만 노발대발해서 하인을 불러 야단을 쳤습니다. “어서 가서 새아씨에게 일러라. 우리 집안 예의범절로는 날이 훤히 샐 때까지 웃어른께 문안드리지 않는 법은 없다고 이르거라.” 하인이 쫓아가서 그대로 전하니까 며느리가 태연하게 받아넘기기를, “아버님께 여쭈시게. 우리 친정 예의범절로는 웃어른께 먼저 문안드리기 전에 아랫사람에게 문안 받는 법은 없다고 여쭈시게.”
시아버지가 그 말을 전해듣고 그만 기가 탁 질려 버렸어요. 웃어른께 먼저 문안을 드린 다음에 며느리한테 문안을 받으라는 건데요. 말이야 백번 옳은 말 아니겠어요. 그런데 시아버지 웃어른이 누구겠어요? 돌아가신 조상님이지요. 돌아가신 조상님을 모신 사당이 뒷산 중턱에 있으니까요. 시아버지가 며느리한테 문안을 받으려면 새벽마다 뒷산에 올라가 사당에 모신 조상님께 절을 하고 내려와야 할 판이랍니다.
그날부터 시아버지가 꼭두새벽에 일어나 미끄러지면서 자빠지며 산을 기어 올라갔습니다. 올라가서 사당에 절을 하고 나서, 또 미끄러지며 자빠지며 산을 내려오는 거예요. 산을 오르내리느라 힘이 다 빠져서 보료에 푹 주저앉아 있으면, 그제야 며느리가 꽃같이 곱게 차려입고 들어와서 날아갈 듯이 절을 하는 거예요.
하루 이틀도 아니고 날마다 그러자니 시아버지가 그만 질려버렸답니다. 이러다가는 병이 나도 아주 큰병이 날 것 같단 말이지요. 그래서 하루는 문안드리러 온 며느리를 붙잡고 아주 사정사정을 했답니다. “얘, 네 문안받자고 하다가는 내가 지레 죽겠다. 이제부터 그 문안인지 문밖인지를 그만두는 게 어떠냐? 예의도 좋고 범절도 좋지만 사람이 살고 봐야지.” 그제야 며느리가 마지못하는 척, “아버님이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면 그만두겠습니다.”라고 했지요.
그러고 나서 얼마 동안 아무 일 없이 잘 지냈는데 조상님 제사가 다가오면서 시아버지 병이 또 도지고 있었어요. 조상님 제사야 정성껏 차리고 정성껏 지내면 될 아닌가요. 그런데 이 영감은 예의범절 찾는 게 지나쳐서 다른 식구들을 아주 들들 볶는 거예요. 부엌 바닥에 검불이 하나 떨어져 있어도 칠칠맞지 못하다고 구박, 마당 구석에 발자국이 하나 찍혀 있어도 부정탄다고 타박, 이러니 다른 식구들이 견딜 수가 있나요.
“모름지기 제사음식은 정갈해야 하는 법이니라. 행여 티끌 하나 들어가서는 안 되느니. 어허, 거 무슨 발걸음이 잰고? 먼지가 나지 않느냐?” 이렇게 잔소리를 입에 달고 있으니 온 집안이 시끄러웠지요.이 때 며느리가 제사음식을 장만하다 말고 시아버지한테 말하기를, “아버님, 새 칼 도마가 한 벌 있어야 하겠습니다.”라고 했지요. “얘, 쓰던 칼 도마는 어떻게 했기에 새로 달라느냐?” “모름지기 제사음식은 정갈해야 하는 법인데, 생선 썰던 칼 도마로 어찌 채소를 썰겠습니까?” 며느리가 제사음식을 정갈하게 장만하자는 데 그러지 말라고 할 수 있을까요? 칼 도마 한 벌을 새로 사다 줬더니 얼마 안 쓰고 또 달라고 했지요. “아버님, 새 칼 도마가 한 벌 더 있어야 하겠습니다.” “얘, 방금 사다 준 칼 도마는 어떻게 하고 또 달라고 그러느냐?” “모름지기 제사음식은 정갈해야 하는 법인데, 채소 썰던 도마로 어찌 고기를 썰겠습니까? 하릴없이 또 한 벌 사다 줬더니 얼마 안 쓰고 또 달라고 했어요. “아버님, 새 칼 도마가 한 벌 더 있어야 하겠습니다.” “얘, 방금 사다 줬는데 또 달라고 하느냐?” 며느리는 이번에는 고기 썰던 칼 도마로 어찌 과일을 썰겠냐며 답을 했지요. 시아버지가 생각해 보니 또 칼과 도마를 사달라고 할 것 같았어요. 이러다가는 칼 도마를 사느라 살림이 거덜 날 것 같단 말이지요. 그래서 며느리에게 사정을 했어요. 이제는 예의범절의 ‘예’ 자도 안 꺼낼 터이니 칼과 도마를 그냥 쓰자고 말이에요. 그러자 며느리는 마지못하는 척하며 시아버님의 말씀대로 하겠다고 했답니다. 그렇게 해서 제사를 잘 지냈습니다.
이제 가을걷이할 때가 됐는데, 그 때까지 잠자고 있던 시아버지 병이 또 도졌어요. 가을 곡식이야 때 안 놓치고 거두어들여 말려 놓으면 될 것 아닌가요. 그런데 이 영감님은 예의범절을 찾는 게 지나쳐서 곡식을 멍석에 널어 말리는 걸 그냥 못 보고 조상님 제사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식구들을 들들 볶았습니다. “처음 널어 말리는 곡식은 조상님 제사에 쓸 것이니 입김도 쐬어서는 안 될 것이야. 어허, 그렇게 험한 멍석에다가 조상 제사에 쓸 곡식을 널어 말리느냐? 그래 가지고서야 부정을 타도 된통으로 타겠다.” 이러고 잔소리를 해 대니 온 집안이 시끄러워졌지요. 이때 며느리가 벼를 멍석에 널어 말리다 말고 시아버지한테 말하기를, “아버님, 배보자기 하나 있어야 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시아버지가 뭣에 쓰려고 배보자기가 필요하냐고 물어봤어요. 배보자기에 멍석에 널리려던 벼를 담아 시아버지한테 주면서, “조상님 제사에 쓸 곡식이니 아버님께서 이 배보자기를 들고 흔들어 말리십시오.” 시아버지가 그 이유를 묻자 조상님 제사에 쓸 곡식을 남이 말리면 부정 탄다고 하니 어쩔 수 없이 보자기를 건네받아 흔들었습니다. 하지만 벼는 쉽게 마르지 않았지요. 한 보자기도 채 못 말려서 온몸이 파김치가 됐는데, 이런 일을 열두 번 더 해야 한다니 기가 막혔답니다. 이러다가는 멧밥도 못 얻어먹고 지레 죽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결국 제사에 쓸 곡식이고 뭐고 그냥 멍석에다 널어 말리자고 했습니다. 이제 예의범절인지 뉘 집 강아진지 아주 신물이 난다, 신물이 난다면서 말이에요. 이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을 테니 제발 그냥 조용히 살자고 말했습니다.
그제서야 며느리가 마지못하는 척, “아버님이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면 그리하겠습니다.” 하고는, 그때부터 정말로 그냥 조용히 살았답니다. 아, 그 깐깐하고 시끄럽던 시아버지가 아무 말도 안 하고 조용히 사는데 누가 뭐래겠어요. 아무 일 없지요. 그렇게 시아버지 버릇을 싹 고쳐 가지고 오래오래 잘 살았답니다. 잘 살아서 그저께까지 살았다나요.
하부르타식 질문의 예:
선비는 왜 딸이 참봉 집에 시집을 가면 사흘도 못 가서 쫓겨날 거라고 생각했을까요?
가난한 선비의 딸은 왜 참봉 집에 시집가게 해 달라고 했을까요?
시아버지는 왜 꼭두새벽에 일어나 산에 올라가서 사당에 절을 하고 왔나요?
시아버지는 깐깐하고 예의범절을 무척 따지는 사람이었어요. 며느리는 왜 깐깐하게 예의범절을 따지는 시아버지의 버룻을 고쳤을까요?
여러분이 보시기에 며느리는 어떤 사람인 것 같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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