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쥐의 거짓말]은 임제의 [서옥설]이란 원작에서 돋움자리가 발췌한 이야기입니다. [서옥설]에서 큰쥐는 나쁜 짓을 일삼는 탐관오리를, 조왕신은 이들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 무능한 재판관을 표현하고 있지요. 조왕신은 도둑질을 일삼는 큰쥐를 벌하려다, 오히려 큰쥐의 거짓말에 속아 세상이 모든 생물을 옥에 가둡니다. 그러고서도 끝내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여 산신령이 사건을 해결해 줍니다. 이 작품은 조왕신과 같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무능하여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특히 어른들의 권위를 앞세워 잘못된 일을 강요할 경우, 아이들에게 많은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옛날에 몸길이는 커다란 고양이만하고 꼬리가 두 뼘이나 되는 큰쥐가 살고 있었습니다. 큰쥐는 다른 쥐와 무리를 지어 남의 집 부엌에서 음식을 훔쳐 먹고 살았지요. 어느 날, 부엌에서 저녁밥을 짓던 할머니가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참 이상하다. 오늘 저녁에 먹으려고 아껴 둔 고등어 한 토막이 어디 갔지?” 할머니는 찬장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중얼거렸어요. “그놈의 고양이가 물어 간 게야.” 저녁을 먹고 난 할머니는 남은 음식들을 뚜껑으로 꼭꼭 덮어서 찬장에 넣어 두었습니다.
다음 날이었어요. 아침밥을 지으려고 쌀독을 열어 본 할머니는 깜짝 놀랐어요. “아니? 이게 어찌 된 일이야? 쌀이 한 톨도 없잖아? 어제 분명히 한 바가지 정도 남아 있었는데….”할머니는 그만 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찬장을 열어 보았어요. 어젯밤에 뚜껑으로 꼭꼭 덮어 둔 음식들도 감쪽같이 없어졌습니다. “아이구나, 세상에….” 할머니는 기가 막혀 혀를 내둘렀어요. 그러고 보니 선반 위에 올려 둔 감자며 고구마도 보이지 않았어요. 뒤꼍으로 가 보았습니다. 항아리 속에 숨겨 둔 콩이며 팥까지도 몽땅 없어졌지요. “조왕신님이 노하신 게야.” 할머니는 사발에 물을 담아 부뚜막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러고는 그 앞에 허리를 구부리고 서서 간절히 빌었어요. “조왕신님, 조왕신님, 이 늙은이가 잘못한 게 있다면 부디 용서하십시오.” 할머니는 하루 종일 부뚜막 앞에 서서 빌고 또 빌었습니다. 밤이 되자 지친 할머니는 그만 부엌 바닥에 쓰러져 잠이 들고 말았지요.
부스럭부스럭 쪼르르 쪼르르 쪼르르…. 한 무리의 쥐 떼들이 부엌문턱을 넘어 들어왔습니다. 쥐들은 부엌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먹을 것을 찾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이게 뭐야? 오늘은 먹을 것이 하나도 없네?” “잘 찾아봐. 뭐라도 있을 거야!” 쥐들이 찍찍거리며 찬장이고 무뚜막이고 정신없이 돌아다닐 때였어요. “네 이놈들! 그만두지 못하겠느냐?”갑자기 호령하는 소리에 쥐들은 멈칫하고 놀랐습니다. “누구냐?’ 찬장을 뒤지던 큰 쥐가 돌아보며 물었어요. 부엌 문 앞에 수염이 허연 할아버지가 서 있었어요. “나는 이 집 부엌을 지키는 조왕신이다.” “조왕신?”큰 쥐가 새카만 눈을 두릿두릿 굴리며 되물었습니다. “그렇다. 너희들이 매일 밤 이 집 부엌에 와서 먹을 걸 훔쳐 가는 것을 다 보았다. 너희들은 부엌에 쓰러져 잠이 든 저 할머니가 가엾지도 않으냐? 그렇게 남김없이 곡식이며 음식들을 싹 쓸어 가면 저 할머니는 무엇을 먹고살란 말이냐?”
그러자 큰쥐가 시치미를 뚝 떼며 말했어요. “아니, 그게 무슨 말이우? 우리가 뭘 어떻게 했다고 그러시우?””이노옴~. 너희들이 매일 밤 먹을 걸 훔쳐 가는 것을 보았는데도 시치밀 뗄 작정이냐? 네 놈의 무리들을 모조리 잡아 죽이기 전에 어서 바른대로 말해라.” 그러자 큰쥐는 움찔하며 조그만 소리로 자기네는 아무 죄도 없다고 대꾸했어요. 그래서 조왕신은 도대체 쥐들에게 누가 음식을 훔쳐오라고 시켰냐며 호통을 쳤지요.
큰쥐는 어물어물하다가는 곤욕을 치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급한 김에 아무 이름이나 주워 댔어요. 처음에 복숭아꽃과 버들가지가 시켰다고 말했습니다. 큰쥐가 곡식을 훔쳐 오는 것을 보고 좋아서 복숭아꽃은 좋아서 웃음을 보내고, 버드나무는 춤을 추었다고 했지요. 그러자 조왕신은 복숭아꽃에게 왜 웃음을 보냈느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복숭아꽃은 “조왕신님, 원래 복숭아꽃은 발그레한 볼에다가 늘 웃는 얼굴을 하고 있답니다. 큰쥐와는 상관이 없지요. 그리고 저희들은 곡식을 먹고살지 않습니다. 햇빛과 물을 먹고살고 있지요.”라고 대답했어요. “듣고 보니 너희 말이 옳구나. 그러나 저 큰쥐에게 음식을 훔쳐 오라고 시킨 놈이 누군지 확실히 밝혀 내기 전에는 너희들을 내보낼 수 없다. 그때까지 옥에 가둬 두겠다.”
조왕신은 매서운 눈으로 큰쥐를 노려보며 말했어요. “참으로 허무맹랑한 놈이로구나. 자, 어서 바른 대로 대라. 너에게 곡식을 훔쳐 오라고 시킨 놈이 누구냐?” 큰쥐가 머뭇거리자 조황신은 소리를 버럭 질렀습니다. “어서 말하지 못하겠느냐? 그렇지 않으면 당장 저 아궁이 속에다 던져 버리겠다.” 큰쥐는 놀라서, “사실은 달팽이와 개미입니다. 제가 음식을 나를 때, 담벽 밑을 파는데 흙이 팍팍해서 잘 파지지 않았어요. 그런데 달팽이가 침을 흘려서 흙을 흠뻑 적셔 주어 쉽게 팔 수가 있었습지요. 그리고 파 놓은 흙 속에 빠져 버둥거릴 때 개미 떼가 나타나 순식간에 흙을 날라다 주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조왕신은 당장 달팽이와 개미를 잡아들여 물었지요. 달팽이에게 큰쥐가 훔쳐가는 것을 도와주었느냐고 다그치자 달팽이는 “저는 원래 침을 많이 흘리는 족속인지라 항상 몸이 이렇게 축축합니다.”라고 고개를 저으며 말했지요. 그리고 개미도 자기는 큰쥐가 흙 속에서 빠져 버둥거릴 때 도와준 적이 없다고 두 손을 저으며 말했어요. 하지만 조왕신은 훔친 놈을 잡을 때까지 달팽이와 개미도 감옥에 가두고 말았습니다.
조왕신이 또 큰쥐의 뒤를 캐묻자 큰쥐는 개똥벌레와 닭이 도와주었다고 말했어요. “제가 캄캄한 밤에 음식을 나르자 개똥벌레가 불을 밝혀 주었지요. 그리고 닭은 새벽에 홰를 쳐 사람이 오는 것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조왕신은 이번에 개동벌레와 닭을 잡아들였어요. 이런 식으로 두견이, 앵무새, 꾀꼬리, 나비, 제비, 개구리, 박쥐, 참새 등등 수없이 많은 짐승들이 끌려왔답니다. 그들 중 누구도 큰쥐를 도와주지 않았지만, 조왕신은 일단 모두 옥에 가두었습니다. 일이 이렇게 되자 큰쥐는 궁리를 하기 시작했어요. ‘땅짐승이며 날짐승까지 모두 저렇게 자기 변명을 잘하여 빠져나가니 이번에는 어리석고 미련한 곤충을 끌어들여야겠다.’ 그래서 벌, 매미, 범아제비, 하루살이, 잠자리, 파리, 모기를 대고, 그것도 안되니 두꺼비, 지렁이, 가재, 게까지 끌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역시 큰쥐하고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조왕신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지요.
조왕신은 큰쥐를 쇠줄로 결박하여 기둥에 거꾸로 달아매고 큰 가마솥에 기름을 펄펄 끓였습니다. 교활한 큰쥐가 계속 거짓말을 하니 큰쥐의 주둥이를 자르고 가죽을 벗긴 후 펄펄 끓는 가마솥에 집어넣어 버리겠다고 호통을 쳤어요. 그러자 큰쥐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눈물을 뚝뚝 흘리는 것이었어요. 큰쥐는 자기가 고한 동물들이 모두 서로 짜고 자기를 곤경에 빠뜨리려고 한다며 아주 나쁜 놈들이라고 비난을 했습니다. 그러자 밖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개와 고양이가 뛰어 들어와 사나운 기세로 큰쥐에게 덤벼들었어요. 큰쥐는 무서워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두 손을 싹싹 빌었습니다. 그제야 큰쥐는 지금까지 자기가 한 말은 모두 거짓이라고 말했지요. 그러니까 여태껏 큰쥐는 조왕신께 거짓을 말한 것이지요. 조왕신은 더욱 화가 나 뜨락에 놓인 댓돌을 들어 큰쥐의 이빨을 부수어 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큰쥐는 깜짝 놀라 펄쩍 뛰면서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습니다. “이럴 수는 없습니다. 하늘과 땅을 밟고 사는 모든 것들은 온갖 곡식이며 음식을 먹을 자유가 있습니다. 나도 이 나라 백성인데 어찌하여 곡식을 먹었다는 죄로 벌을 받아야 한단 말입니까? 조왕신은 어이가 없어할 말을 잃었답니다. 그러자 더욱 기세가 등등해진 큰쥐가 말을 이었어요. “저는 잘못이 없습니다. 저를 놓아주십시오.”
조왕신은 이런 못된 짐승을 만들어 낸 산신령을 원망하였어요. 그래서 큰쥐를 옥에 가두고 산신령께 이 사연을 말했습니다. “흐음, 정말 못된 짐승이로고….”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산신령은 잠시 생각하더니 마침내 분부를 내렸어요. “우선 옥에 갇힌 죄 없는 짐승들은 모두 풀어 주어라. 그리고 큰쥐와 그 무리들을 모조리 잡아들여 죽을 때까지 일을 시키도록 하여라. 일을 안 하면 먹을 것을 주지 마라. 또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개와 고양이에게 곡식을 지키게 하라.” “네, 알겠습니다.”조왕신이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그리고 조왕신은 듣거라. 너는 어찌하여 큰쥐의 말만 듣고 죄 없는 짐승들을 잡아 가두었느냐? 재판이란 억울한 자가 없도록 해야 하는 것이며 억울한 자가 없도록 하기 위해서는 윗사람이 현명해야 하느니라. 너같이 무능한 자가 어찌하여 그런 큰일을 할 수 있단 말이냐?” 산신령이 이렇게 호되게 꾸짖자 조왕신은 부끄러워 얼굴을 들지 못했지요.
이렇게 하여 감옥에 갇힌 짐승들은 모두 풀려 나왔고, 쥐 무리들은 평생 일만 해야 하는 신세가 되었답니다.
하부르타식 질문의 예
1. 조왕신은 왜 버드나무와 복숭아꽃이 죄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옥에 가두었을까요?
2. 큰쥐는 왜 어리석고 미천한 곤충들을 끌어 들었을까요?
3. 큰쥐는 왜 잘못이 없으니 놓아 달라고 말했나요?
4. 조왕신은 큰쥐에게 벌을 주려다가 다른 죄 없는 짐승들을 옥에 가두었어요. 하지만 산신령은 다른 짐승은 다 풀어주고, 큰쥐와 무리들 잡아들여 죽을 때까지 일을 시켰어요. 산신령은 왜 조왕신과 달리 이런 판결을 내렸을까요?
5. 큰쥐는 모든 동물은 곡식을 먹을 자유가 있다고 말했어요. 그런데 곡식을 먹었다는 죄로 벌을 받아야 하냐며 억울해했습니다. 큰쥐의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6. 산신령은 왜 조왕신을 꾸짖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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