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이스라엘과 미국은 중거리 미사일 방어 시스템을 완성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중거리 미사일 방어 시스템이란 날아오는 미사일을 공중에서 요격하는 방어 무기 시스템입니다. 이 시스템을 개발한 이유는 물론 이스라엘 주변 아랍 국가들의 공격으로부터 이스라엘을 방어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미사일 방어 시스템 명칭이 ‘다윗의 물맷돌’이라는 사실입니다. 다윗이 누구인지, 물맷돌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이들은 흔치 않을 것입니다. 다윗은 3000여 년 전 예루살렘에 이스라엘 왕국을 건설한 유대 왕이고, 물맷돌은 그가 ‘중2’ 정도 되는 나이 때 적군 대장인 골리앗을 쓰러뜨렸던 휴대용 짱돌 발사 무기입니다.
양치기 소년 다윗은 이스라엘과 필리스티아 군대가 싸우고 있는 전장으로 심부름을 갔습니다. 애초에 싸움은 전력 면에서 비교가 안되었습니다. 필리스티아 군대는 최신식 청동 무기로 무장했으며, 병력 규모도 이스라엘군보다 훨씬 더 많았습니다. 더 놀라운 건 필리스티아 군대에 키가 3m나 되는 장수 골리앗이 있었다는 사실이지요. 골리앗은 이스라엘 병사들 앞에 나와 대 놓고 이스라엘이 받드는 하느님을 능멸하는 발언으로 이스라엘 군대에 모욕감을 안겨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모욕을 당하면서도 이스라엘 병사들은 누구 하나 나서서 대적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골리앗을 무서워했으니까요.
그때 그곳으로 심부름을 갔던 다윗이 나섰습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상황, 그러나 철없는 하룻강아지는 용감하게 호랑이를 향해 돌팔매를 날렸습니다. 날아간 돌은 골리앗의 이마에 정확히 명중되었습니다. 골리앗이 쓰러지자 다윗은 잽싸게 3m 짜리 거인에 올라타 칼로 골리앗의 목을 찔렀습니다. 이것으로 전세는 역전되고 다윗은 유대 민족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은 도저히 상대할 수 없을 것 같은 강적을 용감하게 싸워 이긴 승리를 상징하는 용어로 쓰입니다.
구약 성경에 나오는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에서 골리앗이 속한 필리스티아라는 나라가 오늘날의 아랍 민족인 팔레스타인이며 다윗의 유대가 바로 이스라엘입니다. 2014년 이스라엘이 미사일 방어 시스템에 다윗의 물맷돌이라는 이름을 붙인 건 이러한 역사적 염원 때문입니다.
뒤바뀐 다윗과 골리앗
3000년 유대인 다윗과 필리스티아 사람 골리앗이 싸운 것처럼, 오늘날에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싸움은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전쟁의 원인은 민족, 영토, 종교 경제 문제 등이 얽혀 있어 3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대단히 복작하고 단단하지만, 달라진 건 서로의 위치입니다. 3000년 전에는 필리스티아, 즉 팔레스타인이 휠 씬 우세했지만 오늘날에는 이스라엘에 오히려 골리앗처럼 강합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오래되고 복잡한 싸움의 시작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모세가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유대 민족(히브리인)을 이끌고 가나안이라 불리는 팔레스타인 지방에 정착한 이야기부터,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이야기, 그리고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에 정복당한 이야기까지 해야 하지만, 거기까지 가다보면 너무 오래되고 복잡해 숨 가쁠 지경이 됩니다.
따라서 오늘날 지구촌 최대 분쟁 지역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을 명료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로마의 정복 시대와 그로부터 2000년이 지난 1948년을 주목해야 합니다.
기원전과 서기의 경계를 가르는 예수, 예수가 이스라엘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뒤 로마 통치 아래에서 이스라엘 땅에서 유대인들이 폭동을 일으켰습니다. 로마 제국은 유대인 폭동을 무력으로 진압했지요. 그러고 나서 이스라엘 땅에 살던 모든 유대인을 그곳으로부터 추방했습니다. 이때부터 유대인은 2000여 년 동안 떠돌이 신세가 되어 지구촌 곳곳에 뿔뿔이 흩어져 살게 됩니다.
나라 없는 민족의 설움을 우리도 모르지 않습니다. 일제 강점기 36년 동안 우리는 나라 없는 고통을 겪었지요. 그러나 2000여 년 동안 떠돌이 신세가 되어 지구촌 곳곳에 뿔뿔이 흩어져 살게 되었습니다.
나라없는 민족의 설움을 우리도 모르지 않습니다. 일제 강점기 36년 동안 우리는 나라 없는 고통을 겪었지요. 그러나 2000년 동안 나라 없이 떠돌며 냉대받고 살아온 유대인의 고통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유대 민족은 그렇게 2000년을 살아가면서도 자신들은 하느님이 택한 백성이며 언젠가 자신들의 나라인 이스라엘로 돌아갈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꿈은 제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고 있던 20세기 초에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중 영국은 유대인들에게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나라를 세울 수 있게 해 준다고 약속합니다. 이러한 영국의 이중 플레이는 오늘날까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의 불씨가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영국의 지원 아래 삼삼오오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전체와 주변을 포함하는 지역)으로 들어갑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히틀러에게 600만 명의 유대인이 죽임을 당하자 유럽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이 속속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몰려 갔습니다. 그러자 그곳에서 2000년 넘게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당황스러워했습니다. 껄끄러운 유대 민족 사람과 이웃하고 살라니 불만이 많았던 것입니다. 그런 불만이 때론 두 민족 간에 충돌로 나타났습니다. 유엔은 결국 예루살렘을 동서로 나누어 서예루살렘에는 유대인이 살게 해 주고 동예루살렘에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도록 교통정리를 해 주었습니다. 이 조치에 대해 유대인들은 적극 환영했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강력하게 반발했습니다.
이스라엘 건국과 함께 중동 전쟁 시작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의 충돌은 1948년 5월 14일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나라인 이스라엘을 건국하면서 시작됐습니다. 이스라엘이 건국을 선포하자 주변의 아랍 국들은 축하 메시지 대신 선전 포고를 날렸습니다. 이로써 다윗의 자손인 유대인과 골리앗의 후예인 팔레스타인 민족의 대결, 유대교와 무슬림의 대결, 유대교와 무슬림의 공동 성지인 예루살렘을 차지하기 위한 그들의 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의 싸움은 이스라엘 건국 해인 1948년부터 1973년까지 모두 네 차례 벌어졌는데, 이 네 차례의 충돌을 중동 전쟁이라 부릅니다. 크게 보면 중동 전쟁은 2000년 동안 지구촌을 떠돌던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지역에 들어오면서부터 시작됐지만, 네 차례의 전쟁에는 각각 다른 원인이 있습니다.
1948년 5월 16일 시작된 제1차 중동 전쟁은 이스라엘 건국이 직접적인 원인이 됐습니다. 이스라엘이 건국을 선포하자 주변의 맹수인 아랍 5개국, 즉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 레바논, 이라크는 즉각 전쟁을 선포하고 이스라엘을 공격했습니다. 아랍 연맹국의 공격을 힘겹게 방어하던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의 최대 우방국인 미국의 지원을 받아 예상을 깨고 승리했습니다.
제1차 중동 전쟁 승리로 이스라엘은 비록 많은 병사들을 잃었지만 그보다 더 큰 것을 얻었습니다. 영토를 두 배로 늘렸고, 이스라엘에 살던 팔레스타인 사람 수십만 명을 추방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난 제1차 중동 전쟁을 이스라엘 독립 전쟁이라 부릅니다.
제1차 중동 전쟁이 끝난 지 8년 뒤인 1956년 아랍 연맹국과 이스라엘은 다시 한번 전쟁을 벌입니다. 계기는 이집트의 수에즈 운하 문제였어요. 1952년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한 이집트의 나세르는 소련과 친선 관계를 유지하며 1차전 패배를 설욕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한다고 선언한 뒤 그곳을 점령했습니다. 그러자 지중해 건너에 있는 영국과 프랑스가 즉각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수에즈 운하는 홍해에서 지중해를 연결하는 유럽과 아시아의 최단거리 항로였기에 그곳에 봉쇄되면 영국과 프랑스 경제에 타격이 심해질 게 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 폭격기가 수에즈 운하 상공으로 출격하자 이스라엘도 두 나라와 동맹을 맺고 전쟁에 뛰어들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가 이집트 영토인 시나이 반도를 침공하자 이집트와 주변 아랍국들이 연합 전선을 형성해 반격에 나섰습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이 전쟁에 휩싸이자 당황한 건 미국과 소련이었습니다. 미국과 소련은 각각 이스라엘과 이집트를 지원했는데, 전쟁이 계속되면 제3차 세계대전으로 확대될 것을 염려했습니다. 그래서 양쪽에 전쟁을 끝내라고 압력을 가했습니다.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 3국 군대가 이집트 영토에서 철수하면서 두 번째 중동 전쟁이 끝이 났습니다. 이번에도 이스라엘의 승리였지요. 수에즈 운하 문제로 촉발된 두 번째 전쟁을 수에즈 위기라고 부릅니다.
팔레스타인 지방에 다시 한번 전쟁의 불길이 솟아오르기 시작한 건 제2차 중동 전쟁이 끝나고 11년이 지난 1967년이었습니다. 이번 전쟁은 또 왜 벌어진 걸까요?
제2차 중동 전쟁이 끝난 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무장 단체를 조직해 게릴라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작은 영토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지만 미국의 지원 등으로 그 힘은 이미 골리앗 수준이 되었습니다. 그에 대한 대항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게릴라 작전을 펼치기 시작한 것입니다. 팔레스타인 출신의 무장 단체가 이스라엘을 공격하자 이스라엘은 게릴라의 거점인 시리아를 폭격했습니다. 이에 아랍국의 맹주였던 이집트의 나세르는 아랍국의 결속을 강화하고, 제2차 중동 전쟁의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 이스라엘과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1967년 6월 5일, 이집트군이 시나이 반도를 향해 밀고 들어가고, 시리아도 남으로 밀고 내려와 골란 고원을 점령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이스라엘은 개전 초기의 패배를 역전시킬 효과적인 작전을 들고 나왔습니다. 그것은 미국의 지원을 받은 대대적인 공습, 기지를 출동한 이스라엘 공군 폭격기는 이집트 공군 기지를 맹폭했습니다. 이 공습으로 이집트 전투기 300여 대가 파괴되었습니다. 이스라엘 공군은 이어 시리아와 요르단과 이라크 공군 기지를 차례로 공습해 400대가 넘는 전투기를 파괴시켰습니다. 이로써 아랍 동맹국의 공군은 전멸하다시피 했습니다.
6일 전쟁이라고도 불리는 제3차 중동 전쟁도 이스라엘의 완벽한 승리였습니다. 이 전쟁 뒤 이스라엘과 아랍국의 군사력은 역전되었고, 이스라엘은 동예루살렘이 포함된 요르단 강 서안 지구와 이집트 영토였던 시나이 반도를 획득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무엇보다 큰 제3차 중동 전쟁의 성과는 동예루살렘을 점령한 것이었습니다. 동예루살렘은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 공통의 성지로 이스라엘이 가장 욕심을 냈던 지역입니다. 동예루살렘을 점령한 이스라엘은 그곳에 살던 팔레스타인 사람을 몰아내고 이스라엘 정착촌을 건설하기 시작했습니다. 정착촌 건설은 지금까지 계속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불씨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제4차 중동 전쟁,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분쟁의 끝?
엿새 동안 벌인 전쟁이라고 6일 전쟁으로 불리는 제차 중동 전쟁이 끝난 지 6년 만인 1973년, 네 번째 중동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이번엔 무슨 이유로 이스라엘과 아랍국이 전쟁을 벌였을까요?
이집트는 거듭된 패배에 자존심이 몹시 상했습니다. 그래서 시리아와 손잡고 또다시 이스라엘을 침공하기로 결정했지요. 1973년 10월 6일은 이스라엘의 종교 축제인 속죄의 날(욤 키푸르)이었습니다. 유대인들 모두 자신의 죄를 사함 받기 위해 기도를 올리고 하느님께 예배를 드리는 그날에 이집트 군대는 수에즈 운하를 건너고, 시리아 군대는 골란 고원으로 진격해 들어갔습니다.
단단히 벼르고 시작한 전쟁이어서인지 몰라도 이집트 군대는 개전 48시간 만에 시나이 반도를 점령했습니다. 이스라엘 군대는 궤멸 직전에 이르렀고, 이집트와 시리아의 승리가 코앞에 다다른 듯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이스라엘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미국의 지원을 받은 이스라엘 군은 대대적인 반격에 나서 이집트와 시리아에 내주었던, 그러나 원래 이집트와 시리아 영토였던 시나이 반도와 골란 고원을 되찾았습니다.
대속죄일 전쟁(욤 키푸르 전쟁)이라 불리는 제4차 중동 전쟁에서도 이스라엘은 극적으로 승리해 또다시 영토를 크게 늘렸습니다. 이스라엘은 1948년 건국과 동시에 시작한 중동 전쟁에서 모두 승리해 전쟁이 끝난 1973년에는 영토가 무려 다섯 배로 늘어났습니다.
네 차례의 중동 전쟁이 모두 끝나자 이집트와 이스라엘은 미국의 중재로 평화 협정을 체결했습니다. 평화 협정에 따라 이스라엘은 원래의 이집트 영토였던 시나이 반도에서 철수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 중동 전쟁의 불씨는 모두 사그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평화 협정에도 불구하고 아랍의 무장 단체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저항을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에 점령당한 모든 팔레스타인의 해방’을 목표로 오늘날까지도 이스라엘을 겨냥한 미사일의 발사 각도를 변경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런 이유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은 수십 년째 지속돼 왔고, 앞으로도 지속될 것입니다.
*제2차 중동 전쟁의 발단이 된 수에즈 운하
수에즈 운하는 지중해와 홍해 사이를 잇는 운하입니다. 이집트 주재 프랑스 공사가 이집트를 설득해 공사를 시작한 지 16년 만인 1896년 개통됐습니다. 총길이는 192킬로미터로 서울에서 대전까지의 거리보다 조금 더 깁니다. 현재 이집트에서 관리하고 있으나 주권을 미치지는 못합니다. 수에즈 운하 건설은 3000여 년 전 고대 이집트에서 이미 시도했었습니다. 완성을 했던 시기는 이집트를 정복한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왕 때였어요. 이후 진흙이 덮쳐 운하가 막혔고, 고대 그리스와 로마, 이슬람 시대에도 간간이 개통되긴 했지만 긴 시간 막혀 있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1956년 이집트가 운하를 국유화하자 영국과 프랑스가 즉각 군대를 파견했습니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분쟁의 불씨, 동예루살렘
동예루살렘은 현재 국제법상으로 이스라엘 영토가 아닙니다. 그 지역은 원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던 지역이었습니다. 그런데 제3차 중동 전쟁에 승리한 이스라엘이 그곳을 점령한 이후로 팔레스타인 사람을 몰아내고 유대인 정착촌을 건설해 물의를 빚고 있습니다. 동예루살렘은 유대교와 이슬람교의 공동의 성지로 두 세력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지역입니다. 2010년 이스라엘 총리는 “3000년 전 다윗이 예루살렘 도시를 건설했고, 지금도 건설 중에 있다.”며 “예루살렘은 그 누구와도 나눠 가질 수 없는 유대인의 영원한 수도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도 동예루살렘에 자신들의 수도를 건설하겠다며 맞불을 놓았습니다.
*전쟁 이후의 역사: 끝나지 않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
이스라엘은 3000년 전 다윗이 세운 유대 왕국이 영광을 재현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팔레스타인 지방으로 들어왔고, 그 때문에 수천 년 동안 그곳에서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 쫓겨났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의 직접적인 원인입니다.
이스라엘은 네 차례의 전쟁에 승리해 영토를 다섯 배 이상 늘렸는데, 이스라엘의 영토가 늘어난 만큼 팔레스타인 사람의 땅은 줄어들었습니다. 현재 이스라엘 국민의 80퍼센트는 유대인이고 20퍼센트는 팔레스타인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쫓겨나지 않고 버티며 살고 있는 20퍼센트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를 수립해 지중해에 접한 가자 지구와 요르단 강 서안 지구에 살고 있습니다.
하느님이 약속한 가나안 땅(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지역)을 온전히 그들의 영토로 삼으려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자신들의 나라를 세우려는 팔레스타인 사람의 싸움은 중동 전쟁이 끝나고도 40년 넘게 이어져 왔습니다.
독립국인 팔레스타인을 수립하려는 목표로 결성된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PLO)는 전투와 자살 폭탄 테러, 요인 납치와 암살 등의 테러 활동으로 이스라엘에 맞서 왔습니다. 그러다가 1993년 이스라엘과 평화 조약을 체결했습니다.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게 조약의 핵심 내용이었지요. 이에 따라 무장 단체만 있고 나라는 없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1994년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를 수립했습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장치 정부 수립 이후에도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거주 지역인 가자 지구를 공격해 이팔 분쟁은 여전히 진행 중에 있습니다.
오늘날 이스라엘에 저항해 가장 강력하게 싸우고 있는 단체는 팔레스타인 저항 운동 단체인 하마스입니다. 하마스는 팔레스타인을 대표하는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가 이스라엘과 평화 조약을 맺자 그에 반대해 무장 저항 운동을 더욱 거세게 벌이고 있습니다. 2000년 이후 하마스는 정치에 참여해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가 실시한 총선에서 과반수가 넘는 의석을 차지하며 가장 중요한 단체로 자리잡기도 했습니다.
현재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가 통치하는 요르단 강 서안 지역과 하마스가 통치하는 가자 지구로 나뉘어 있는 상황입니다. 이스라엘은 2000년 이후 8m가 넘는 분리 장벽과 철조망을 설치해 가자 지구를 봉쇄했습니다. 이 때문에 그 지역에 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경제적인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골리앗이 된 이스라엘과 다윗 처지가 된 팔레스타인의 싸움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어 언제 끝날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전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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