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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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선생님

by &#$@* 2024.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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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선생님]은 엔리꼬라는 초등학교 4학년 어린이가 쓴 일기 형식의 이탈리아 통화인 ‘사랑의 학교’에서 한 부분을 발췌한 것으로 에드몬도 데 아미치스 작품입니다.

 

엔리꼬의 아버지는 신문에서 옛 담임 선생님의 기사를 읽고, 엔리꼬와 함께 선생님을 찾아갑니다. 40년 전 선생님의 가르침과 선생님에 대한 고마움을 마음 깊이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교직에서 은퇴하신 선생님은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 되어 옛 추억을 회상하며 쓸쓸하게 살고 계십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선생님을 위로해 드리지요. 선생님께서는 고귀한 인생을 사셨고, 전 세계에 흩어진 많은 제자들이 선생님을 기억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선생님을 평생 학교에 있게 한 것은 무엇일까요? 평생 학생들을 사랑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만을 알고 사신 선생님의 인생에 대해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버지와 로젯띠 선생님이 작별 인사를 하는 장면

 

 

어제 아버지와 함께 아주 멋진 여행을 했습니다. 그저께 식사를 할 때 아버지께서 초등학교 때의 담임선생님이셨던 벤첸쪼 끄로젯띠 선생님이 육십 년간의 교육 공로로 훈장을 받았다는 기사를 읽으셨답니다. 그 선생님이 여든네 살이신데 돌아가신 줄 알고 있었는데, 살아계신다는 것에 놀라셨던 거지요.  바어비는 끄로젯띠 선생님이 꼰도베리라는 곳에 살고 계신데, 선생님을 만나 뵈러 가자고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그날 저녁 내내 선생님 이야기밖에 하지 않으셨지요. 초등학교 때의 담임선생님을 보자 아버지의 어린 시절과 어릴 적 친구들, 돌아가신 할머니가 떠오르셨던 겁니다. 아버지는 무척 감격스러워하셨어요.

 

끄로젯띠 선생님은 작은 체구에 연세가 마흔이셨는데도 등이 약간 굽으셨다고 합니다. 맑은 눈에 항상 수염을 깨끗이 깎고 다니셨고요. 엄하시지만 항상 공정한 분이셨답니다. 아버지처럼 학생들을 사랑하셨지만, 잘못을 저지르면 엄격하셨다는데요. 끄로젯띠 선생님은 농부의 아들이었는데, 고학을 하셨답니다. 신사이셔서 아버지의 어머니 즉 할머니께서 선생님을 아주 좋아하셨다고 해요. 할아버지도 선생님을 친구처럼 대하셨고요. 아버지는 선생님께서 어떻게 또리노에서 꼰도베까지 가셨는지 궁금해하셨습니다. 벌써 사십 사 년에 지나서 자신을 알아보지는 못하셔도 아버지가 선생님을 알아볼 수 있으니 선생님을 찾아뵙고 싶었던 거지요.

 

다음 날은 정말 화창한 봄날이었습니다. 어머니는 편찮으셔서 같이 갈 수 없어 아버지와 나만 기차를 타고 선생님을 만나러 갔습니다. 아버지는 가끔씩 내 목을 팔로 안으셨고 들녘을 바라보면서 선생님에 관한 추억에 잠기셨지요. 무척이나 기분이 설레고 좋아 보이셨습니다.

 

꼰도베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옛 정원사 아주머니를 찾아갔습니다. 아주머니는 뒷골목에서 가게를 하면서 살고 계셨어요.  그 고장 사람들은 모두 선생님을 알고 있었지요. 아주머니는 선생님 댁에 가는 길을 알려주었습니다. 

 

우리는 마을에서 나와 오르막 오솔길로 접어들었어요. 아버지는 이제까지와는 달리 아무 말씀도 없으셨어요. 아마 추억 속으로 깊이 빠지신 것 같았습니다. 가끔씩 미소를 짓다가 고개를 흔들기도 했어요. 갑자기 아버지가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그때 하얀 수염을 기르고 차양 넓은 모자를 슨 자그마한 노인이 오솔길로 지팡이에 의지해 우리 쪽으로 걸어 내려오고 계셨어요. 다리를 끌며 걸으셨는데 손을 떨고 계셨지요. “선생님이시다.”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시고는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그분 가까이서 우리는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노인 역시 걸음을 멈추고 아버지를 바라보셨지요. 여전히 깨끗한 얼굴에 맑고 초롱초롱한 눈을 갖고 계셨습니다. “벤첸쪼 끄로젯띠 선생님이시죠?” “그렇소.” 선생님 역시 모자를 벗으며 대답하셨습니다. 약간 떨리지만 힘 있는 목소리였어요. 아버지께서 선생님의 손을 잡았어요. “옛 제자가 선생님의 손을 잡고 안부를 여쭈어 봐도 되겠습니까? 전 선생님을 뵈러 뜨리노에서 왔습니다.” “내겐 너무 영광이오…. 잘 모르겠군. 언제 나의 제자였소? 미안하오. 이름을 말해 주겠소?”

 

아버지는 알베르또 봇띠니라고 이름을 밝히고 몇 년도에 학교에 다녔는지, 그리고 어느 학교였는지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고는 “아마 선생님은 저에 대해 기억하지 못하실 겁니다. 당연한 일이지요. 하지만 전 선생님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고개를 숙이고 땅을 바라보면서 깊은 생각에 잠기시는 것 같았지요. 그러고는 아버지 이름을 두세 번 중얼거리셨죠. 그동안 아버지는 미소를 지으며 선생님을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갑자기 놀란 눈으로 얼굴을 들으며, 천천히 말씀하셨어요. “알베르또 봇띠니? 기술자 봇띠니의 아들 말인가? 꼰솔라따 광장에 살던 그 애?” “네, 맞습니다.” “그러면….” 선생님이 말씀하셨어요. “날 용서하게, 여보게. 용서해 주게.”라고 말씀하시며 아버지를 껴안았습니다. “날 찾아와 주다니, 친절하구먼.” 하시고는 더 이상 아무 말 없이 몸을 돌리더니 선생님 댁 쪽으로 걸어가셨습니다. 

 

잠시 후 우리는 문이 두 개 달린 작은 집의 마당에 도착했어요. 선생님은 두 번째 문을 열고 우리를 방 안으로 안내하셨습니다. 네 벽이 하얀 방이었는데, 한쪽 그것으로 흰색과 청색의 체크무늬 이불이 깔린 나무 침대가 있었지요. 다른 쪽으로는 작은 책꽂이가 놓인 책상과 의자 네 개, 벽에 못으로 붙여 놓은 낡은 지도 등이 보였습니다. 우리는 모두 앉았어요. 아버지와 선생님은 잠시 동안 조용히 서로를 바라보셨지요. 

 

선생님은 햇빛이 들어와 바둑판무늬가 만들어진 벽돌 바닥을 계속 쳐다보면서 외쳤습니다.  “봇띠니! 아, 아주 분명하게 생각나는군. 자네 어머니는 아주 훌륭한 분이셨지! 자넨 일 학년 때 창문 옆, 왼쪽 첫 번째 줄에 앉아 있었어. 내 기억이 얼마나 정확한지 한번 보게나. 아직 자네의 곱슬머리를 기억한다네. 자넨 활발한 소년이었지. 응? 아주 활발했어. 이 학년 때는 후두염을 앓았었어. 부모님이 수척해진 자네를 숄로 감싸 학교에 데려오던 모습이 눈에 선하군. 사십 년이 지났어. 그렇지? 이 불쌍한 선생을 기억해 주다니, 자넨 정말 훌륭해. 자네는 아는지 모르겠지만 다른 학생들, 자네보다 더 뒤에 학교를 다닌 내 옛날 제자들도 이곳을 나를 찾아온다네. 대령, 신부, 각양각색의 신사들이 됐어. 그런데 얼마 전부터는 날 찾아오는 이가 아무도 없었어. 자네가 마지막이 될까 두렵군.””무슨 말씀이세요. 선생님은 건강하신데요. 아직 정정하세요. 그런 걱정하지 마세요.”아버지가 소리쳤습니다.

 

선생님은 자신이 점점 건강이 좋아지지 않아 이젠 글을 쓰지 못하는 날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육십 년 동안 아이들을 가르쳤는데, 학교와 아이들과 일을 작별을 해야 했을 때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이야기해 주셨지요. 지금은 아무것도 할 일이 없어 하루 해가 너무 길다고 하셨습니다. 유일한 소일거리는 옛날 책과 그동안 모아 놓은 교육 신문이나 학생들이 선물한 책들을 들춰 보는 것뿐이라고도 하셨어요. 그러면서 선생님은 그동안 모아 놓은 여러 꾸러미에서 아버지가 한 숙제도 간직하고 계셨습니다. ‘알베르또 봇띠니, 받아쓰기, 1838년 4월 3일.’ 아버지는 어린아이가 쓴 큰 글씨를 금방 알아보시고는 기쁜 마음으로 읽기 시작하셨습니다.

 

선생님과 아버지는 한동안 지난날의 추억을 회상하면서 즐겁게 대화를 하셨습니다. 아버지와 가족들, 그리고 친구에 관한 기억을 더듬으면서 아주 즐거워하셨지요. 

 

거의 정오가 다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선생님을 모시고 호텔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선생님은 아주 즐거워하셨지요. 감동으로 손이 점점 더 심하게 떨려 거의 식사를 못하셨지요. 아버지께서 고기를 자르고 빵을 찢어 놓아 드렸고 접시에 소금을 넣어 드렸습니다. 음료수를 마시기 위해 유리컵을 두 손으로 들었는데도 컵과 이가 맞부딪혔습니다. 젊었을 때의 당신의 일과표, 상급반 학생들이 선생님께 드렸던 찬사의 말, 그리고 최근 몇 년 동안의 규칙들을 쉬지 않고 열심히 말씀하셨지요. 전보다 얼굴이 약간 불그스름하기는 했지만 계속 맑은 얼굴에 유쾌한 목소리로 말씀하시며 거의 젊은 같은 미소를 짓고 계셨습니다. 아버지는 선생님을 바라보고 계셨어요. 집에서 가끔씩 생각에 잠겨 혼자 웃으시며 한쪽으로 얼굴을 기울이고 나를 바라보시던 바로 그 표정으로 말이에요. 선생님은 떨리는 손으로 포도주 잔을 들고 아주 진지하게 마지막으로 말씀하셨어요. “자네, 그러니까 친애하는 기사님과 그 자녀들의 건강을 위해, 그리고 훌륭하신 자네 어머니를 추억하면서!” “훌륭하신 선생님을 위해!” 선생님의 손을 잡으며 아버지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식당 안쪽에서 호텔 지배인과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보면서 자기 고장의 선생님께 이런 자리를 마련해 드리는 것이 기쁜 듯 모두 미소를 지었습니다.

 

두 시가 지나서 식당에서 나왔습니다. 선생님은 우리를 역까지 바래다주고 싶어 하셨지요. 아버지는 다시 선생님의 팔을 잡아 드렸고, 선생님은 내 손을 잡으셨습니다. 난 선생님의 지팡이를 들고 갔는데 지나가던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우리를 쳐다보았어요. 모두 선생님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어떤 사람들은 선생님께 인사를 했습니다. 어느 길에 들어서자 여러 아이들이 함께 한 자씩 책을 읽는 소리가 창문에서 울려 나왔어요. 문득 선생님께서 걸음을 멈추셨는데, 왠지 그 모습이 너무나 슬퍼 보이셨습니다. 선생님은 학생들의 목소리를 듣것이 괴롭다고 하셨어요. 선생님은 더 이상 학교에 있을 수 없고, 다른 사람이 그곳에 대신 있다는 생각이 힘들게 했던 거지요. 육십 년 동안 학생들의 소리를 들어왔는데, 이젠 가족도 없고 학생도 하나도 없다고 슬퍼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직도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많은 학생들이 선생님을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어요.

 

우리는 역까지 왔습니다. 기차가 막 떠나려고 하고 있었어요. 아버지는 선생님의 두 빰에 입을 맞추고 인사를 했습니다. 기차가 막 떠나려는 순간에 아버지는 선생님의 초라한 지팡이를 재빠르게 낚아채고 그 대신 은 손잡이에 아버지의 이름 첫 자가 새겨진 지팡이를 쥐어 드렸습니다. “저에 대한 추억으로 보관해 주십시오.” 선생님은 아버지가 드린 지팡이를 되돌려 주고 선생님 것을 되찾으려 했지만 아버지는 임 기차 안으로 들어와 창문을 닫아 버리셨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선생님!” “잘 가게.” 기차가 움직이자 선생님이 대답하셨어요. “이 불쌍한 노인을 위로해 준 자네에게 하느님의 보살핌이 있기를 바라네.” “다시 뵙겠습니다!” 아버지는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 소리로 외쳤어요. 선생님은 마치 ‘이제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거야.’라고 말하듯 고개를 저으셨습니다. 선생님은 떨리는 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키며 대답하셨어요. “저 위에서.’ 그렇게 손을 들고 계신 선생님의 모습이 우리의 시야에서 멀어져 갔습니다.

 

하부르타식 질문의 예

1. 아버지는 왜 끄로젯띠 선생님을 만나 뵈러 가자고 했을까요?

2. 마지막 수업이 있었던 날, 선생님은 왜 슬펐을까요?

3. 끄로젯띠 선생님은 왜 아버지가 마지막이 될까 두렵다고 했을까요?

4. 학생들이 책 읽은 소리를 들은 선생님은 왜 슬펐을까요?

5. 아버지는 왜 끄로젯띠 선생님이 고귀한 인생을 사셨다고 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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