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일까, 오랑이일까?]는 결말이 나지 않은 채 끝나는 색다른 작품입니다. 전반부에 나오는 왕과 원형 경기장의 이야기가 공주와 젊은이의 사랑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공주가 은밀히 문 뒤의 비밀을 알고 사랑하는 사람을 호랑이에게 물려 죽게 할 것인지 다른 여인과 결혼하게 할 것인지 고민하는 심리 묘사는 이 책을 읽게 되는 독자도 이야기게 빠져 들게 됩니다. 만약 내가 공주라면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지 이야기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주 오래된 옛날, 문명이 발달한 이웃 나라로부터 영향을 받기는 했지만, 여전히 문명이 발달하지 못한 어떤 나라에 한 왕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 나라의 왕은 상상력이 풍부했어요. 그리고 누구도 반대할 수 없는 아주 강한 힘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상상한 것은 마음먹은 대로 다 할 수 있었지요. 왕은 깊은 생각에 잠기는 것을 좋아했지만, 어떤 일이든 결정을 하면 바로 행동으로 옮겼답니다. 또 왕은 모든 일에 너그러웠어요. 심지어 자기 뜻대로 되지 않은 일조차도 너그럽게 대하려고 했지요. 왜냐하면 왕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 그 자체를 즐겼기 때문입니다.
이 나라가 이웃 나라로부터 받아들인 것들 중에는 원형 경기장이 있었습니다. 이웃 나라에서 원형 경기장은 검투사들끼리 싸움을 하거나 사람과 사나운 짐승이 싸우는 곳이었지요. 그러나 왕은 자유롭고 풍부한 상상력을 발휘해서 원형 경기장을 전혀 다른 목적인 사람들을 재판하는 곳으로 사용했어요. 그래서 비록 원형 경기장의 모습과 설계는 이웃 나라에서 받아들인 것이었지만, 사용 목적은 왕이 생각해 냈기 때문에 사람들은 원형 경기장을 ‘왕의 경기장’이라고 불렀답니다.
이 나라에서 누군가가 큰 죄를 지으면, 몇 날 몇 시에 원형 경기장에서 그 사람의 재판이 있다고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그럼 수많은 사람들이 원형 경기장에 모여들고, 경기장의 높은 곳에 앉아 있던 왕이 신호를 하면 왕의 아래쪽에 있는 문이 열리고 재판을 받게 될 사람이 경기장 안으로 걸어 나오게 됩니다. 재판 받는 사람의 맞은편에는 똑같이 생긴 문이 두 개가 나란히 있지요. 재판을 받는 사람은 두 개의 문 중 하나를 열어야 하지요. 어떤 문이든 마음대로 열 수 있어요. 문을 열었을 때 사납고 굶주린 호랑이가 나오면 재판받는 사람의 몸은 갈기갈기 찢기고 맙니다. 그것이 그 사람에 대한 처벌인 것입니다. 재판이 끝나는 순간 철로 만든 종이 구슬프게 울리고, 돈을 받고 울어 주는 사람들이 큰 소리로 울어 줍니다. 그리고 경기장에 모였던 사람들은 그 사람의 끔찍한 운명을 슬퍼하며 집으로 돌아가게 되지요.
그러나 다른 쪽 문을 열었을 때, 그 사람의 나이와 신분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여인이 나오면 그 사람이 죄가 없다는 증거랍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그 여인과 결혼을 해야 합니다. 그 사람이 이미 결혼을 했다거나 사랑하는 다른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지요. 결혼식도 원형 경기장에서 곧바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합창단과 춤을 추는 사람들이 뒤따르는 가운데 성직자가 두 사람에게 다가가 두 사람의 결혼을 선언합니다. 그때 청동으로 만든 종이 흥겹게 울리고 사람들은 기뻐하며 만세를 부릅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꽃을 뿌리는 아이들을 앞세우고 집으로 향합니다.
이런 것들이 바로 왕이 재판하는 방식인 거지요. 왕은 자신의 재판을 공정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문에서 여인이 나올지 호랑이가 나올지 전혀 알지 못한 채 재판을 받는 사람 스스로 문을 선택하고 여는 방식이었기 때문이에요. 왕의 이런 재판은 매우 인기가 있었답니다. 왜냐하면 재판의 모든 결과는 재판 받는 사람 자신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이지요. 그 결과를 알 수 없다는 점 또한 매우 흥미로워했습니다.
왕에게는 젊고 아름다운 공주가 한 명이 있었답니다. 왕은 공주를 무척 사랑하고 아꼈지요. 공주는 아버지 왕처럼 당당하고 열정적인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공주가 왕의 신하 중 한 젊은이와 사랑에 빠지고 말았어요. 그 젊은이는 비록 신분은 낮았지만 이 나라에서 어느 누구보다 잘생기고 용감했답니다. 공주는 젊은이를 몹시 사랑했습니다. 공주와 젊은이의 사랑은 몇 달 동안이나 행복하게 계속되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왕은 공주와 젊은이의 사랑을 알아채고 젊은이를 곧바로 감옥에 가둔 뒤에 왕의 경기장에서 재판하기로 했습니다. 신분이 낮은 자가 감히 공주를 사랑하다니…! 왕은 나라 안에 있는 모든 맹수들의 우리를 뒤져 가장 사나운 호랑이를 찾아내게 하고, 젊고 아름다운 여인들을 조사해서 젊은이에게 가장 어울리는 여인을 찾아내게 했지요.
드디어 재판하는 날이 되었어요. 수많은 사람들이 경기장 안팎을 가득 메웠습니다. 모든 것이 준비되자, 왕이 신호를 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경기장 안팎을 가득 메웠어요. 모든 것이 준비되자, 왕이 신호를 보냈습니다. 그러자 왕의 아래쪽에 있는 문이 열리고 젊은이가 경기장 안으로 걸어 들어왔습니다. 키 크고 잘 생긴 젊은이의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놀라움과 걱정으로 웅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렇게 멋진 젊은이가 있다니…!” “공주님이 저런 멋진 젊은이를 사랑한 것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야!” “저런 젊은이가 재판을 받게 되다니, 정말 끔찍해!” 젊은이는 돌아서서 왕에게 절을 했습니다. 하지만 잚은이의 눈은 오로지 왕의 곁에 있는 공주만을 향하고 있었어요.
만약 공주가 마음이 강하지 않았다면 그 자리에 참석할 수 없었을 거예요. 젊은이 가 왕의 경기장에서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명령이 내려진 그 순간부터 공주는 밤이나 낮이나 오직 재판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있었지요. 그리고 마침내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을 해내고야 말았습니다. 바로 두 개의 문에 관한 비밀을 알아낸 것이죠. 공주는 어떤 문 뒤에 호랑이가 있고, 어떤 문 뒤에는 여인이 있는지를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그 여인이 누구인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여인은 왕궁에서 가장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여인이었어요. 공주는 그 여인이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을 자주 느끼곤 했답니다. 때때로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도 여인의 눈길을 느끼고 서로 눈길을 주고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이따금 그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기도 했지요.
아주 짧은 시간 동안이기는 했지만 짧은 시간에도 많은 것을 이야기 할 수 있은 법이지요. 또 그 이야기들이 하찮은 것일 수도 있지만 공주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공주는 문 뒤에서 얼굴을 붉힌 채 떨고 있을 여인이 미웠습니다.
젊은이는 공주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공주가 문에 관한 비빌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사실 젊은이는 공주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비밀을 알아낼 것이라고 믿고 있었답니다. 젊은이의 간절한 눈빛이 빠르게 ‘어느 쪽으로?’라고 물었어요. 그 눈빛은 마치 젊은이가 큰 소리를 지른 것처럼 공주에게 강하게 다가왔습니다. 젊은이는 매우 빠르게 공주에게 물어보았고, 공주 역시 매우 빠르게 대답해야 했지요. 공주는 왼손으로 작지만 빠르게 오른쪽으로 가리켰습니다. 경기장 안의 모든 사람들은 젊은이만 보고 있었기 때문에 공주의 손짓은 젊은이만 볼 수 있었어요.
젊은이는 마음을 굳게 먹고 돌아서서 빠르게 걸어갔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젊은이를 지켜보았어요. 젊은이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오른쪽 문을 열었습니다. 자, 젊은이가 연 오른쪽 문에서는 호랑이가 나왔을까요? 여인이 나왔을까요? 생각하면 할수록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이지요. 호랑이가 나오면 사랑하는 사랑하는 젊은이는 목숨을 잃게 되고, 여인이 나오면 비록 젊은이의 목숨을 구할 수는 있겠지만, 젊은이는 공주가 아닌 다른 여인과 결혼을 해야 합니다. 괴로움과 질투 속에서 고민하던 공주는 과연 어느 쪽을 가리켰을까요?
공주는 한순간에 결정을 내렸지만 여러 밤낮에 걸쳐 끊임없이 고민을 한 끝에 내린 결정입니다. 공주는 젊은이가 자신에게 물어볼 것을 예상하고 대답을 결정해 두었다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오른쪽 문을 가리켰습니다. 열린 문에서 나온 것은 여인일까요? 호랑이일까요?
하브루타식 질문의 예:
왕은 왜 상상력이 풍부했을까요?
왜 두 개의 문 중 하나의 문을 선택하게 했을까요?
왜 공주는 다른 남자도 많을 텐데 그 젊은이만 사랑했을까요?
공주는 어떤 문을 선택했고, 왜 그 문을 선택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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