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소와 도깨비]는 28세의 나이로 요절한 작가 이상이 쓴 유일한 동화입니다. 이 작품은 1937년 3월 5일부터 9일까지 매일신보에 연재되었습니다. [황소와 도깨비]에는 어리숙하고 천진난만한 도깨비와, 소박하고 착한 마음씨를 가진 돌쇠가 등장합니다. 돌쇠는 도깨비의 딱한 처지를 불쌍하다 여기고, 황소 배 속에서 살도록 허락해 주지요. 그러자 도깨비는 이에 대한 보답으로 돌쇠를 잘 살게 해 줍니다.
이 이야기는 남을 도와주면 복을 받은 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또한 도깨비가 황소 배 속에 들어갔다가 하품할 때 간신히 빠져나오는 대목에서는 다른 도깨비 이야기와 다른 참신함과 기발함을 엿볼 수 있지요. 이야기를 읽고 할머니가 들려주시던 도깨비 이야기와 어떤 점이 다르고, 또 어떤 점이 비슷한지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어떤 산골에 돌쇠라는 나무 장수가 살고 있었습니다. 나이 삼십이 되어도 아직 장가도 못 가고 또 부모도 일가친척도 없는 혈혈단신이지요. 그래서 먹을 것이나 있는 동안은 핀둥핀둥 놀다가 정 궁하면 나무를 팔러 나갑니다. 어디서 해 오는지 아름드리 장작이나 소나무를 황소 등에다 듬뿍 싣고 장터나 읍으로 팔러 나갑니다. 아침 일찍이 해도 뜨기 전에 방울 달린 소를 끌고 이려이려… 딸랑딸랑…이려이려. 이렇게 몇십 리씩 되는 장터로 읍으로 팔릴 때까지 끌고 다니다가 해 저물녘이 되어서야 겨우 다시 집으로 돌아온답니다.
그 방울 단 황소가 또 돌쇠의 큰 자랑거리였어요. 돌쇠에게는 그 황소가 무엇보다도 소중한 재산이었답니다. 자기 앞으로 있던 몇 마지기 토지를 팔아서 돌쇠는 그 황소를 산 거지요. 그 황소는 아직 나이는 어렸으나 키가 훨씬 크고 골격도 튼튼하고 털 또한 유난스럽게 고왔습니다. 긴 꼬리를 좌우로 흔들며 나뭇짐을 잔득 지고 텁석텁석 걸어가는 모양은 보기에도 참 훌륭했습니다. 그 동리에서 으뜸 가는 이 황소를 돌쇠는 퍽 아꼈지요.
어느 해 겨울 맑게 갠 날, 돌쇠는 전과 같이 장작을 한 바리 잔뜩 싣고 읍을 향해서 길을 떠났습니다. 읍에 도착한 것이 오정 때쯤이었습니다. 그 날은 운수가 좋았던지 살 사람이 얼른 나서서 돌쇠는 그리 애쓰지 않고 장작을 팔 수 있었어요. 돌쇠는 마음이 대단히 흡족해서 자기는 맛있는 점심을 사 먹고 소에게도 배불리 죽을 먹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잠깐 쉬고 그날은 일찍 돌아올 작정이었지요. 얼마쯤 돌아오는 중에 보니 별안간 하늘이 흐리기 시작하고 북풍이 불더니 희뜩희뜩 진눈깨비까지 뿌리기 시작합니다. 돌쇠는 소중한 황소가 눈을 맞을까 겁이 나서 길가에 있는 주막에 들어가서 두어 시간 쉬었어요. 그랬더니 다행히도 눈은 얼마 아니 오고 그치고 말았습니다. 아직 저물지는 않은 고로 돌쇠는 항소를 끌고 급히 길을 떠났어요. 부지런히 가면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집에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지요. 그러나 짧은 겨울 해는 반도 못 와서 어느덧 저물기 시작했습니다. 날이 흐렸기 때문에 더 일찍 어두웠는지도 모릅니다. 돌쇠는 야속한 하늘을 쳐다보며 황소 등을 쓰다듬으며 길을 재촉했어요. 소도 알아들었는지 딸랑딸랑 뚜벅뚜벅 걸음을 빨리 합니다.
이렇게 얼마를 오다가 어느 산허리를 돌아서려니까 별안간 길 옆 숲 속에서 고양이만한 새카만 놈이 껑충 뛰어나오며 눈 위에 엎드려 무릎을 꿇고 자꾸 절을 합니다. “돌쇠 아저씨, 제발 살려 주십시오.” 처음에는 깜짝 놀란 돌쇠도 이렇게 말을 붙이는 고로 발을 멈추고 자세히 바라보니까 사람인지 원숭이인지 분간할 수 없는 얼굴에, 몸에 비해서는 좀 기름한 팔다리, 살결은 까뭇까뭇하고 귀가 우뚝 솟고 작은 꼬리까지 달려서 원숭이 같기도 하고 고양이 같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개 같기도 했습니다. 돌쇠는 약간 놀라며 대체 누구냐고 물었지요. “제 이름은 산오뚝이예요.” ‘뭐? 산오뚝이?” 그때 돌쇠는 얼른 어떤 책 속에서 본 그림을 하나 생각해 냈습니다. 그 책 속에는 얼굴은 사람과 원숭이의 중간이요, 꼬리가 달리고 팔다리가 길고 귀가 오뚝 일어선 것을 그려 놓고 그 옆에다 도깨비라고 쓰여 있었던 것이었어요. “거짓말 말어, 요놈아.”하고 돌쇠는 소리를 버럭 질렀습니다. “너 요놈, 도깨비 새끼지?” “네, 정말은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산오뚝이라고도 합니다.” “하하하하, 역시 도깨비 새끼였구나!” 돌쇠는 껄껄 웃으면서 허리를 굽히고 물었어요. “그래, 대체 도개비가 초저녁에 왜 나왔으며 또 살려달라는 건 무슨 소리냐?”
도깨비 새끼는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했어요. 한 일 주일 전에 날이 따듯하길래 도깨비 새끼들은 오륙 마리가 떼를 지어 인가 근처로 놀러 나왔더랍니다. 하루 온종일 재미있게 놀고 막 돌아가려고 할 때, 마침 동리의 사냥개한테 붙들려 꼬리를 물리고 말았지요. 겨우 몸은 빠져나왔지만 개한테 물린 꼬리가 반 동강으로 툭 잘려졌기 때문에 여러 가지 재주를 못 피우게 되고 말았어요. 그뿐 아니라 동무들도 다 잃어버리고 혼자 떨어져서 할 수 없이 입때 그 산허리 숲 속에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도깨비에겐 꼬리가 아주 소중한 물건입니다. 꼬리가 없으면 첫째, 재추를 피울 수 없는 고로, 먼 산속에 있는 집에도 갈 수 없고, 배가 고파서 먹을 것을 찾으러 나가려니 사냥개가 무섭습니다. 날이 추우면 꼬리의 상처가 쑤시고 아프고, 그래서 꼼짝 못 하고 일주일 동안이나 숲 속에 갇혀 있다가 마침 돌쇠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살려 달라고 뛰어나온 것입니다.
“제발 이번만 살려 주십시오.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이야기를 마치고 나서 도깨비 새끼는 머리를 땅 속에 틀어박고 두 손으로 싹싹 빕니다. 이야기를 듣고 자세히 보니까 과이 살이 바싹 빠지고 꼬리에는 아직도 상처가 생생하고, 추위를 견디지 못해서 온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어요. 돌쇠는 그 정경을 보고 아무리 도깨비 새끼로 서니… 하는 측은한 생각이 나서, 살려 주기야 어렵지 않다마는 대체 어떻게 해 달라는 말이냐?” 하고 물었습니다.
“돌쇠 아저씨의 황소는 참 훌륭한 소입니다. 그 황소 배 속을 꼭 두 달 동안만 저에게 빌려 주십시오. 더두 싫습니다. 꼭 두 달입니다. 두 달만 지나면 날두 따듯해지고 또 상처두 나올 테구 하니깐 그때는 제 말대루 돌아다닐 수 있습니다. 그동안만 이 황소 배 속에서 살두룩 해 주십시오. 절대루 거짓말 아닙니다. 거짓말을 해서 아저씨를 아저씨를 속이기커녕은, 지가 이 소 배 속에 들어가 있는 동안은 이 소를 지금버덤 열 곱절이나 기운이 세게 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이번 한 번만 살려 주십시오.” 이 말을 듣고 돌쇠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지요. 귀엽고 소중한 황소 배 속에다 도깨비 새끼를 넣고 다닐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렇다고 그것을 거절하면 도깨비 새끼는 필경 얼어 죽거나 굶어 죽고 말 것입니다. 아무리 도깨비라기로 그렇게 되는 것을 그대로 둘 수도 없고, 또 소의 힘을 지금보다 열 배나 강하게 해 준다니 그리 해로운 일은 아니지요.
생각하다 못해 돌쇠는 소의 등을 두드리며, “어떻하면 좋겠니?” 하고 물어보니까 소는 그 말귀를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끄덕끄덕합니다. “그럼 너 허루 싶은 대루 해라. 그렇지만 꼭 두 달 동안만이다.” 돌쇠는 도깨비 새끼를 보고 이렇게 다짐했지요. 도깨비 새끼는 좋아라고 펄펄 뛰면서 백번 치사하고 깡창 뛰어서 황소 배 속으로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돌쇠는 껄껄 웃고 다시 소를 몰기 시작했지요. 그랬더니 참 놀라운 일입니다. 아까보다 열 배나 소는 걸음이 빨라져서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습니다. 할 수 업싱 소 등에 올라탔더니 소는 연방 딸랑딸랑 방울 소리를 내며 순식간에 마을까지 뛰어 돌아왔답니다. 과연 도깨비 새끼가 말한 대로 돌쇠의 황소는 전보다 열 배나 힘이 세어졌던 것입니다.
이튿날부터는 장작을 산더미같이 실은 구루마라도 끄는지 마는지 줄곧 줄달음질을 쳐서 내뺍니다. 그전에는 하루 종일 걸리던 장터를 이튿날부터는 아무리 장작을 많이 실어도 하루 세 번씩을 왕래했습니다. 돌쇠는 걸어서는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어서 새로 구루마를 하나 사서 밤낮 그 위에 올라타고 다녔어요. ‘얘, 이건 참 굉장하다.’하고 돌쇠는 하늘에나 오른 듯이 기뻐했습니다. 따라서 전보다도 훨씬 더 소를 귀하게 여기고 소중히 여기게 되었어요. 자, 이러고 보니 동리에서나 읍에서나 큰 야단이었지요. 돌쇠의 황소가 산더미같이 장작을 싣고 하루에 장터를 세 번씩 왕래하는 것을 보고 모두 눈이 뚱그렜습니다.
그 중에는 어떻게 해서 그렇게 황소의 힘이 세어졌는지 부득부득 알려는 사람도 있고, 또 달라는 대로 돈을 줄 터이니 제발 팔아 달라고 청하는 사람도 있었으나 돌쇠는 빙그레 웃기만 하고 대답도 하지 않았답니다. ‘어쩐 말이냐. 우리 소가 제일이다.’ 그럴 적마다 돌쇠는 이렇게 생각하고 더욱 맛있는 죽을 먹이고 딸랑딸랑 이려이려 하고 신이 나서 소를 몰았습니다. 원래 게으름뱅이 돌쇠입니다마는 이튿날부터는 소 모는 데 그만 재미가 나서 장작을 팔러 다녀서 돈도 많이 모았지요. 눈이 오거나 아주 추운 날은 좀 편히 쉬고 싶었지만 소가 말을 듣지 않았답니다. 첫새벽부터 외양간 속에서 발을 구르고 구슬을 내흔들고, 넘쳐흐르는 기운을 참지 못해 껑청껑청 뜁니다. 그러면 돌쇠는 하는 수 없이 또 황소를 끌어내고 맙니다.
이러는 사이에 어느덧 두 달이 거의 다 지나가고 3월 그믐께가 다가왔습니다. 그때부터 웬일인지 자꾸 소의 배가 불러 오기 시작 했지요. 돌쇠는 깜짝 놀라 틈이 있는 대로 배를 문질러 주기도 하고 또 약도 써 봤지만 도무지 효과가 없었어요.
노인네들에게 보여줘도 무슨 때문인지 아는 사람이 없었답니다. 돌쇠는 내일 걱정 근심으로 보냈습니다. 아마 이것이 필경 배 속에 있는 도깨비 장난인가 보다 하는 것은 으슴푸레 짐작할 수 있었지만 처음에 꼭 두 달 동안 이라고 약속한 일이니 어쩔 수가 없었지요. 그 뿐 아니라 손은 다만 배가 불러 올 뿐이지 별로 기운도 줄지 않고 일지도 않는 고로 그냥 사 월이 되기만 고대 했습니다.
소는 여전히 기운차게 새 구루마를 끌고 산이든 언덕이든 평지 같이 달렸습니다. 그에 삼월 그믐이 다가왔어요. 돌쇠는 겨우 후”하고 한숨을 내쉬고, 그날 하루만은 황소를 편히 쉬게 했습니다. 그리고 기왕이면 오늘 하루만 더 도깨비를 두어 두기로 결심하고 소를 외양간에다 맨 후 맛있는 죽을 먹이고, 자기는 일찍부터 자고 말았지요.
다음 날, 사월 초하룻날 첫새벽이었어요. 돌쇠가 잠을 깨니 외양간에서 쿵쾅쿵쾅 하고 야단스런 소리가 났습니다. 돌쇠가 놀라 뛰쳐나가 보았더니, 소가 외양간 속에서 이를 악물고 괴로워 못 견디겠다는 듯이 미친 모양으로 겅중겅중 뜁니다. 가엽게도 황소는 진땀을 잔뜩 흘리고 고개를 내저으며 기진맥진한 모양입니다. 깜짝 놀란 돌쇠는 미친 듯이 날뛰는 황소 고삐를 붙잡고 늘어졌습니다. 그러나 황소는 좀체로 진정치를 않고 더욱 힘을 내어 괴로운 듯이 날뜁니다. 도대체 무슨 영문이 모르는 돌쇠는 소의 고삐를 놓은 한숨을 쉬면서 얼빠진 사람같이 그 자리에 우뚝 서고 말았어요.
“돌쇠 아저씨, 돌쇠 아저씨!” 어디서 인가 자기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 돌쇠는 정신이 번쩍 나서 주위를 돌아보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보이지 않았지요. 그때 또 어디서 인지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돌쇠 아저씨, 돌쇠 아저씨.” 암만 해도 그 소리는 황소 입 속에서 나오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돌쇠는 자세히 들으려고 소 입에다 귀를 갖다 대었습니다. “돌쇠 아저씨, 저예요. 저예요. 저를 모르세요?” 그때서야 겨우 돌쇠는 그 목소리를 생각해 보았어요. “오! 너는 도깨비 새끼로구나. 날이 다 새었는데 왜 남의 소 배 속에 입때 들어 있니? 약속한 날짜가 지났으니 얼른 나와야 하지 않겠니?”
이 말에 황소 속에서 도깨비 새끼가 대답했어요. “나가야 할 텐데 큰일 났어요. 돌쇠 아저씨 덕택으로 두 달 동안 편히 쉰 건 참 고맙습니다마는, 매일 드러누워 아저씨가 주시는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있다가 기한이 되어 나가려니까 그동안에 살이 굉장히 많이 쪘나 봐요. 소 모가지가 좁아서 빠져나갈 수가 없게 됐단 말이에요. 억지루 나가려면 나갈 수는 있지만 소가 아픈지 막 뛰고 발광을 하는구먼요. 야단이 났어요.” 돌쇠는 그 말을 듣고 기가 탁 막히고 말았습니다. “그럼 어떡허면 좋단 말이냐, 그거 참 야단이로구나.” 돌쇠는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기고 말았어요.
돌쇠가 도깨비 새끼에게 황소 배 속을 빌려 준 것을 크게 후회했지만, 인제 와서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무엇보다도 소가 불쌍해서 돌쇠는 그만 눈물이 글썽글썽하고 금방 눈물이 터질 것 같았습니다. 그때 또 도개비 소리가 들렸어요. “아, 돌쇠 아저씨, 좋은 수가 있습니다. 어떻게든지 해서 이 소가 하품을 하두룩 해 주십시오. 입을 딱 벌리고 하품을 할 때에 지가 얼른 뛰어나갈 텝니다. 그렇지 않으면 한평생 이 배 속에서 살거나 또는 뱃가죽을 뚫고 나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 대신 하품만 해 주시면 이 소의 힘을 지금버덤 백 곱절이나 더 세게 해 드리겠습니다.” “옳다, 참 그렇구나. 그럼 내 하품을 하게 할 테니 가만히 기다려라.”
소가 살아날 수 있다는 생각에 돌쇠는 얼른 이렇게 대답은 했으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일은 참 딱합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소가 하품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지요. 그뿐 아니라 소가 하품하는 것을 돌쇠는 입때껏 한 번도 본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함부로 옆구리도 찔러보고 콧구멍에다 막대기도 꽃아 보고 간질여도 보고 콧등을 쓰다듬어 보기도 하고, 별별 꾀를 다 내나 소는 하품은커녕 귀찮은 듯이 몸을 피하고 도리질을 하고 한 두어 번 연거푸 재채기를 했을 뿐입니다. 도무지 하품을 할 기색은 보이지 않았지요. 그렇다고 이대로 내버려 두었다가는 도깨비 새끼가 배 속에서 자꾸 자라서 저절로 배가 터지거나, 그렇지 않으면 물어뜯겨 아까운 황소가 죽고 말 것입니다. 땅을 팔아서 산 황소이고, 세상에 다시 없이 애지중지하는 귀여운 황소가 그 꼴을 당한다면 그게 무슨 짝입니까. 돌쇠는 답답하고 분하고 슬퍼서 어쩔 줄을 모를 지경이었죠.
돌쇠는 동리로 가서 어떻게 하면 소가 하품을 하는지를 사람들에게 물어봤습니다. 하지만 제일 나이 많고 무엇이든지 다 안다는 노인조차 고개를 기울이고 대답을 하지 못했지요. 얼마를 묻고 다니다가 결국 다시 빈손으로 돌쇠는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그는 앞이 캄캄하고 기가 탁탁 막힙니다. 고개를 푹 숙이고 풀이 죽어서 길게 몇 번씩 한숨을 내쉬며 돌쇠는 외양간 앞으로 돌아와서 얼빠진 사람같이 황소의 얼굴을 쳐다보았어요.
자기를 위해서 몇 해 동안 힘도 많이 들고 애도 많이 쓴 귀여운 황소! 며칠 안 되어 배 속에 있는 도깨비 새끼 때문에 뱃가죽이 터져서 죽고 말 귀여운 황소! 그것을 생각하니 사람이 죽는 것처럼 불쌍하고 슬프고 원통했지요. 공연히 그놈에게 속아서 황소 배 속을 빌려 주었구나 하고 후회도 하여 보고, 또 그렇게 미련한 자기 자신을 스스로 매질도 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인제 와서 무슨 소용일까요. 얼마 안 있어 돌쇠의 둘도 없는 보배이던 황소는 죽고 말 것이요. 돌쇠 자신은 다시 외롭고 쓸쓸한 몸이 되리라는 그것만이 사실입니다. 참다못해서 돌쇠는 눈물을 흘리고 소리 내어 울며 간신히 고개를 쳐들고 다시 한번 황소의 얼굴을 바라보았어요.
황소도 자기의 신세를 깨달았는지 또는 돌쇠의 마음을 짐작했는지, 무겁고 육중한 몸을 뒤흔들며 역시 슬픈 듯이 돌쇠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얼마 동안 그렇게 꼼짝 않고 돌쇠는 외양간 앞에 꼬부리고 앉아서 황소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어요. 밥 먹을 생각도 없고 배도 고프지 않았지요. 다만 귀여운 황소와 이별하는 것이 슬펐어요. 오정 때까지 가까이 되도록 돌쇠는 이렇게 황소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차차 몸이 피곤해서 눈이 아프고 머리가 혼몽하고 졸렸어요. 그래서 그만 저도 모르는 사이에 입을 딱 벌리고 기다랗게 하품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때입니다. 돌쇠가 하품을 하는 것을 본 황소도 따라서 기다란 하품을 하기 시작했어요.
“옳다, 됐다.” 그것을 본 돌쇠가 껑청 뛰어 일어나며 좋아라고 손뼉을 칠 때입니다. 벌린 황소 입으로 살이 통통히 찐 도깨비 새끼가 깡창 뛰어나왔어요. “돌쇠 아저씨, 참 오랫동안 고맙습니다. 아저씨 덕분에 이렇게 살까지 쪘으니 아저씨 은해가 참 백골난망이지요. 그 대신 아저씨 소가 지금보다 백 곱절이나 기운이 세 개 해 드리겠습니다.” 도깨비 새끼는 돌쇠 앞에 엎드려 이렇게 말하고 나서 넙죽 절을 하더니, 상처가 나은 꼬리를 저으며 두어 번 재주를 넘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어디로 인지 없어지고 말았지요.
그제야 돌쇠는 겨우 정신을 차렸습니다. 입때껏 꿈인지 정말인지 잠깐 동안은 분간할 수 없었어요. 그러다가 고개를 들어 홀쭉해진 황소의 배를 바라보고 처음으로 모든 것을 깨닫고 “하하하.”라며 큰 소리를 내어 웃었답니다. 죽게 되었던 황소가 다시 살아났을 뿐 아니라 이튿날부터는 입때보다 백 곱절이나 힘이 세어져서 세상 사람들을 놀래었습니다. 돌쇠는 더욱 부지런해져서 이른 아침부터 백 마력의 소를 몰며, ‘도깨비가 아니라 귀신이라두 불쌍하거든 살려 주어야 하는 법이야.’ 이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며 콧노래를 불렀답니다.
하부르타식 질문의 예:
돌쇠는 왜 도깨비에게 황소 배 속에 들어가 살도록 해 주었을까요?
돌쇠는 왜 도깨비에게 ‘속아서’ 황소 배 속을 빌려 주었다고 했을까요?
돌이는 왜 소에게 ‘어떻게 하면 좋겠니?’라고 물어보았을까요?
돌쇠는 도깨비 때문에 애지중지하던 황소를 잃을 뻔했지요. 그런데도 왜 ‘도깨비 아니라 귀신이라두 불쌍하거든 살려 주어야 하는 법이야.’라고 생각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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