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는 한 집안의 계통과 혈통 관계를 기록한 책으로 이영희 작가가 편집한 이야기입니다. 족보를 보면 ‘나’라는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먼 조상으로부터 지금의 부모님까지 이어져 온 것임을 알 수 있지요. 족보를 통해 나의 근원이 무엇인지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시간으로 본다면 족보가 아버지 쪽(적장자) 중심으로만 되어 있다는 점, 조선 시대 신분 사회에서 자신들의 혈통을 내세우고 신분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이용한 점이나 남존여비와 가부장제 등을 강화했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습니다.
족보를 통해 족보의 의미와 문제점을 살펴보고, 오늘날 민주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족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 족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들
1. 집안의 뿌리와 조상의 삶을 알 수 있어요.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대부분 집안마다 족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족보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있지요. 족보에는 씨가 같은 먼 조상부터 시작해서 그 자손들의 이름과 호, 출생과 사망에 관한 기록, 벼슬이나 과거 시험 등 특별한 경력이 나타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배우자 가계에 대한 기록 및 묘지의 위치도 세대순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족보는 한 개인과 그 개인이 속해 있는 핏줄의 역사와 계통을 밝힌 책이지요. 그래서 족보를 보면 집안의 뿌리를 알 수 있고, 조상의 삶을 알 수 있습니다. 누구는 자손을 몇을 두었다든지, 누구와 누구는 몇 촌간이 된다든가, 누구는 아저씨뻘이 된다든가를 훤하게 알 수 있답니다. 족보를 보면 그 집안의 내력을 한눈에 알 수 있는 거지요.
2. 족보의 내용을 다 믿을 수 있는 걸까요?
우리나라에서 족보가 만들어진 것은 아주 오래전의 일입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형태의 족보가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양반 제도가 있던 조선 시대부터라고 합니다. 당시 지배층이었던 양반은 세금도 내지 않고, 병역의 의무도 면제되는 등 온갖 특권을 누렸던 거지요. 또한 양반이란 신분은 계속해서 자식으로 이어졌습니다. 한번 양반으로 태어나면 죽을 때까지 양반이고, 한번 상민으로 태어나면 죽을 때까지 상민으로 살아야 했던 거지요. 자연히 양반들은 족보에 관심이 많았고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족보를 만들어 집안의 고귀한 혈통을 드러내고 권세를 내세우려고 했어요. 양반들은 자기보다 낮은 벼슬 집안이나 벼슬을 하지 못한 일반 백성들과 차이를 두어 자신들의 신분을 구분하는 문서로 족보를 이용했습니다.
이렇게 하다가 양반 제도가 무너지고 신분 제도가 흔들렸던 조선 후기에는 조선 전기와 달리 마음대로 족보를 만드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족보를 통해 조상을 극단적으로 미화하고, 조상의 벼슬을 지나치게 부풀리거나 조작했지요. 심지어 명문 집안의 족보를 사고 팔거나 훔치는 경우도 있었답니다. 게다가 1894년 갑오개혁으로 천민도 양반처럼 호적을 가질 수 있게 되자, 일반 백성 중에는 신분을 숨기고 양반의 족보를 구해 양반 행세를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퐁조가 유행처럼 번지면서 족보를 사고 팔기도 하고, 남의 족보에 자기 이름을 올려 유명한 사람의 자손처럼 행세하기도 했습니다. 족보를 만드는 가장 큰 이유는 조상을 섬기고 자손 간에 화목하기 위한 것이지요. 그러나 실제로는 이처럼 양반 행세를 하기 위해 자신의 조상을 버리는 등 원래 뜻과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3. 여자는 조상이 필요 없을까요?
처음 족보를 기록할 때는 남자와 여자 구별이 없었답니다. 그래서 족보에는 천손은 물론이고 외손이나 사위의 내력도 대대손손 기록하였습니다. 아들딸을 올리는 순서도 태어난 순서대로 즉, 나이 순으로 기록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조선 시대를 거쳐 내려오면서 많이 달라졌습니다. 당시 지배층이었던 양반들은 아버지 쪽 중심의 가족 질서와 유교적인 사회 질서를 만들어 가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그 과정을 거치면서 여성은 많은 제약을 받게 되었지요. 여성은 오직 집안에서 남편을 받들거나 집안을 다스리는 역할만 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족보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족보는 점차 아버지 쪽 계보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족보에 이름을 올릴 때도 태어난 순서와 상관없이 언제나 아들을 먼저 기재하였습니다. 심지어 딸의 이름을 올리지 않고 대신 사위의 이름을 기재하는 경우도 많았지요.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이름이 올려지지 않거나 나이 어린 남자 형제보다 뒤에 올려진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 당시 족보를 보면 어머니 쪽에 대해서는 그 계통을 따져볼 수가 없습니다. 뿌리를 알고 조상을 공경하자고 만들어진 족보가 오히려 조상의 한 축인 여성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천하게 여기고 차별하는 ‘남존여비’ 사상을 전파하는 도구로 스였던 것입니다.
4. 오늘날 족보는 우리에게 무엇일까요?
오늘날 우리 사회는 양반 제도가 있었던 조선 시대 같이 신분 사회가 아닙니다. 족보가 갖는 의미도 옛날처럼 그리 크지는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족보가 있는지조차도 모르는 경우가 있지요. 그렇다고 보니 족보가 의미없는 것은 아닙니다. 족보는 한 개인의 뿌리를 알 수 있는 자료일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귀중한 역사 자료입니다. 그러므로 잘 보존하고 연구해야 하겠지요. 조선 후기에 많이 생겨난 거짓 족보들도 양반 사회가 무너져 가는 한 단면을 알 수 있는 자료이므로 보존할 가치가 있습니다. 또 우리는 족보를 통해서 조상의 업적을 알게 되고 그 조상을 본받아서 자기도 훌륭한 인물이 되겠다는 생각을 갖기도 합니다.
그런데 족보는 조선 시대와 같이 오늘날에도 자신의 신분을 과시하고 사람을 차별하는 풍조를 낳기도 합니다. 무슨 파, 몇 대 손이라는 출신이 개인의 능력을 대신하는 신분증 역할을 하는 것이죠. 이는 개인의 평등과 자유를 추구하는 민주 사회에서는 걸림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조상이 훌륭하면 그 자손도 훌륭한 사람으로 여기기보다 실력에 의해 개인의 능력을 평가하고 그 능력에 맞는 사회적 지위와 기회가 주어져야 합니다.
꼭 족보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조상을 기리고 그 정신을 본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굳이 족보를 만들어 조상을 기리겠다면 아버지 쪽, 어머니 쪽 구분하지 않고 기재하고, 평소에도 쉽게 접할 수 있게 나를 중심으로 간단한 조상의 계보를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족보를 만드는 것 자체보다 조상들이 후손들에게 베풀어 준 은덕을 알고, 그 정신을 이어가도록 노력하는 것이 더 중요할 것 같습니다.
하부르타식 질문의 예
1. 족보는 무엇일까요>
2. 조선 후기 시대의 사람들은 왜 그렇게 족보를 중요하게 생각했을까요?
3. 오늘날 족보는 왜 우리에게 중요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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