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떨어진 이야기꾼]은 아일랜드의 옛이야기를 새로 구성한 글입니다. 주인공인 이야기꾼은 걱정거리가 많은 왕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해 날마다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무리 생각해 내려해도 저녁에 들려줄 이야깃거리가 떠오르지 않아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그때 한 늙은 거지를 만나, 우연히 주사위 내기를 하게 됩니다. 결국 내기에서 모는 것을 잃은 이야기꾼은 요술쟁이였던 거지를 따라 흥미로운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이 여행길에서 이야기꾼은 왕에게 들려줄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얻게 되지요. 이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할 때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옛날 아주 먼 옛날에 여러 왕들이 아일랜드를 나누어 다스리고 있던 때의 일입니다. 아일랜드의 라인스터라는 왕국이 있었어요. 그 왕국에는 이야기를 아주 좋아하는 임금이 살고 있었습니다. 라인스터 왕은 다른 왕들처럼 이야기꾼을 두고 있었지요. 이야기꾼은 왕에게 땅을 받고, 날마다 왕이 잠들기 전에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이야기꾼은 보통 사람들보다 옛날이야기나 동화를 수백 개는 더 많이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오랫동안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었지요. 왕은 나랏일로 온갖 근심 걱정이 가득했기 때문에, 근심 걱정을 잊고 밤에 푹 자기 위해서 이야기꾼의 이야기를 들었답니다.
어느 날 아침, 이야기꾼은 일찌감치 일어나 여느 때처럼 산책을 하며 왕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아침에는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아도 이야깃거리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지요. 들판을 한 바퀴 돌고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여전히 떠오르는 이야기가 없었습니다. 이야기를 시작하기야 쉬웠지요. ‘옛날 어느 왕에게 새 왕자가 있었답니다.’라거나 아니면 ‘아일랜드와 왕이 말을 타고 들판으로 달려 나갔습니다.’라고 말이에요. 하지만 그뿐이었어요. 더 이상 이야기를 이어 나갈 수가 없는 거예요.
집에 돌아오니 이야기꾼의 아내는 아침 식사 시간에 늦는 남편을 걱정하고 있었어요. “먹고 싶지 않소. 내가 왕의 이야기꾼 노릇을 수십 년 했는데, 저녁에 할 이야깃거리를 머리에 담아 두지 않고 아침 식탁에 앉은 적은 한번도 없었어. 노을 아침은 이상하게 머리가 꽉 막힌 것 같다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군. 생각 같아서는 그냥 땅속으로 꺼지고 싶어. 저녁에 왕을 만나러 갔을 때도 할 이야기가 아무것도 없다면 어떻게 하지!” 그때 부인이 창 밖을 내다보며 말했어요. “저 들판 끝에 있는 시커먼 거 보여요?” “응.” 이야기꾼이 대답했습니다.
이야기꾼과 아내가 밖으로 나가 보니, 넝마를 걸친 늙은 거지가 지팡이를 짚고 서 있었어요. “누구십니까?” 이야기꾼이 물었어요. “아, 그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니네. 난 그저 가난하고 늙고 다리가 불편한 불쌍한 사람이야. 여기서 잠시 쉬고 있을 뿐이지.” “그런데 손에 있는 주사위 하고 주사위통은 뭘 하는 거요?” “나하고 내가 주사위놀이를 할 사람을 기다리는 거지.” “당신 하고 내가 주사위놀이를 할 사람을 기다리는 거지.” “당신 하고 내기 주사위놀이를 한다고요? 뭐 하러? 내기를 해 봤자 걸 것도 없을 것 같은데.” “내 가죽 지갑에 금화 백 냥이 있다네.” 늙은 거지가 말했습니다.
“한번 해 봐요. 어쩌면 오늘 저녁 왕에게 할 이야기가 생길지도 모르잖아요.” 이야기꾼의 아내는 남편을 부추겼어요. 이야기꾼과 늙은 거지는 평평한 돌을 가져다 놓고 주사위를 굴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야기꾼은 동전 한 잎까지 톡톡 털렸지요. “잘하는 짓이야! 이런 데 말려들다니!”이야기꾼이 말했습니다. “계속할까?” 늙은 거지가 물었어요. “무슨 소리요! 이제는 돈 한 푼 없는데.” “하지만 마차하고 말하고 개는 있지 않나.” “글쎄, 그거야….” “거기에 내 돈을 모두 걸겠네.” “미쳤군! 아일랜드 돈을 다 준다 해도 내 아내를 걸어 다니게 할 수는 없소!” “어쩌면 이길지도 모르는데?””어쩌면 질지도 모르지 않소.” 이야기꾼이 말했습니다. “해 봐요, 여보. 나는 걸어 다녀도 괜찮아요.” 이야기꾼은 아내의 말을 따랐습니다. 하지만 이야기꾼은 순식간에 마차와 말과 개를 잃었어요. “더 할까?” “이젠 내기 걸 게 아무것도 남지 않았소.” “자네 부인을 걸게.”이야기꾼은 화가 나서 자리를 뜨려고 했지만 아내가 붙잡았습니다. “계속해요. 이번이 세 번째잖아요. 이번에는 틀림없이 이길 거예요.” 이야기꾼과 늙은 거지는 내기를 계속했고, 이야기꾼이 또 졌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이야기꾼의 아내가 늙은 거지 옆으로 냉큼 옮겨 앉지 뭐예요. “날 떠나는 거요?” 이야기꾼이 아내에게 소리쳤습니다.
“다른 수가 없잖아요. 이 사람이 내기에서 이긴걸요. 당신은 약속을 지키지 않을 건가요?” 아내가 말했어요. “아직 걸 만한 게 남아 있나?” 늙은 거지가 물었습니다. “나한테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는 건 당신이 알지 않소.” “자네가 자네 자신을 건다면 내가 가진 것 모두하고 자네 부인을 걸겠네.” 이야기꾼과 늙은 거지는 내기를 계속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꾼은 또 지고 말았지요. “자, 여기있소! 나를 가지시오. 그런데 날 가지고 뭘 할 작정이오?” “그건 곧 알게 돼.” 늙은 거지는 보따리에서 기다란 줄과 마술 지팡이를 꺼냈습니다. “자, 무슨 동물이 되고 싶은가? 사슴, 여우, 아니면 토끼? 지금은 선택할 수 있지만 조금 지나면 그것도 없어.” 이야기꾼은 토끼가 되겠다고 했지요. 늙은 거지는 이야기꾼을 끈으로 묶고 마술 지팡이로 툭 쳤습니다. 그러자, 저것 보세요. 귀가 기다란 예쁜 토끼가 풀 위를 껑충껑충 뛰어가는군요.
그때 이야기꾼의 아내와 집에서 기르던 개가 나타나, 토끼를 몰아내기 위해 쫓아다녔습니다. 하지만 들판에는 높은 담이 빙 둘러쳐져 있어서 토기는 밖으로 달아날 수가 없었습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른 토끼가 개를 피해 달아나는 모습을 보면서 이야기꾼의 아내와 거지는 매우 즐거워했어요. 토끼는 마침내 자기 아내의 품으로 뛰어들었지만, 아내는 다시 그를 내쫓았지요. 그러자 개가 날카로운 이빨로 토끼를 물더니 거지가 그만하라고 호령할 때까지 흔들어 댔어요. 다시 거지가 마술 지팡이를 휘두르자, 이야기꾼은 어느새 사람이 되어 숨을 헐떡거리며 서 있었습니다. “그래, 기분이 어떤가?” 거지가 물었어요. “다른 사람들이야 재미있는 구경거리였겠지. 난 절대로 다시는 ㄴ이런 일을 당하고 싶지 않소. 그런데 대체 당신은 어디서 온 사람이오? 나같이 불쌍한 늙은 남자 놀리는 걸 그렇게 좋아하는지 알고 싶소.” 이야기꾼은 이렇게 말하고 사나운 눈으로 부인을 노려보았습니다. “오! 나는 아주 특이하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건달이야. 하루는 부자였다가 하루는 가난뱅이고, 하지만 자네가 나에게 대해서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나와 함께 떠나세. 그러면 어쨌든 여기 머무는 것보다는 똑똑해질 테니까!”
“당신 좋을대로 하시오!” 그러자 거지는 위옷 호주머니에서 잘생긴 중년 남자를 꺼내더니 그 남자에게 말했어요. “네가 이 호주머니 안에서 뭘 듣고 뭘 봤든 상관없이, 이제부터는 이 부인과 말을 보살피도록 해라. 내가 보고 싶을 때면 언제든지 볼 수 있도록 말이야.”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모든 것이 사라졌고, 이야기꾼은 어느새 오도넬 영주의 성 앞에 서 있었습니다. 이야기꾼은 모든 걸 볼 수 있지만, 정작 자신의 모습은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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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도넬 영주는 커다란 홀에 앉아 있었습니다. 푸짐하게 차려 놓고, 먹고 마시는 중이었지요. 그때 문지기가 와서 성 밖에 거지가 있다고 알렸습니다. 오도넬 영주는 그 거지를 데려오라고 했지요. 오도넬 영주 앞에 나타난 거지는 너덜너덜한 신발을 신고, 구멍 뚫린 모자를 쓰고, 손에는 지팡이를 들고 있었습니다.
“안녕하셨습니까? 오도리 나리.” 말라깽이 백발거지가 인사했습니다. “어디서 오는 길인가?” “저는 이 세상의 가장 머나먼 강, 하얀 백조가 날고 있는 머나먼 계곡, 차가운 산 위의 밤에서 왔습니다.” “긴 여행을 한 모양이로군. 그렇다면 도중에 뭔가 배운 게 있겠지.” 오도넬 영주가 말했어요. “저는 요술쟁이입니다. 제게 은돈 다섯 냥만 주시면 제 재주를 보여드리겠습니다.” 거지가 말했어요. 영주가 좋다고 허락하자 거지는 짤막한 지푸라기를 손바닥에 올려놓았습니다. “제가 가운데 있는 지푸라기를 불어서 날리겠습니다. 양쪽 지푸라기는 그대로 있을 겁니다.””설마, 말도 안 돼.” 주위 부하들이 입을 모아 말했어요. 그러나 거지는 바깥쪽의 두 지푸라기 위에 손가락을 올려놓고, 가운데 지푸라기를 후~ 불어 날렸습니다. “그거 재미있는 속임수로군.” 오도넬 영주는 약속한 돈을 주었지요.
“그 반만 주시면 저도 똑같은 재주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부하 중 한 젊은이가 외쳤어요. “그렇게 하도록 해 주시지요, 오도리 나리.”말라깽이 백발 거지가 말했어요. 젊은이는 지푸라기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바깥쪽 지푸라기 두 개를 손가락으로 누른 뒤, 거지가 했던 것처럼 가운데 지푸라기를 불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지푸라기뿐만 아니라 젊은이의 오른손까지 몽땅 날아가 버린 것이었어요. “서툰 재주에는 불행이 따르는 법이지.” 영주가 말했습니다.
“여섯 냥을 주시면 다른 재주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영주가 허락하자 거지는 자신의 두 귀 중에 다른 쪽 귀는 전혀 움직이지 않고 한쪽 귀만 움찔거려 보이겠다고 했지요. 영주가 이것을 믿지 못하자, 그는 왼손으로 오른쪽 귀를 잡아 팔락거렸습니다. 오도넬 영주는 크게 웃으며 돈을 주었어요. “그것도 마술이라는 거요? 아무나 할 수 있는걸. 젊은이가 다시 외쳤어요. 젊은이가 손가락으로 귀를 잡고 거지 흉내를 내려고 하자, 귀가 그만 뚝 떨어져 손에 들려 있었습니다. “서툰 재주에는 불행이 따르는 법이야.” 오도넬 영주가 말했어요. “자, 나리. 지금까지 몇 가지 재주를 보여 드렸습니다만, 이제 같은 값으로 아주 특별하고 재미있는 마술을 보여 드리지요.” “돈은 얼마든지 주겠네.” 오도넬 영주가 말했습니다.
말라깨이 백발 거지가 겨드랑이 사이에 끼고 있던 주머니에서 실뭉치를 꺼내 하늘로 던지자, 금세 사다리가 생겨났어요. 그러자 그때 갑자기 거지의 손에 난데없이 토끼가 들려 있고, 그 토끼는 사다리 위로 올라가지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또 주머니 안에서 개가 한 마리 나오더니, 토끼의 뒤를 뒤쫓기 시작했지요. “여기 누구, 토끼하고 개를 쫓아 올라갈 사람 없소?” 거지가 물었어요. 그동안 손과 귀가 다시 붙은 젊은이가 외쳤습니다. “저요! 제가 하죠!” “좋아. 올라가게. 사다리 위로 계속 올라가는 거야. 하지만 경고하네. 내 토끼의 털끝 하나라도 다치게 한다면 자네 목을 날려 버리겠어.”젊은이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토끼와 개를 쫓기 시작했습니다. 거지가 잠시 젊은이를 올려다보더니 소리쳤어요. “개는 토끼를 잡아먹었고, 우리 젊은 친구는 잠이 들었군.” 그 소리가 끝나자마자 젊은이가 잠이 든 채 공중에서 흔들리며 떠다녔습니다. 그리고 뒤이어 토끼를 물고 있는 개가 나타났어요. 그때 갑자기 거지가 칼을 꺼내 젊은이의 목을 베었습니다. 개도 마찬가지 신세가 되었어요. “이건 재미없어.” 오도넬 영주가 말했습니다. “젊은이와 개가 내 집 안에서 죽다니. 그건 나를 화나게 만드는 일이야.” “하나 앞에 은돈 다섯 냥씩만 주시죠. 그러면 머리들은 전에 있던 그 자리에 다시 붙을 겁니다. 거지가 말했어요. “좋아.” 오도넬 영주가 외쳤어요. 은돈이 다섯 냥씩 두 번 건네지고 나자, 휴~~. 개와 젊은이의 머리가 다시 붙었습니다.
개와 젊은이들은 그 후에 아주 오랫동안 살았지만 개는 절대로 토끼를 뒤쫓지 않았고, 젊은이는 언제나 눈을 크게 뜨고 깨어 있으려 애를 썼다네요.
이 마술이 끝나자마자 거지는 사라져 버렸습니다.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답니다.
한편 라인스터 왕은 먹고 마시기에도 지친 나머지, 축 처진 채 앉아있었습니다. 이제 이야기꾼의 이야기를 들을 시간이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이야기꾼이 나타나지 않는 거예요. “아니, 이야기꾼이 왜 나타나지 않는 거야.” 이야기꾼 대신 이야기할 사람을 찾아보아라.” 왕은 신하에게 명령을 내렸어요. 신하는 왕의 명령대로 사람을 찾아 나섰는데 누구를 만났을까요? 다른 사람도 아닌, 바로 그 말라깽이 백발 거지였답니다. 마음이 급했던 신하는 거지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이봐, 자네. 폐하께 이야기를 들려 드리지 않겠나?” “그거 나쁘지 않지.” 거지가 대답했어요. 그리고 옆에 있던 이야기꾼에게 말했습니다. “걱정할 것 없네. 자네는 뭐든지 볼 수 있지만 사람들은 자네 모습을 볼 수 없으니 말이야.”
왕은 요술쟁이가 성 밖에 있다는 소리를 듣고 안으로 들어오게 했어요. “나는 아일랜드에서 가장 뛰어난 하프 연주자가 바로 내 궁전에 있다는 걸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네.” 왕은 이렇게 말하고 손짓으로 음악을 연주하도록 시켰습니다. “저렇게 아름다운 음악을 들어 본 적이 있나?” 왕이 거지에게 물었습니다. “물론이지요.” “수프 냄비 속의 고양이가 저렇게 아우성을 치고 해 질 무렵 하루살이가 저렇게 윙윙거리고, 고약한 늙은 과부가 저렇게 꽥꽥거리지요.” 거지가 대답했어요. 하프 연주자는 자기를 무시하는 말을 듣고 화가 나서 칼을 들고 거지에게 달려들었어요. 하지만 거지를 찌르는 대신 자기 목을 찌르고 말았지요. 이것을 본 왕은 화가 나서 소리 질렀습니다. “이 빌어먹을 요술쟁이라는 녀석의 목을 당장 매달아라. 모두 저 녀석 때문에 생긴 일이다. 이야기를 들을 수 없다면 최소한 내 나라에서 마음 편히 지낼 수는 있어야지!” 병사들이 와서 거지를 잡아 교수대로 끌고 가 대롱대롱 매달아 놓았어요.
하지만 병사들이 성에 돌아와 보니 거지가 의자에 앉아서 태연스럽게 맥주를 마시고 있었어요. 다른 사람도 아닌, 방금 자기들이 매달아 놓은 바로 그 말라깽이 백발 거지가 말이에요. “너는 분명 몇 분 전에 교수대에서 죽었는데, 어떻게 이곳에 올 수 있었지?” 대장이 놀라 소리쳤어요. “내가 자네들을 실망시킨 모양이로군. 아무도 날 안 매달던데.” 거지는 이렇게 말하고는 맥주를 꿀꺽꿀꺽 마셨습니다. 병사들은 다시 교수대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흔들리고 있는 것은 거지가 아니라 왕이 사랑하는 세 동생들이었지요.
대장은 몹시 어리둥절했어요. 그래서 왕에게 달려가 더듬거리며 물었습니다. “폐하,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폐하의 명령대로 틀림없이 그 거지를 매달았는데, 지금 그 작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홀에 앉아 있고, 그 대신 폐하의 세 동생이 교수대에 매달려 있습니다.”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나? 그 거지를 다시 매달아라.”왕이 소리쳤어요. 병사들은 다시 거지를 교수대에 처형하고 돌아왔지요. 그 대신 이번에는 왕의 세 동생뿐 아니라, 왕국에서 가장 솜씨 좋은 하프 연주자까지 매달려 있었습니다.
“도대체 나를 몇 번이나 죽이려는가?” 거지가 빈정거리며 물었어요. “이거야, 원! 썩 꺼져라. 너한테는 이제 진절머리가 나니까.” 대장이 말했습니다. “이제야 좀 철이 드셨군. 도대체 음악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고 사람들을 죽이려고 하다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교수대로 가 보게. 매달렸던 친구들은 아무 탈이 없을 테니까.” 그 말을 남기고 거지는 사라졌습니다.
이야기꾼은 갑자기 자기가 거지를 처음 만났던 곳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옆에는 자신의 마차와 말과 개와 아내도 서 있었습니다. “자네를 더 이상 놀리지 않겠네. 자네 마차와 말과 개와 돈과 부인이 저기 있네. 전부 돌려주지.” 거지가 말했어요. “마차 하고 말하고 개는 고맙소. 하지만 내 돈하고 아내는 당신이 가지시오. “아냐, 당신 돈도 가져가지.” 부인이 한 일에 대해서는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 말게. 자네 부인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어쩔 수가 없었다고? 개를 시켜서 나를 쫓아다니게 하고 날 버리고 늙은 떠돌이 거지에게 가 버렸는데!” “난 생긴 것처럼 그렇게 늙지도 않았고 거지도 아냐. 나는 아누스 폰 브루프라는 요술쟁이일세. 자네는 라인스터 왕에게 오랜 세월 좋은 일을 해 왔지. 그런데 오늘 아침 내 마술사가 자네가 얼마나 어리워하고 있는지 말하더군. 그래서 자네를 도와주기로 했지. 부인으로 말하자면, 내가 자네 몸을 토끼로 만든 것처럼 자네 부인의 생각을 바꿔 놓은 거지. 잊어버리고 용서하게. 부부란 그래야 하는 거야. 그리고 이제는 라인스터 왕이 자네를 불렀을 때 들려줄 이야기가 생기지 않았나.” 이 말을 남기고 거지는 바람처럼 사라져 버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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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왕은 이야기꾼에게 일어났던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듣고 나더니, 밤새도록 배를 잡고 웃었답니다. 그리고 이야기꾼에게 말했어요. 앞으로는 새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더라도 걱정 말라고요. 또 자기가 살아 있는 동안은 말라깽이 백발 거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 줘야 된다고 말이에요.
하부르타식 질문의 예
1. 라인스터 왕은 이야기꾼이 매일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엄청나게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요?
2. 요술쟁이 거지는 왜 이야기꾼을 데리고 여행을 떠났을까요?
3. 요술쟁이 거지의 행동들을 보면서 라인스터 왕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4. 라인스터 왕은 이야기꾼을 다시 만나게 됐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요?
5. 라인스터왕은 왜 이야기꾼에게 새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아도 걱정하지 말라고 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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